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학창 시절에는 늘 칭찬을 위해 살았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고 사랑에 목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날들이 많았고 그게 잘 안되는 날에는 밤마다 이불 속에 들어가 꺽꺽 울었다. 그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줄곧 그렇게 살아온 나는 20살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반대에 크게 맞서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날은 많아져도 다음날이면 다시 아무 일도 없는 착한 딸이 되어 부모님 심기를 거스르는 말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내게 '나'는 우선 순위 밖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떠났던 여러 여행을 떠올렸지만, 유독 첫 여행을 많이 생각했다. 학교나 교회에서 단체로 가는 수학 여행이나 수련회 따위가 아닌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 내 방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잔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여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 나에게는 여행이 은유였다.


여행을 떠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도 없거니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고 돌아갈 곳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리고 나는 자주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그리워 한다.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일이 두려워 도무지 용기를 내지 않으면서 여행에서는 언제나 용기 백 배의 사람이 되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 뭐가 나를 그렇게 바꾸는 것일까 궁금하던 때도 있었다. 근데 이제는 그게 진짜 '나'라는 것을 안다. 낯선 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진짜로 되고 싶었던 내가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요즘처럼 온세계가 각각의 커다란 감옥이 된 듯, 집 밖으로 나가는 일도 쉽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여행 에세이를 만나 반가워 단숨에 읽었는데도 책을 덮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든다.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여운이, '은유'라는 두 글자의 울림이 오래 남는다. 책 안에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가 가득 들어있어서 도시의 길을 상상하며 걷는 일이 좋았다. 나라 한 곳에 집중하여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고 여행의 정보만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도 좋았다. 간간히 여행과 어울리는 좋은 글귀 역시.




하찮은 고양이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삶이라면,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사는지 질문할 때 아주 숭고하고 고매한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 P89

나는 뮌스터를 걸으며 도시의 아름다운 미래는 실용적인 질문에 반박하는 데서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용적인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꼭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들이 도시의 아름다운 미래까지 보장해주지 않는다.

실용적인 질문에만 응답했던 대부분의 도시들이 추하게 변해갈 때, 비실용적인 질문에 응답했던 도시들이 시간과 함께 더욱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여행을 다니면서 셀 수 없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런 도시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P114

여행에서는 많은 언어를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마음이라는 언어만 잘 습득하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 P189

여행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색깔은 작은 팔레트에 머물고 있는 내가 가진 색깔의 한계를 자주 넘어서곤 했다. 그때마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을 통해 색깔의 한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지 못했던 한계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여기, 산티아고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나에게 마지막 책이 될 산티아고 책이라고 적어두고는 새해가 되었다고 없던 일로 시침을 떼고 산티아고 책을 또 만나게 됐다. 어쩌면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나와 비슷한 20-30대가 쓴 산티아고 책을 읽으며 내가 만약 산티아고로 떠난다면, 하는 가정하에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은 현재 푸른향기 출판사의 대표님이자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의 작가님이 쓰셔서인지 우리 엄마가 지금 산티아고로 떠난다면, 하고 상상하며 읽게 되어 또 다른 느낌의 산티아고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작년에 방영했던(산티아고 이야기만 나오면 하게 되는 그 TV프로그램) <스페인하숙>에서 65세의 중년 여성이 한식을 해주는 알베르게라고 하여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분을 보며 함께 묵는 투숙객들, 출연 중인 배우들은 물론이고 TV를 보고 있는 나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우리 엄마 생각이 났었다. 그때는 엄마가 산티아고로 떠났다면,이라는 가정보다는 엄마와 함께 떠났던 날들을 떠올렸고 그런 날들 사이 삐죽삐죽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던 내가 생각나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어른이 된 후에 새로운 꿈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사는 게 힘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사라지고 싶은 날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었더니 괜히 더 애틋해져 기분이 이상했다.


힘들 때마다 쉽게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고, 지치면 중간에 포기하고 푹신한 내 침대로 돌아올 수 있는 낯익은 거리가 아닌, 물도 설고 말도 선 땅에,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 없는 지구 반대편 세상에 나를 방목해 보고 싶었다. -프롤로그 중


그동안 만났던 산티아고 책과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하면 역시 속도감이려나. 왠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순례길 속에서 쫓아가기 급급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 책은 호흡이 조금 느린 편이라서 좋았다. 덕분에 나도 조금 천천히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게 유난히 더 공감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만남과 이별의 연속인 점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바라보는 시점이라던가 함께 걷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르다 보니 공감하는 정도와 느끼는 바가 다른 점 등이 좋았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삶을 살아가듯이 순례길을 걷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것이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일이라던가, 마음의 문을 꾹 닫고 혼자서 묵묵히 걷겠다고 생각했는데 걷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나누고 있었던 일들은 괜히 내 마음의 짐도 덜어내는 순간이 되어 홀가분해졌다.

