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배웅 -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가 전해주는 삶의 마지막 풍경, 개정증보판
심은이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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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주 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살면서 안 만나면 좋을 사람' 특집을 한 적이 있다.


그날은 가수들이 jyp를 안 만나고 싶은 순간으로 박진영, 교도소에서 15년 근무한 교도관 박정호, 국민 시어머니 배우 서권순, 뇌졸증 전문의 이승훈, 그리고 장례지도사 심은이 그렇게 네 명의 게스트를 모시고 직업에 대한 이야기와 퀴즈를 풀었다. 가볍게 웃는 것을 시작으로 힘겹고 어려운 순간들을 지나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축약된 우리네 삶을 보는 기분이 들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는 결국 이 책을 다시 한 번 꺼내 읽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국내 첫 장례지도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데 작년에 읽으면서 마지막에 혼자는 아니라는 든든함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예능 프로에 나와 덤덤하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를 바라보는 내내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깨닫게 됐다. 처음 읽을 때는 떠나는 이의 입장에서 마음에 짐을 덜은 기분이었다면, 두 번째는 철저히 남는 이의 입장이 되어 좀 더 굳센 의지가 필요했다.


떠나는 사람이 있고 그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이 있으며 그것을 대신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혼자 떠나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어루만지며 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막연하고 두렵기만 했던 단어를 내 삶에 좀 더 가까이 두기로 했다. 긴장하며 불안을 드러내기보다는 제대로 마주하며 온전한 안녕을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음은 늘 삶의 곁에 있다.
삶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과연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까.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죽을 때에도 편안한 모습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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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삽질여행 - 알아두면 쓸데 있는 지리 덕후의 여행 에세이
서지선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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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휴무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존재하는데, 단어 그대로 마음먹고 가는 곳마다 휴무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미리 알아보지 않고 방문한 카페나 음식점의 정기 휴무는 그렇다 쳐도 정기 휴무를 피해서 방문한 경우에도 임시 휴무가 떡하니 버티고 선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잦았는지 친구들이 너랑 어딜 못 가겠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진짜 이름 따라간다는 말처럼 내게 이런 수식어가 붙고 난 이후로는 여행에서까지 '휴무의 아이콘'은 쉴 줄을 모르고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여행에서 정해둔 일정에 휴무가 미치는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말이다. (한숨)


물론 휴무가 아니더라도 여행에는 늘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삽질로 가득하다. 예보와는 다른 날씨를 마주하는 삽질을 시작으로, 차를 놓치고 길을 헤매는 삽질은 기본이고 티켓을 잘못 예약하거나 미리 알아온 정보가 다른 경우의 삽질, 휴무의 삽질,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삽질 등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여행=삽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삽질이 있는데 결국 돌이켜보면 여행의 많은 삽질 덕분에 그간의 여행들이 다채로운 추억으로 남지 않았나 생각된다. 길을 헤맨 덕분에 만나게 된 생각지 못한 장소가 좋았고, 예상하지 못한 날씨로 인해 만나는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았고, 차를 놓친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나 목적지에 도착한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 책은 수많은 여행을 다닌 작가의 여행 이야기... 아니, 삽질 모음집이다. 한 권의 책이 되는 분량의 삽질을 모으려면 얼마나 많은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상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여행에서 삽질하던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맞아!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 나도 이때 진짜 당황스러웠지! 맞아맞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그런 맞장구를 치며 작가의 삽질 모음집을 읽었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과거의 자신을 소환하며 공감할 책이 될 테고, 이왕이면 남들 다하는 삽질은 피하고 싶은 여행 초심자라면, 여행에서 최악의 삽질을 만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여행에 좋은 팁이 될 것 같다. 


작가의 지인들이 '이 정도면 파괴왕 아니냐'라고 했다는 말에 휴무의 아이콘보다는 파괴왕이 좀 더 나은 것 같아 부러움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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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말한다면 _ 유럽 - 유럽여행 에세이 오디오북
김혜인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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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꼭 필요한 단어를 들고 유럽으로 떠난 작가의 '긴장 완화'의 순간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유럽의 바쁘고 복잡한 여행기가 아니라 멈추는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럽은 처음인 것 같아 새로웠다. 띄엄띄엄 쓰여진 글과 천천히 넘기며 여운을 남기는 사진들에 시선을 뺏겨 책을 읽는 순간의 나도 자주 멈추고 빠져 들었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멈추는 일이란 사실 쉽지 않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마련이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는 주변의 시선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멈춤'은 많은 것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모두 이겨내며 일상의 멈춤을 마주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 역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기꺼이 '멈춤'을 선택하던 때가 있었다. 완전한 멈춤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도시에서 정전같은 고요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느긋하게 걷는 일. 새로운 곳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일. 여러 사람의 일상을 스쳐지나는 일. 그렇게 홀로 보내던 매순간들이 모여 나를 또 살아가게 했다. 걱정과 불안을 잊고 무작정 미래의 나를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했다. 인생에는 마침표도 제대로 찍어야 하지만 중간 중간 필요한 자리에 쉼표도 제대로 찍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보지 않아도 눈 감고도 찾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유럽의 뻔한 랜드마크 사진들이 담겨있지 않아서 좋았다.

익숙함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렇게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구나. 그렇게 처음으로 유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디오북은 처음이라 너무 궁금했던 부분.

책에 있는 QR코드를 따라가면 작가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읽는 오디오북이 있다.

