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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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는 태초의 반란 호라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면, "나는 호라이. 밥 위에만 있고 싶지 않아." 밥 위에 우뚝 선 호라이는 선전포고를 하고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길을 걸으며 나는 왜 호라이인지, 왜 하얗고 노란 것인지, 톡 하면 터질 것 같이 연약한지, 매끈하고 둥근 생김새까지 들먹이며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호라이는 마치 사춘기 시절의 나같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답이 딱히 뭐라도 상관없는 질문을 해가며 방황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저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지, 반숙이 최고라고 외칠 줄만 알았지, 호라이의 존재나 행방같은 것을 떠올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 고개를 숙인다. 그러는 사이 호라이는 끝없이 훨훨 자유롭게 날아 내가 모르는 세상을 유영하고 있겠지. 아니면 우주적 존재가 되어 이미 우리 곁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호라이의 세계는 끝이 없구나!! 호라이!! 호라이!!!



도망치는 호라이...



태양이 된 호라이...



호라이 왕국에 도착한 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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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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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는 기발하고 엉뚱하고 유쾌한 호라이의 대모험을 그린 그림책이다.

우리가 예상한 계란후라이의 행방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아는 계란후라이의 행방에 대하여 적어본다. 밥 위에 올라간, 도시락 밥 밑에 숨겨진, 짜장면 위에 올라간, 후라이팬에 올려진, 바닥에 떨어진, 햄버거 사이에 끼워진, 함박 스테이크 위에 올라간 등등 사실과 경험에 의존한 행방만 줄줄이 읊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란후라이의 형태를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에서 계란후라이의 모습을 한 '호라이'는 매우 자유롭다. 앞서 내가 적은 곳은 물론이고 친구네 집에도 놀러가고, 운동회, 하늘나라, 장례식까지 상상 이상의 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호라이를 만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다음의 호라이는 어디에 있을까 괜스레 궁금해지기도 하고 맞춰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조카도 궁금한지 빨리 넘기라고 성화를 부려 순식간에 호라이의 마지막 순간까지 만나게 됐다. (표지에 무릎 꿇고 앉은 호라이의 모습을 보고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시종일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한 호라이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다가도 내 주변에도 호라이가 존재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정도 상상력이면 내 주변에도 호라이는 분명히 존재할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환생하는 호라이...



죽은 호라이...





친구 가방에 숨어있는 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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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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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으며 마감에 치이던 일상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 이어 그의 신작 소설인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를 읽게 됐다. 한여름 숲으로 초대받아 여름을 애틋하게 하던 시간을 지나 내 곁에 켜켜이 쌓여온 수많은 계절의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 당연하게 홋카이도를 그리워 하게 되는 줄 알았건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간 내 곁을 떠난 가족들의 수많은 장례식을 떠올리게 했다. 장례식장에 둘러앉아 각자 가지고 있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었지 애써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결국 모두의 눈길이 영정 사진에 가 닿는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언젠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상처받은 사실에 놀랐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20여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으니 약간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가족'이란 비슷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고, 우리는 진짜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이란 존재는 어느 집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우리에게만 닥친 시련같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결국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다른 사람이 가족이었고, 그럼에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 역시 가족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겠다. 모두가 사라지고 모든 기억을 잃어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섬세한 문장과 단어의 조합들이 나를 산속의 별장으로 안내했더라면, 이번 책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특유의 섬세함이 가슴에 하나씩 틀어박혀 나를 울렸다.

 

담담하게 써 내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모두의 이야기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오래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은 전혀 슬프지 않았는데 책을 덮고 한숨 돌리는 사이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어쩌면 그게 지난 일들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앞으로의 그리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눈으로 우주의 끝을 보려는 것과 비슷했다. - P6

"핏줄이 이어진 부모 자식은 사실 성가셔.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타인에게 사랑받으며 자란다면 오히려 진정한 신뢰를 키울 수 있을지 모르지. 아이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 P90

자신도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안쪽의 격렬한 뭔가를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안쪽은 그저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깥에서 들어오려는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싶은 마음은 아주 강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 P225

멀다는 것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작게 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은하계도 수십,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용돌이 모양의 형태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P330

가족이란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P361

사라질 준비. 그것은 큰 고리를 중간 정도의 고리로 줄이는 일, 작은 고리를 중심을 향해 더욱 축소해가는 일, 고리였던 것은 결국 점이 되고 그 작은 점이 사라질 때까지가 그 일이었다. -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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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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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나의 여행을 돌아보면 언제나 도시의 화려함과 반짝임보다는 지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언제나 랜드마크는 조용히 무시하고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곳이 대부분 자연과 어우러진 한적한 동네였다. 어쩌면 그곳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시골'이라 불리는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시골'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쪽으로의 여행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나라와 수도만 외우는 정도라 당연하게 시골의 존재 유무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제목이라 잽싸게 펼쳐 읽었다.