여행을 떠나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장소를 거듭하며 종일 걷는 날은 수없이 많았지만 어딘가 한곳을 목표하여 광활한 풍경을 곁에 두고 묵묵히 걷기만 하는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산티아고에 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사진을 보고 전해 듣는 것으로 그 위를 걷는 상상은 하지만, 감히 그 무게를, 통증을, 외로움을 오로지 감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렇게 걷는 걸까, 궁금했던 날도 있었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걷는 일을 반복하는 무모함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여행은 '너무 애쓰지 말기'가 모토였기 때문에 더 감당할 수 없는 힘듦이기도 했다. 근데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좀 알 것도 같다. 오로지 혼자가 되어 걷기 시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처럼 쉽게 헤어지는 일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결국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내가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이 순례길을 걷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애초에 모두가 순례길을 통해 찾고 싶었던 답이 결국 '사람'이었을지도.



가까이 있으면 뿌리끼리 엉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처럼, 우리는 너무 가까운 탓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뿌리로 옭아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고, 알고 싶지 않은 속내를 알게 되어 관계를 치명적으로 몰아가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더 깊고 아픈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47

우리 모두는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일이 있다. 나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받았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 P50

모든 것은 변한다. 날씨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헤수스가 오늘 내 마음을 움직였듯이, 언젠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먼 길 떠나온 나도 지금은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지만, 구름 걷히고 바람도 멈춘 어느 햇살 밝은 날 오늘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 P70

주역에 ‘무평불피 무왕불복(无平不陂 无往不復)‘이라는 말이 있다. ‘언덕 없이 마냥 평평한 땅은 없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늘 평평하기만 하다면, 늘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할까. 거친 언덕과 비바람 속을 지나며 나는 더 단단해지고 깊어질 것이다. 느리게 걷다 보니 몸을 낮춘 작은 꽃들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행복은 시선을 낮춘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 P110

어쩌면 우리는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속까지 텅텅 비우고 돌아오는 일, 그것이 여행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 P242

"좋고 나쁜 것은 없어요.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우린 다를 뿐이에요. 꽃들도 제각각 다르지만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저마다의 색깔로 꽃을 피워내잖아요. 꽃 색깔이 다르다 해서 그 누구도 꽃이 틀렸다고 하지 않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색깔대로 우리 앞의 생을 살아낼 뿐, 그 누구도 내 삶의 방식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에요." - P258

다시 돌아가 걸어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안개 같은 날들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나는 살아낼 것이다. 사람만큼 두려운 존재도 없지만 사람만큼 위로가 되는 존재도 없다는 것을 길 위에서 배웠으므로. 나의 부족함이 오히려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길을 잃으면 마음의 화살표를 따라가라고, 노란색 화살표가 말해주었다. - 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미국 전문간호사입니다 - 진료하고 처방하는 미국 간호사, NP 되기
김은영.안윤선.정재이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호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몇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대충 이렇다. 의사를 호출하는 간호사, 의사를 도와주는 간호사,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병원 접수-수납을 도와주는 간호사, 주사를 놔주는 간호사. 주변에 간호사로 일하는 지인이 없더라도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혹은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간호사를 통해 그들의 업무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의사가 주인공이라면 간호사는 조연인 듯 곁에 서서 주인공을 빛내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미국 간호사는 뭐가 다른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책을 펼치기 무섭게 나의 궁금증은 해소가 됐다. 미국에서는 전문간호사(NP)가 환자 진료도 하고 처방도 한다고 말하던 대학 교수의 한마디에 갓 입학한 간호과 신입생들은 과연 미국의 NP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NP란 Nurse Practitioner의 약자로, 상급 실무 간호사(Advanced Practice Registered Nurse, APRN)의 한 종류라고 한다. 간단하게는 '의사의 역할이 주어진 간호사', 미국의 몇 개의 주에서는 '의사와 동급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NP라고 했다. 그러니까 의사가 부재중일때 간호사가 먼저 환자의 상태를 체크는 하지만 의사를 기다려 의사에게 체크한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고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NP는 의사를 기다리는 상황없이 환자의 상태를 바로 확인하여 진료와 처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의사는 업무가 수월해지고 환자는 빨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대개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가면 쉬지않고 밀려오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질환으로 오는 환자들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증상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월등히 많은 비율로 병원에 자리하고 있는 간호사들 중 NP가 있다면 가볍다고 여겨지는 질환이라도 좀더 제대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책에는 NP가 간호사-의사와 다른점, NP가 하는 일, NP가 생긴 배경, NP의 전망, NP의 월급-연봉, 그 외에도 NP가 되는 방법, NP로 취업하는 방법들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NP에 관심이 있고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길라잡이 책이 되겠다. 물론 간호사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문과 외길 인생인 나조차 관심있게 읽어볼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그러면 NP는 간호사가 아닌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NP와 의사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환자에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사들이 질환과 질병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NP는 간호의 배경을 가진 의료인으로서, 그 질환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접근하도록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간호학을 배울 때 늘 강조됐던 전인전인 관점과 접근, NP의 핵심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이 접근법이야말로 NP가 간호사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P169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환자들의 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환자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존중을 받고, 나 스스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의료정책에 맞추어 다음 세대의 간호사들을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NP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 P182

