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찾아 산티아고
정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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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정말 산티아고 책이 넝쿨째 나에게 굴러들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서와 방송으로 참 많이도 만났다. 올해의 마지막 산티아고 책,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산티아고 책이 될 <남자 찾아 산티아고>를 읽었다. 누군가는 인생을 찾아서 순례길에 오르고, 또 어떤 이는 삶의 방향에 대한 물음을 떠안고 순례길에 오르고, 또 다른 사람은 진정한 나를 찾아 순례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 작가,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게 남자 찾아 산티아고로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오히려 그런 솔직함이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는 것보다 마음을 흔든 것도 사실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남자를 찾았을까? 진짜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있었나? 여행길의 간지러운 로맨스 같은 것을 기대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산티아고에 가본 적은 없지만 산티아고를 걷는 상상은 수없이 많이 해봤다. 나는 어떤 물음을 안고 길을 걸게 될 것인지, 길 위에서 무엇에 감동하게 될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쿨하지 못해 얼마나 괴로울지, 외로울지 같은 것들. 물론 상상의 끝에 답을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길 위에서 매일 외로워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정확히 알 것 같아 산티아고로 떠나는 일이 늘 무서웠다. 그래서 여전히 물음만 붙잡은 채 누군가의 경험에 의존한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 내게 얕게 쌓여 반가움과 감동이 밀려와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책에 나온 곳곳이 낯설지 않아 알은체를 하며 웃었다. '순례길을 걷는다' 똑같은 주제로 어쩜 모두 이렇게 다른 글을 쓰는 것일까. 방송 작가의 좋은 필력도 한몫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감정이 밀려온 덕분에 향유한 모든 것이 좋았다.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던지는 우리의 길 끝에 과연 정답은 있을까?

복잡한 미로 속을 열심히 헤매는 이 순간들이 언젠가 정답에 가까운 힌트라도 주긴 하는 것일까?

물음을 끌어안고 순례길을 걷는다. 걷는다고 우리는 모두 끌어안은 모든 것의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모두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왜 그렇게까지 걷는지 이해가 되지 않던 순간들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매일 조금씩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걷는다.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나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게 최대한 담백하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길에 쏟아낸 이야기를 모래 털 듯 툭툭 털어내고 또 걷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또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800km 동안 이미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순례길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세상 모든 남녀에게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연애 상대는 그 바다에 찾아오는 물고기들인 것이다. 연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와 속도 등 바다가 가진 조건과 물고기의 습성이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나의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 P13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숫자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 외에는 경우의 수가 없다. - P32

그리고 이 오래된 서사는 오늘날 길을 걷는 순례자에게 녹아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쓰여진다. 빠르고 편한 차를 놔두고 굳이 고집스럽게 이 길을 걷는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서사시다. 우연히 만난 피터가 전해준 ‘신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신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가 길을 걸으며 쓰고 있던 젊은 날의 서사시 중 한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그 옆을 걷고 있던 내게 전해져 내 인생에 더해진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그 한국인 여행자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냥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천 년 동안 쓰여진 이야기와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사이를 걷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깊이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시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길의 매력은 시대를 뛰어넘는 풍부한 이야기인 것이다. - P68

"인생을 미로라고 생각해봐. 그리고 네가 새라고 생각해봐. 네가 고민한 내용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는 ‘작은 헤맴‘일뿐이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원래 어떤 사람이냐는 거야. 어차피 너라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지금의 너의 마음, 너의 정신, 너의 순수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가 향하는 길은 하나일 거야." - P158

바다를 마주하고 생각해봤다. 버릴 것이 있는가?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련도 없었다. 남자를 찾겠다며 소풍 오듯이 와버린 순례길이었지만, 삶에서 답을 찾고자 이곳에 온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내 스승이었다. 원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여행 자체는 이보다 완벽할 순 없었다. - P242

"행복이라는 말에 강박을 느낄 필요 없어. 행복을 찾다가 인생 끝날 일 있어? 그냥 가슴속에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깊은 기쁨(deep joy)에 집중해. 그리고 그때 네가 가슴 떨림을 느낀다면 너에겐 신의 심장(heart of God)이 있다는 거야. 그 신의 심장을 뛰게 해봐. 그걸 놓치지 않는 삶이 진짜 삶이야." - P244

모든 여행은 경계를 넘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당연했던 견고한 내 세계를 떠나 이방인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다름과 부딪힌다. 다름 사이에서 내 기준점을 낮추기도 하고 끌어올리기도 하며, ‘이것이 나‘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준점을 다시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다니며 나를 증명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리고 새로운 땅을 밟고 돌아가는 이는 기존의 자신이 아니라 기준점을 다시 맞춘 확장된 자신이 된다. 경계를 넘어선 순간 나를 둘러싼 언어는 다시 써지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한 인간이 사유를 지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 P254

그렇게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잃었다.