이 책은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인 문정훈님이 글을 쓰고 셰프 겸 푸드라이터인 장준우님이 사진을 찍는 프랑스 시골의 먹고 마시는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크게 부르고뉴, 프로방스 두 파트로 나눠져 있으며, 시골에 대한 덕심이 느껴지는 신명나는 문장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사진만으로 프랑스의 시골 인심, 풍부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농산물, 다양한 소도시 마을의 매력, 지역별 와인 맛, 자연 풍경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 그래서 이 책이 화보로 팔렸으면 좋겠다고 하셨구나! (웃음)


프랑스 여행하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디저트 식도락 여행을 과감히 지우고 렌트한 차를 타고 달리며 여러 포도밭에 들러 와인을 맛보고 라벤더, 해바라기, 허브가 가득 펼쳐진 자연 풍경을 만나고 소박한 마을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을 새로 입력했다. 이런 프랑스 여행이라면 몇 번이고 방문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동안 왜 아무도 프랑스의 시골은 소개해 주지 않았는지, 왜 주구장창 파리의 에펠탑만 자랑했었는지, 프랑스를 다녀온 지인들에게 따져 묻고 싶을 만큼 프랑스의 시골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언젠가 하늘길이 열려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프랑스 시골 여행도 꼭 리스트에 올려둬야겠다. 랜드마크 따위 스치듯 지나쳐 얼른 포도밭 도장 깨기를 시작하고 싶다. 와인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과음하고 비싼 술값에 와이파이 잃은 한국인처럼 울어도 보고, 그들만의 자부심 담긴 음식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고 음식 맛에 감탄하고 싶다.


하아, 정말 여행이 너무 그리웠는데 이렇게나마 여행 욕을 채워본다. 그래서 이분들 한국의 시골 이야기는 언제 나온다고요?






포도밭을 둘러볼 때에는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 열매를 주로 보게 되는데, 앞으로 포도밭을 가게 된다면 나무 아래에 있는 땅를 제대로 관찰할 것을 추천한다. 시골 여행의 백미다. 땅을 관찰하려면 흙을 직접 만져봐야 한다. 그 질감을 피부로 느껴보자. 예전 프랑스의 수도사들은 포도밭 흙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흙을 입에 넣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참도록 하자. 흙 말고도 이 세상엔 먹을 것이 충분히 많으니. 흙을 느꼈다면 이제는 포도를 내리쬐고 있는 태양의 영험함을 느껴보자. 어렵지 않다. 실은 포도밭에서 조용히 눈만 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다. 어떤 포도밭에서는 자글자글, 또 어떤 포도밭에서는 바삭바삭, 포도밭마다 다른 태양의 ‘손길‘이 내 얼굴을 희롱한다. 그리고 조금 오래 머물게 된다면 어떤 질감의 바람이 포도를 쓰다듬고 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포도가 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 태양, 흙 같은 이런 떼루아Terroir가 와인이 된다. - P26

내가 다시 부르고뉴를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반드시 이 샤토 드 베세울의 객실에서 적어도 하루는 머물 것이며, 매일 아침 포도밭 사이를 말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매일 해가 질 무렵에 이 훌륭한 베세울의 레스토랑에서 돼지처럼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곳. 그러나 나도 모르게 와인을 과음하게 되고, 다음날 식사보다 훨씬 비싼 술값을 확인하면서 마치 와이파이를 잃은 한국인처럼 슬퍼하는 곳. - P48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풍족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아니한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힘겹게 채집하고, 양을 늘리기 위해 맛없고 질긴 부위까지 끓여서 먹어야 한다면 예술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생존을 위한 절절한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 뿐이다. - P72

