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끌렸던 것은 「카모메 식당」 작가인 무레 요코라는 점도 있었지만 제목이 한몫했다. 거기다 60대의 작가가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관한 에세이라니 궁금해 참을 수가 없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우리 엄마 또래의 작가가 꼰대스럽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지금 30대를 살아가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랑 안 맞는 일과 사람, 그리고 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어중간한 자리에 서서 괴로워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내 취향이나 성격을 배려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남들 하니까 같은 중압감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종일 나를 고되게 한 날에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한 것에 미안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것,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남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수없이 반복해서 말한다. 그런 것쯤 우리도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일 뿐인데... 하고 입을 삐죽거리면 그녀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들자면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이 좋다던가, 고양이 스티커처럼 귀여운 것이 좋다던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라던가 하는 것들.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됐다. 귀여운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쓰지도 못할 스티커를 구매하고, 예쁜 편지지는 일단 쟁여두고 보는 내 취향이 좋다. 높은 신발보다는 낮고 편한 신발이 좋고 치마보다는 바지가 좋다.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싫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 싫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나열하니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알 것 같다. 누구는 그렇게 살던데,보다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다시 한번 다짐했다.
2020년에는 나랑 안 맞는 일에 나를 구겨 넣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럼 안 할래, 단호박 같은 거절의 기술도 늘어나기를!
수첩을 손에 드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기쁘다고 느끼는 일이 적어져서 수첩이라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소중하다. 이제 허세를 부리기보다 나 자신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 P112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대체 그 당연함은 누가 만든 걸까. 아이를 갖고 싶지만 생기지 않는 부부도 있는데, 당연하다는 인식이 왠지 거북하다. 모두 세상이 만든 ‘당연함‘인데 너무 신경 쓴다. 가족은 부부와 아이가 있기에 그 형태사 유지되지만, 우리 부모처럼 허구한 날 험악한 분위기라면 해체하는 게 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 - P155
"다들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것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라는 걸 깨닫고 나서,
"어째서 이렇게 못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는 건 봉인했다. 역시 그것은 타인을 상처 입히는 말이었다. 나로서는 잘난 척할 생각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이니 너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마찬가지였다. 반성하는 반면, 마음속으로는,
"근데 어째서 그렇게 된 거지?"
하고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P169
어째서 다들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전하면 되지 않은가. 그래도 몰라주거나 험담하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나 신경 쓰이겠지만, 그건 자신이 행동을 일으킨 결과에 대해서이지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해서 행동을 결정하는 건 웃기지 않습니까 하고 묻고 싶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행동, 발언을 할 필요가 있을까. - P1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