불교에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은 때가 되어 만나고 헤어진다는 뜻이다. 햇볕, 온도, 수분, 토양과 같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듯이, 때가 무르익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꽃처럼 피어나 인생에 향기를 남긴다. 그때야 나는 알게 되는 것이다. 그날 길을 잃은 이유를. 모든 헤맴에는 이유가 있음을.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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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한 번은 혼자 살아보고 싶어 - 혼자 살아보고 싶은 이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선주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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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딱 지금 내 마음 같아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좋았던 책.

총 5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이야기 구성도 좋았지만 혼자 살게 되어 느끼는 감정 변화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가는 과정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들이 좋았다. 내가 지금 당장 독립을 한다면 책으로 미리 간접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1에서부터 5까지에 있었던 모든 시행착오를 경험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에선 이렇게 대처해야지,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 같은 머릿속 시나리오는 막상 닥쳐올 미래에 그리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조금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둔 집의 보호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롯이 혼자로 남겨져 삶을 살아가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혼자 살아서 외로우면 어쩌지, 여자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책을 읽으며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내가 나로서 성장하기 위해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철저히 혼자가 되는 일. 참 멋진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생각해 봤다.

아빠의 단호한 반대로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았던 것. 독립에 대하여.

독립을 하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을, 작가가 비밀리스트로 적었던 이상형 적 듯 언젠가는 나와 꼭 맞는 독립이 되길 바라며 적었다. 나도 언젠가 적어둔 것을 잊을 때 쯤이면 나의 이상향에 가까운 방을 만나 독립을 하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하는 일은 언제나 설렘이 앞선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는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족 간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삼십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혼자만의 시간은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20대 후반에서야 혼자 끙끙 앓으며 마음을 쓰고 괴로워하던 고통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 자신에게서 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고통을 억지로 이겨냈던 상처투성이로 삼십대가 된 나를 위로했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독립을 해야한다. 가족에게서, 관계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도.




무언가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이 하나하나 생각하고 행동해나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다.
내가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할 때, 이 행동이 과연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나를 방치하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26

소확행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불행을 좇는 사람은 불행한 일이 있어도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을 좇는 사람은 불행한 일이 있어도 행복을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CEO인 우리는 행복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 P87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한 행동은 나도 모르게 합리화하게 되고, 남이 한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게 내 옳지 못한 행동을 인정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내 행동을 반성함으로써 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번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내가 먼저 변화함으로써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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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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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끌렸던 것은 「카모메 식당」 작가인 무레 요코라는 점도 있었지만 제목이 한몫했다. 거기다 60대의 작가가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관한 에세이라니 궁금해 참을 수가 없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우리 엄마 또래의 작가가 꼰대스럽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지금 30대를 살아가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랑 안 맞는 일과 사람, 그리고 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어중간한 자리에 서서 괴로워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내 취향이나 성격을 배려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남들 하니까 같은 중압감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종일 나를 고되게 한 날에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한 것에 미안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것,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남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수없이 반복해서 말한다. 그런 것쯤 우리도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일 뿐인데... 하고 입을 삐죽거리면 그녀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들자면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이 좋다던가, 고양이 스티커처럼 귀여운 것이 좋다던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라던가 하는 것들.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됐다. 귀여운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쓰지도 못할 스티커를 구매하고, 예쁜 편지지는 일단 쟁여두고 보는 내 취향이 좋다. 높은 신발보다는 낮고 편한 신발이 좋고 치마보다는 바지가 좋다.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싫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 싫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나열하니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알 것 같다. 누구는 그렇게 살던데,보다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다시 한번 다짐했다.

2020년에는 나랑 안 맞는 일에 나를 구겨 넣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럼 안 할래, 단호박 같은 거절의 기술도 늘어나기를!

수첩을 손에 드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기쁘다고 느끼는 일이 적어져서 수첩이라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소중하다. 이제 허세를 부리기보다 나 자신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 P112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대체 그 당연함은 누가 만든 걸까. 아이를 갖고 싶지만 생기지 않는 부부도 있는데, 당연하다는 인식이 왠지 거북하다. 모두 세상이 만든 ‘당연함‘인데 너무 신경 쓴다. 가족은 부부와 아이가 있기에 그 형태사 유지되지만, 우리 부모처럼 허구한 날 험악한 분위기라면 해체하는 게 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 - P155

"다들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것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라는 걸 깨닫고 나서,

"어째서 이렇게 못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는 건 봉인했다. 역시 그것은 타인을 상처 입히는 말이었다. 나로서는 잘난 척할 생각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이니 너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마찬가지였다. 반성하는 반면, 마음속으로는,

"근데 어째서 그렇게 된 거지?"