프랑스의 어리바리한 돌 박음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또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보인다. 많은 이들에게 프랑스는 화려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내 머릿속의 프랑스 감성이란,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그러니까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다. 이게 내 마음속 ‘프랑스다운‘ 느낌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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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수없이 쏟아지는 여행 에세이 중에서 어떤 우선 순위로 책을 고르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작가이고 두 번째는 제목, 그리고 세 번째는 나를 붙드는 문장 하나 정도인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 실망할 확률이 적고 제목으로 붙잡힌 순간에는 이미 내용이 궁금해진 상태. 마지막, 나를 붙든 문장 하나를 위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부제에서도 밝힌대로 나를 사로 잡은 제목의 여행 에세이 다섯 편을 추천해 본다. (물론 작가가 먼저였던 경우도 있다)





'혼자' 떠나는 것도 자신이 없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주눅 들어 오롯이 풍경과 마주하지 못할 것에 대한 용기가 없었다. 그런 중에 받은 책의 제목이 너무 좋아서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여러번 소리내어 읽었다. 그게 마치 용기를 만드는 주문이라도 되는 냥.

나는 사실 주어진 시간동안 40개국을 떠도는 배낭 여행에 큰 로망이 없었다. 주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것에도 늘 시큰둥했고, 더 나이 먹기 전에 꼭 해봐야 한다고 부채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책이나 매체로 나오는 배낭 여행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제목이 좋아서 시작한 책이 그 관심도 없던 배낭 여행인것은 사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예쁜 것을 닮은 '너'라는 존재에 대하여.

이 책을 읽으면 20대에 수많은 곳에서 경험했던 좌절과 실패가 떠오른다. 완벽하지 않아서 실패하고 견딜 수 없는 무게에 무너지던 날들, 모든 것을 잊고 싶어서 멀리 떠났으면서 결국 모든 것을 떠올리던 날들, 행복해지려고 떠난 곳에서 무참히 부서지던 날들, 이겨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웠던 날들, 아무렇게나 흔들리던 날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너'로 인해 이겨지던 날들까지.

그동안의 무수한 여행들이 나를 새롭게 바꾸지는 않겠지만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지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던 책이라 참 좋았다.


64p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111p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143p

"세계일주를 할 거야!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올 거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 가볼 거야!"

이렇게 말한 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내 모든 걸 걸었더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꿈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155p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곳보다 어떤 세상인지 잘 아는 곳이 더 두려웠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예상 가능하고 그 예상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끔찍하고 무서웠다.

238p

내가 누군가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지게 되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너무 좋아하는 생선 작가의 여행 에세이. 프롤로그만 외울 정도로 읽다가 겨우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만나서일까, 비슷한 나잇대를 지나고 있어서였을까. 이미 제목부터 위로가 되어주던 책이었다.

나 역시, 자유롭게 사는 그를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불분명하고 떠나고 싶어도 마음껏 떠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유롭게 떠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자유에도 족쇄는 있었다고 그가 고백했다. 내가 동경하던 그에 삶 이면에는 반짝이지 않는 구석이 존재했고, 떠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서 서른 살의 두렵고 외로웠던 날들이 모두 꿈처럼 아득해 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 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보는 것도, 무엇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살아가는데 진짜 중요하고 소중해서 꼭 간직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만으로 사는 건 이미 외롭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는 서른 즈음이라 다행이다.


18-19p

자유로워진다는 건 현실에 무심해지는 것이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생각하기보다는 느끼는 편이 현명하다.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방향이 정해진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가능한 한 최고의 선택을 하려 한다. 최고의 선택이란 자신도 세상도 가능한 한 피해를 입지 않는 상태이며, 그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상태이다.

41p

비록 지금 우리는 이렇게 초라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렇게 잘 살고 싶다.

109p

서른 살의 나는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고, 메마른 사막 위에서 외로워 울었다. 서른세 살의 나는 더 이상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세상 모든 길이 결국 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므로. 그리고 낯선 길 위에서 혼자라는 사실에 외로워 울지도 않게 되었다.

