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종방한 '트래블러'를 보면서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쿠바의 예쁨에 반하고, 지금도 방송 중인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혼자 묵묵히 걷게 되는 순례길을 상상하기도 했다. 쿠바에 가보고 싶다, 스페인을 가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면서도 사실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 먼 길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혼자 떠나온 길 위에서 전혀 걱정과 두려움 없이 걸을 자신도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주눅 들어 오롯이 풍경과 마주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두가지 마음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생기지 않는 용기를 대신하여 대리만족하기 좋을 것 같아서, 두번째는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같은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의 여행은 어땠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괜히 읽기 전부터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를 소리내어 여러번 읽었다. 그것이 용기를 만들어내는 주문이라도 되는 냥.

근데 막상 책을 펼치니 나의 첫번째 마음이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행복해지기 위해 현실을 내던지고 비행기에 오른 그녀의 여행은 상상처럼 반짝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실패와 그로인한 좌절 앞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역시 혼자는 무섭잖아!!!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일이었다면, 하고 상상하다 이내 그만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짊어진 나의 전부보다 닥쳐온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어쩜 이렇게 삶은 무겁기만 한걸까. 비약이 과해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자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녀를 붙잡고 따져묻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거움이, 힘듦이 눈 앞의 예쁨을 자주 잊게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책을 덮고 무거워진 마음에 올려다본 하늘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이었다. 그게 또 위로가 된다.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의 이유'에서 그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의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같은 맥락으로 나는 실패하고 좌절하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가 무거워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음에도 소소한 이야기에 웃고 다정한 한마디에 코끝이 찡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짠하고 찡하고 감정의 변화로 바쁜데 여행의 중심에 있었을 그녀의 감정은 얼마나 오르내렸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인가 중반부터는 여행의 동지가 되어 함께 걷고 함께 화를 내고 함께 당황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초반에 따져묻고 싶었던 마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완벽하지 않아서, 원하는 것은 늘 내게 오지 않아서, 그럼에도 너를 만나서 다행인, 그런 여행이라 좋았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꼭 나 같아서 눈물이 났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가시돋힌 말을 쏟아내던 그 끝에도, 외로움을 자처하고 떠난 여행에서 도무지 외롭지가 않아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돌아오던 여행에도 그가 있었다. 아무 것도 자신이 없던 내게 따뜻하고 다정한 그가 나타나 모든 것이 괜찮아진 덕분일지 예쁜 것만 보면 그가 떠올랐다. 그래서 외롭지가 않았다.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그 때문에 용기가 생길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것은 어차피 다 너인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일테다. 여행 후에 여전히 같은 삶을 살아도 나는 이미 달라졌다고 믿는다.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조금 더 멀리 뛰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여행이 좋았던 나빴던 상관없이 말이다. 설사 꿈처럼 기억이 아득할지라도.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왔다고 끝맺은 그녀의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 혼자 상상을 한다. 그녀의 우물 안은 얼마나 더 넓어졌을까 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 P64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 P111

"세계일주를 할 거야!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올 거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 가볼 거야!"

이렇게 말한 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내 모든 걸 걸었더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꿈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 P143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곳보다 어떤 세상인지 잘 아는 곳이 더 두려웠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예상 가능하고 그 예상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끔찍하고 무서웠다. - P155

내가 누군가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지게 되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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