나는 스스로가 나의 역할과 소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불특정 타인의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깨우쳤다. 하지만 한국의 똑똑한 많은 간호사들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간호사로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더 큰 꿈을 품고, 나아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도전했으면 좋겠다. 또 이렇게 간호사들이 성장할 때, 사회와 제도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 3,500km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다
이하늘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번 읽었던 <함께, 히말라야>에 이어 대단한 부부가 또 등장했다!!!! 2019년 12월에 만났던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설악 아씨 부부에 이어 2020년 1월에 만난 결혼식 대신 자전거와 하이킹으로 세계여행을 하는 두두부부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을 본받아 새해에는 좀 움직여 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경험하며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애쓴다. 책에는 147일 동안 3,500km의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AT)을 걷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산속을 걸으며 매번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묻는다. 그렇지 않을 때 과감하게 당장의 진로를 포기하고 잠시 멈춰 서는 작가의 담대함이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던 작가의 말이 좋아서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산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어릴 때부터 동네 뒷산을 자주 올랐다. 그런 덕분에 운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등산은 좋아하는 어른이가 되었는데, 등산이 좋은 이유는 이렇다. 1. 정상이라는 목적이 확실하다, 2.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3. 자연의 소리(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동물 소리, 흙 밟는 소리 등등) 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책을 통해 두두부부와 함께 걸으면서 내가 왜 등산을 좋아하게 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그저 좋아한다고 해서 그들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 위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에겐 그런 용기가 없음에, 그들의 걸음에 좀 더 응원의 마음을 담아 책을 읽게 됐다. 오랜 기간 동안 꽤 먼 걸음을 걸어내는 일은 분명 힘든 일 투정일 테다. 먹을 것을 아껴먹는 일이라던가 텐트 생활을 하고 오랫동안 걷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와중에 비를 맞고 쥐를 만나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고난과 역경이 그들을 '행복하지 않은' 길로 안내하여 내려놓은 무언가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을 테다.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 좋은 마음으로 '나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AT를 응원하는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손길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다독임, 용기 내어 걷는 그들의 여정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독 이 책에서 반가운 것은 '트레일매직'과 '트레일엔젤'이다. 게임 속에서 HP를 채워주는 아이템 상자를 만나거나 귀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이번에는 어떤 매직과 엔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스스로를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에 지칠 때마다 '트레일매직'이나 '트레일엔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추구하는 행복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내게 주어진 마법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마주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짜릿한 기분이 든다. 새해에는 좀 더 나를 돌아보고, 나는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늘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과연 행복한 삶이란 무언인가?‘에 대해 묻곤 했던 나에게 AT는 너무나 쉽게 그 답을 찾아주었다. (중략)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내 스스로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만, 언제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는 행복한 순간에도 그것을 행복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길 위에서 그 답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행복은 어떤 것을 희생하거나 큰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행복해지는, 조건부적인 것이 아니다. 행복의 주체는 오롯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 자체가 내 삶의 행복임을 실감하고 있다. - P62

이런 상황에서 길을 걷다 보니 배우는 것이 또 생겼다. 행복한 삶이 꼭 100%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만족감을 주는 삶이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행복이라는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P90