나의 호흡으로 읽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잠시 책을 덮고 작가의 목소리로 책을 따라가면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지금 갈망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적당함‘이 아닐까. - P25

우리에게 펼쳐질 남은 시간 그 어느 점에 또다시 이렇게 세계 어딘가에서 마주했으면 한다고. 그럼 오늘 밤처럼 행복한 시간을 좀더 자주 가질 수 있지 않겠냐고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빌고 있었지만 정말 큰 행운이 따라줘야 이뤄질 수 있는 바람이란 것을 우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생각했 것보다 아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것도 이제 알고 있다. 10년이 지나 중학생 때 슥 하고 적어 본 여덟 글자의 꿈이 마법같이 이뤄진 것처럼 또다시 행운이 우릴 찾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 P38

변함없는 친구
마음에 드는 알코올 한 잔
와 본 적 없는 낯선 곳
살아온 날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추억
춥지도 덥지도 않은 포근한 밤
거리의 음악
그리고 여전한 낭만적 인생관
이보다 더 완벽한 밤이 있을까 - P40

호수의 빛깔을 만들기 위해
브리엔츠 마을을 비춰주기 위해
내려온 오늘의 햇살이
내게도 와서 부서져 줬으면.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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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를 위한 출판백서 - 기획출판부터 독립출판까지, 내 책 출간의 모든 것
권준우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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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만났던 <예비작가를 위한 출판백서>를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다시 읽으니 역시나 좋았던 부분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 꺄르르 웃었다.

그러면서 스쳐가는,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글로 나무 아깝게 책이 되었을까 싶었던 책들과

독립 출판 덕분에 만나게 된 좋은 글들이 담겨있던 고마운 책들이 생각났다.

요즘은 편집자도, 출판사도, 디자이너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기획, 편집, 인쇄를 도맡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에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글의 교정이라던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같은 것.

그래도 책까지 낼 정도로 글을 쓴다는 것은 쓰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일텐데

우연한 기회에 책을 들었다가 몇 문장 스치기도 전에 여러 오탈자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탄식을 막을 길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좋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만약, 독립출판을 앞두고 있는 작가님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자신의 글의 오탈자를 확인하시길 바란다.

자신의 글에 최소한의 예의가 지켜졌다면

다음 단계인 출판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 좋다.

어떤 일이든 스텝 바이 스텝이니까.

스텝을 지키지 않고 내 글이 어때서! 출판할거야!

이 책부터 읽는다면 아마 제대로 뼈 맞을 확률이 높다.

이 책의 저자는 출판에 대하여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정신 바싹 차리는 팩트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도 없이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근데 그런 일이 가능한 곳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 역시 묻고 싶다.

이 책은 시행착오 없이 책을 내는 방법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었던 저자가 독자에게 조금은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 책이 되어줘서 좋았다.

막연했던 책 출판에 대하여 방향성을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은 책이었다.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부터 스스로 출판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단계별로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쓰고 싶으니까 쓰는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적이 없어도 좋다.
그저 쓰고 싶다는 열정 하나면 된다.
글을 쓰는 데 이유 같은 걸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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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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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에 마스다 미리 신작에 반가웠던 기억이 나는데, 길고 길었던 장마의 끝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스다 미리의 신작이 나왔다. 한여름과 잘 어울리는 파란 옷을 입고 나타난 뽀송뽀송한 책이 반가워 에어컨 아래 시원하게 앉아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이번 책에는 일상 사이사이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쓰모토, 가나자와, 한국, 도오카와 이나리, 삿포로, 오키나와, 침대 특급 '카시오페아' 여행까지! 한국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반가운데 내가 다녀온 여행지도 있어서 그녀의 흐름을 따라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맞장구 치는 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먹는 이야기. 여럿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한국은 비오는 날 파전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오는 날=파전, 이 공식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낭만적이야. 그렇게 말하는 마스다 미리가 나는 너무 좋았다.



20대까지는 남들이 정해둔 기준으로 살려고 참 많이 노력했었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에,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누군가의 생각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다 자주 나를 잃어버렸다. 집에 오면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미움받기 싫어서 또 이리 저리 휘둘리고 흔들렸다.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매일밤 자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30대의 내가 되었다. 그때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을 목표로 두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는 일에 오랜 시간 매달렸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찾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보단 운동화가 좋고, 렌즈보단 안경이 좋고, 주요관광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가 좋고, 나를 다 아는 것처럼 단정짓는 사람보다는 너에게 그런 면도 있었구나 유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좋고, 여전히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좋다. 어차피 싫은 것은 끊임없이 계속 나타날테고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에 나를 끼워맞추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또 어느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거고 그럼 또다른 나를 끌어안고 더 좋음을 향해 어른이 되어가면 되는 것 아닐까. 무얼 선택해도 내 세계는 끝나지 않으니까.





인생에는 안 좋았던 적도 있지만, 언제나 배는 어김없이 고팠다.

배고픔이 나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도와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 P47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1밀리미터도 바뀌지 않는다면, 먼저 포기해도 좋을 것이다.
반드시 마음이 통하는 건 아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그래 보일 뿐이다. - P57

선택하지 않은 맛.
선택하지 않은 무언가.
선택하지 않은 것도 선택한 것이 되어 내 세계는 돌고 있다. - P175

내 맘대로니까, 편안하다.
하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미덥지 못한 감정.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인생은 항상 ‘나‘보다 앞에 서서, 내 허리에 묶인 밧줄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나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든 내 인생에서 나는 늦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불안한 마음에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테이블에 푹 엎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아 그렇구나 하면서 허리를 쭉 폈다.
이럴 때는 역공이 최고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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