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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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에 마스다 미리 신작에 반가웠던 기억이 나는데, 길고 길었던 장마의 끝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스다 미리의 신작이 나왔다. 한여름과 잘 어울리는 파란 옷을 입고 나타난 뽀송뽀송한 책이 반가워 에어컨 아래 시원하게 앉아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이번 책에는 일상 사이사이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쓰모토, 가나자와, 한국, 도오카와 이나리, 삿포로, 오키나와, 침대 특급 '카시오페아' 여행까지! 한국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반가운데 내가 다녀온 여행지도 있어서 그녀의 흐름을 따라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맞장구 치는 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먹는 이야기. 여럿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한국은 비오는 날 파전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오는 날=파전, 이 공식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낭만적이야. 그렇게 말하는 마스다 미리가 나는 너무 좋았다.



20대까지는 남들이 정해둔 기준으로 살려고 참 많이 노력했었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에,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누군가의 생각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다 자주 나를 잃어버렸다. 집에 오면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미움받기 싫어서 또 이리 저리 휘둘리고 흔들렸다.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매일밤 자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30대의 내가 되었다. 그때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을 목표로 두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는 일에 오랜 시간 매달렸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찾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보단 운동화가 좋고, 렌즈보단 안경이 좋고, 주요관광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가 좋고, 나를 다 아는 것처럼 단정짓는 사람보다는 너에게 그런 면도 있었구나 유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좋고, 여전히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좋다. 어차피 싫은 것은 끊임없이 계속 나타날테고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에 나를 끼워맞추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또 어느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거고 그럼 또다른 나를 끌어안고 더 좋음을 향해 어른이 되어가면 되는 것 아닐까. 무얼 선택해도 내 세계는 끝나지 않으니까.





인생에는 안 좋았던 적도 있지만, 언제나 배는 어김없이 고팠다.

배고픔이 나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도와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 P47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1밀리미터도 바뀌지 않는다면, 먼저 포기해도 좋을 것이다.
반드시 마음이 통하는 건 아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그래 보일 뿐이다. - P57

선택하지 않은 맛.
선택하지 않은 무언가.
선택하지 않은 것도 선택한 것이 되어 내 세계는 돌고 있다. - P175

내 맘대로니까, 편안하다.
하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미덥지 못한 감정.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인생은 항상 ‘나‘보다 앞에 서서, 내 허리에 묶인 밧줄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나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든 내 인생에서 나는 늦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불안한 마음에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테이블에 푹 엎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아 그렇구나 하면서 허리를 쭉 폈다.
이럴 때는 역공이 최고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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