우산을 쓰지 않고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는 것은 나를 오롯이 바라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를 맞는 것이 얼마나 따갑고 힘든 일인지 알게 해주었다. 이슬비부터 폭우, 때로는 우박까지 맞으며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비가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내가 어떤 강도까지 버틸 만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사람인지를 인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빗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게 만들었다. - P143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식 트레일을 나타내는 흰색과 사이드 트레일인 하늘색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흰색이나 하늘색이나 어느 하나 틀린 것은 없다. 대신 여기로 가면 빨리 가는 곳, 이곳은 잠시 딴눈 파는 곳으로 모두 옳은 길일 테다. 잠시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차이이고, 속도나 거리의 차이일 뿐. 우리 삶에는 이런 색 구분보다는 그 어떤 것도, 즉 방황이든 직진이든 간에 모두를 옳다고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히말라야 - 설악아씨의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
문승영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히말라야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을 찾아 떠나는 곳(드라마 <나인>의 이야기이다)으로 유명(?)하다. <함께, 히말라야>라고 하니 휘몰아치는 눈 속에 파묻혀 붙이지 못한 향을 손에 쥐고 죽었던 남자 주인공의 형의 모습만 떠올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비의 향을 구해 20년 전의 나에게 돌아가 충고하고자 네팔로 향할 것도 아닌지라 내 인생의 히말라야는 드라마 속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트레킹 책을 만나게 됐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그렇지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 등반이라니... 앞표지의 밝아 보이는 모습에 속아 히말라야를 꿈꾸기엔 너무 힘든 여정이므로 읽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 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사실 히말라야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대자연, 조난, 눈이었던 것 같다. 대자연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수습하지 못한 대원들 그런 두려운 일들을 많이 접한 탓도 있어 미지의 세계 이전에 거대한 무서움 같은 것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나도 일본의 다테야마라는 해발고도 3000m 남짓의 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트레킹은 아니었고 케이블카-버스를 반복해서 오르는 곳이었다. 갔던 날에 눈이 많이 내렸고 대기는 길었지만 올라갈 수는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서 눈 때문에 길이 끊겨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다른 루트가 있어서 조난이라던가 고립이라던가 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하물며 해발고도 3000m~6000m의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트레킹을 하는 루트라니... 책에 실려있는 지도를 보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조금 떨리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길을 함께 걷자" 그렇게 반려자와 신혼여행으로 떠나게 된 히말라야. 이미 챙겨둔 짐을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부터 감정 이입하여 히말라야를 향하여 걷는 모든 걸음의 기쁨과 고난을 느끼며 읽게 됐다. 이미 히말라야로 정해진 순간부터 둘만의 알콩달콩한 신혼여행은 아니었고, 함께 걷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이겨내며 걸어내야 하는 싸움과도 같은 여행길이었다. 이 순간 만약에 나였다면, 그렇게 가정하고 상상하며 읽는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히말라야는 미디어로만 만나는 걸로 다짐했다. 고난 뒤의 달콤한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고난이 너무 감당할 수없이 커서 매번 울상이 되는 나를 발견했으므로.




14-15p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Great Himallaya Trail, 이하 GHT)은 동서로 뻗어 있는 히말라야산맥을 '가능한 가장 높은 경로'로 횡단하는 것이다. (중략) 보통 GHT라고 하면 네팔의 동쪽 국경에 위치한 칸첸중가 북면 베이스캠프인 팡페마(Pangpema)에서 시작하여 해발고도 3,000m~6,000m의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서쪽 국경인 힐사(Hilsa)까지 이어지는 GHT 하이 루트(High Route)를 의미한다. 16p GHT 하이 루트(Great Himallaya Trail High Route) 약 1,700km의 하이 루트는 높고 험한 고개가 많아 '극한의 루트(Extreme Route)'로 불린다. 루트 상에는 5,000m가 넘는 20여 개의 고개와 기술적인 등반을 필요로 하는 6,100m가 넘는 고개 두 개가 있다.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고산 등반 및 산악 구조 기술, 혹한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와 동떨어져 야행의 지대를 지나야 하는 곳도 있어 노련한 산악 가이드가 필요하고, 반드시 캠핑을 해야 하는 곳도 많이 있다. 하이 루트를 한 번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대략 150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날씨와 시간, 체력과 같은 제한이 있는 경우 편의에 따라 구간을 나눠 걸을 수 있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만큼이라도 아끼고 존중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일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포터들은 추위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옷가지 하나 없는 남루한 차림이다. 트레커들이 신고 있는 튼튼한 등산화는 꿈도 못 꾼다. 그들에게 신발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슬리퍼가 대신한다. 등산양말은커녕 얇은 양말마저도 없는 이들이 많다. 먹는 것 또한 넉넉지 않다.
알량한 돈 몇 푼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터 일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알기에 늘 그들과 함께 했다.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그들에 대한 내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