하고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P169

어째서 다들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전하면 되지 않은가. 그래도 몰라주거나 험담하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나 신경 쓰이겠지만, 그건 자신이 행동을 일으킨 결과에 대해서이지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해서 행동을 결정하는 건 웃기지 않습니까 하고 묻고 싶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행동, 발언을 할 필요가 있을까.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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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 임신.출산.육아의 전지적 엄마 시점
홍현진 외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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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아이 키우는 지인들이 많아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른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결혼도 전입니다만) 주변에 그런 지인들이 많아 자연스레 이론 육아에 동참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이 한 세넷은 키워 본 육아 만렙(?)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 마음같지 않다고, 고된 육아 이야기로 시작하여 개월수에 따른 육아 방법을 지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육아 꿀팁들을 전수 받았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가장 최선을 선택하는 법은 참 많이 배웠는데 정작 엄마가 된 지인들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종 "결혼 안한 네가 너무 부럽다"고 하는 말들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였던 지난날을 반성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기자 출신 엄마들이 쓴 100% 리얼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을 한 엄마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마더티브(Mothertive)'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통해 엄마로 살면서 동시에 나도 지키며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며 써내린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미혼인 내게 결혼이라는 산도 아직 높고 높은데 육아라니.... 라는 생각이 앞섰는데 오히려 읽다보니 글이 재밌기도 하고 경험하진 않았지만 이론으로 쌓여온 지식들이 폭발하여 괜히 폭풍 공감해 푹 빠져서 단숨에 다 읽었다. 올케의 임신-출산-육아를 가까이서 지켜본 탓일지 올케의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모습과 밤샌 수유 콜에 잠 한숨 못 잤다고 힘들어 하던 모습, 유모차만 태우면 우는 조카 때문에 찬밥 신세였던 고급 유모차나 포장도 뜯어보지 못해 쌓여있는 내복들 생각도 났다. 잘 몰라서 허둥지둥했던 날들을 이제와 다 지난 일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어렵고 무섭고 복잡한 폭풍 속에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 사이에 이 책이 있었다면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못 하는 것 같고 나만 나쁜 엄마인 것 같고 아이 울 때 나도 같이 울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참 많이 본다. 처음이니까, 다들 그렇대, 금방 지나갈거야 힘내. 그런 뻔한 위로는 건네고 싶지 않을 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엄마들보다 아빠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 엄마들은 주변에서 아무리 경험담을 쏟아내도 결국은 나보다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아빠들이 먼저 읽고 옆에서 선택지의 방향성을 제시하면 훨씬 더 좋은 육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엄마의 삶만 흔들리는 거, 거기에서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아빠의 삶도 휘청휘청해야 해요. 그래야 불안할지언정 함께 오래갈 수 있어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남편에게 ‘당신은 뭘 할 건지‘ 물어보세요." - P67

"모성애가 좀 덜한가 봐."
복직한 후로 간혹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나의 모성이 부족한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사랑한다. 엄마로서의 이타심과 나의 이기심을 사이좋게 공존시키는 것이 내 모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나가서 돈을 벌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늦게 찾아온다고 해서 모성애가 적은 엄마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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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배웅 -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가 전해주는 삶의 마지막 풍경, 개정증보판
심은이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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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닥쳐온 수많은 죽음 앞에서 한 번도 초연해진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매일 나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 가정을 늘어놓곤 한다. 예를 들자면 불의의 사고로 지금 당장 죽는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아 살 날이 몇달 남지 않았다면 같은 것. 그런 가정의 끝에는 언제나 남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데 막연했던 사람들의 감정을 쫓다 상상하기를 그만두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에 쓰여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해답같기도 하고 앞으로 가정의 끝이 좀더 명확해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두려웠다. 장례식은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슬픔을 목격하는 곳이기도 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 무너지고 단단하던 사람이 모래알처럼 흩날리는 순간들을 보면서 '죽음'이 무섭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가 떠나고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제 모습을 잃고 슬픔을 떠안을 때가 가장 무서웠다. 트라우마처럼 남은 두려움이 책을 펼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 심은이 씨가 지난 17년간 현장에서 함께했던 삶의 마지막 모습들을 담은 책.


책을 펼치기 전에 뒷편에 쓰여진 독자의 후기를 먼저 읽어보았다. 눈큰님의 아마도 '죽음'의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소중함이 아닐까 하는 말과 가윤님의 좀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야겠 다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새 생명이 태어남에 축복받는 것처럼 생명의 끝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위로로 따스한 껴안음을 주어야하지 않을까. 낯선 직업인 '장례지도사'에 대하여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고보면 언제인가 장례식에 하염없이 앉아 밤낮을 지키며 누군가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직업을 가진 일은 어떨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한 명과도 이별하기가 어려운데 매일 누군가를 보내는 일이라니, 나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겠구나. 그런 결론을 내리고도 마음 한 켠으로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도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위로하는 삶은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고 어떤 삶을 살았던, 어떤 죽음을 당했던 마지막에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러게요. 살아 있을 때, 이건 제 느낌인데, 어떻게 사셨는지 돌아가신 분의 얼굴에 다 나타나는 거 같아요. 못생기고 불쌍하게 살았던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마지막 모습이 불편한 것은 아니에요. 얼굴은 아주 예쁘고 귀티 나는데도 돌아가신 모습이 불편한 분이 있어요. 살았을 때의 그늘을 숨기지 못하는 거라 봐요. 아마도, 태어나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진실로 행복했으면 죽음의 모습도 행복하다, 그런 거 같아요. 속일 수 없으니 잘 살아야죠. 마음 곱게 살자, 그리 다짐하기도 해요. 죽음에서 삶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_2012년 3월 24일 부산일보 심은이 인터뷰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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