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 여행 필독서
허소라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나오는 책들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서점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이 책도 그랬다. 근데 왜인지 나에게는 자꾸만 한 번의 남미 열 번의 퇴사로 기억이 남아서 저자가 열 번의 퇴사 끝에 드디어 남미로 떠나게 된 것인가! 나도 열 번쯤 퇴사를 하면 남미에 갈 엄두가 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다 내 착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책을 펼치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와 너도 꼭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사진을 꺼내서 아무리 자랑을 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자꾸 좋았다고 가보라고 말하는 여행지는 반감을 느끼고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선물을 받았던 소설 겸 에세이가 담긴 여행책을 읽게 되었고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워낙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서 막바지 두 페이지 가득 담겨있던 이과수 폭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원포토와 함께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그것, 이과수 폭포 앞에서 울게 될 날 때문에 남미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고 어느덧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 중인 여행지가 바로 남미인데 퇴사를 하고 훌쩍 남미로 떠난 그녀의 결단이 부러웠다. 퇴직은 있었지만 나는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서인지 퇴직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 삼아본다.


언제부터인지 매체들도, 도서들도, 하물며 주변 사람들도 남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방에 앉아서 남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참 많아졌다. 남미의 열정을 누구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내가 꼭 가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도 맑은 날, 흐린 날, 그저 그런 날까지도 모두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여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뻔한 남미 사진이 아니라서, 감정으로 호소하는 글이 아니라서 좋았다. 여행의 힘든 여정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좋았다. 남미를 여행한다면 꼭 필요한 정보들을 빼먹지 않고 적어주는 책이라서, 만약 남미로 떠나게 되면 가볍게 이 책과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될 것 같아서 좋았다. 페이지 중간중간 가득 채운 사진은 특히 더 좋아 그 페이지에서 자주 넋을 놓았다.

이 책에는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를 여행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칠레 ,볼리비아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게 된 것이라 재밌는 정보를 얻게 되어 좋았고 쿠바는 예능 때문에 익숙한 지명과 눈에 익은 장소가 나와 마치 다녀온 냥 읽게 되어 재밌었다. 가장 관심있는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고, 페루 역시 아는 지역과 이야기가 나오면 맞아, OO의 SNS에서 봤어! 하며 반가워 했다. 이제는 그만 공부하고 너도 남미로 얼른 떠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소리치는 것을 조용히 모르는 척했지만 어쩌면 더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일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한다. 특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에서는 낯선 것들 투성이에 둘러싸여, 일상에 존재하던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쿠바 아바나의 말레꼰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페루의 알지도 못하는 라틴 클럽에 가서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평소에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패션을 시도하기도 하고! 여태까지의 네모 반듯한 나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찰흙처럼, 여행자로 살아내는 나만의 시간들, 떨림을 간직한 일. 여행. - P112

"걷는 것만 생각해. 남은 거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 P126

여행을 하다 보면 언어를 뛰어넘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 음악, 예술, 아름다운 것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답답할 때도 있을지언정,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열어버리는 것이다. - P132

나는 침묵이 사랑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 동의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럼 점에서 여행도 사랑도,
가끔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33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빛나는 파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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