외로움, 초라함, 그리고 고독함을 내 여행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게 되어 있고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길 위에서 나이가 조금 더 들었고, 이제는 불안한 소년에서 담담한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또다시 떠날 것이고, 또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116p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여행을 통해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 있던 더럽혀진 마음과 필요 없는 생각을 씻어내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길 바란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인가를 쓸쩍 주워 품에 담아오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여 잘 익은 사과 알처럼 탐스럽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최갑수 시인의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의 개정 증보판으로 나왔던 책인데 나는 이 책으로 최갑수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대부분 책의 시작과 끝이 여행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반면, 계절에서 계절로 이어지는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부산, 군산, 해남, 제주, 경주등 우리나라 곳곳에 이어 터키, 스코틀랜드, 도쿄 등 다양한 외국까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마치 1년 동안 전세계를 유람하는 듯한 여행 에세이는 처음이라 좋았다. 그것이 마치 우리네 삶 같아서, 여행이 결국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던 책.

시인이라 그런지 간결하게 툭툭 던져진 문장부터 내 마음을 내려치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여행지를 걸으며 느꼈던 소감같은 그냥 일기같은 이야기도 마음을 흔들었다. 자주 멈춰 문장을 곱씹고 결국 내 이야기까지 하게 만드는 글들이 좋았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 봤을 법한 무심한 풍경들이 나를 붙든다. 너는 잘 지내고 있냐고 묻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나에게 무수히 던지던 질문들이 또 한 번 나를 덮쳐오면, 재촉하는 법없이 오랫동안 곁에서 나의 어떤 말들을 기다려줬다. 그렇게 나는 또,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


38p

"이곳에만 오면 인생이 간결해지는 것 같아."

하조대 해변을 거닐다 친구가 던진 말.

"일하는 데 여덟 시간, 사랑하는 데 여덟 시간, 자신을 위하는 데 여덟 시간. 하루를 이렇게 삼등분해서 살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텐데......"

53p

여행은 때론 이런 식으로도 이루어지지.

오랫동안 계획을 하고 지도를 보며 여정을 짜고 트렁크를 수십 번씩 닫았다 열며 짐을 꾸려야 하는 것만은 아니야.

누군가가 내게 보낸 엽서 한 장, 혹은 짧은 전화 한 통화로 우리는 아득한 거리를 달려가곤 하지.

그곳에서 우린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161p

익숙한 통증은 없다. 아팠던 자리가 다시 아파도 통증은 늘 새롭다. 그래서 지겹다. 내 속에 머물고 있는 너처럼.

179p

기어이 너를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은 소금창고처럼 스르륵 허물어져 내리고 인생은 내내 이별 쪽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부질없어진다.

풍경은 우리를 어루만지지만 떄로는 아득히 밀어낸다.

202p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을 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고 스스로가 텅빈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들......

풍경이 해결책을 줄 수는 없지만 위로는 준다고 믿는다.





<끌림>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이 나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

언제나 그렇듯 작가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 두고 온 사람, 떠나간 사람, 곁에 머물러준 사람, 마음에 묻어둔 사람 등등. 일반적인 '여행기'를 기대하고 읽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는 그의 구구절절한 사람 이야기가 결국 여행인 셈이다. 당연한 일상 속에 당연하지 않은 '당신'이 존재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당신'이 누군가에겐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아니면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여행을 떠나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어떤 마음을 안고 여행을 떠났든 현실이 어땠든지 간에 모두에게 결론은 똑같다. 반드시 돌아온다.

그러면 우리는 정해진 결론 앞에서 왜 계속 떠나는 것일까. 나는 그 대답을 이 책을 통해서 얻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것들이 돌아가야 할 곳의 수많은 것들을 그립게 만든다. 소소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하찮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을 다정하고 애틋한 곳으로 만들어 또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또 짐을 싸고 있겠지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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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사랑이 어디론가 숨어버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걸 만지고 싶어서일 텐데. 그걸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지고 싶은 걸 텐데. 갖자는 것도, 삼켜버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만지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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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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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다해 끝까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면서, 전속력을 다해 하고 싶은 것 가까이 갔다가 아무 결과를 껴안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도 살고 있지 않을가.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아니 어쩌면 우린 영원히 그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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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헤어짐의 상태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던 거라고 믿게 하는지를,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되는지를, 왜 헤어진 이후로는 정확하지 않은 것만 생각하게 되는지를 모르고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를, 어쩌면 그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버둥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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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삶은 일방통행이어선 안 된다. 루벤 곤잘레스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만 일방통행이어야 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털어놓을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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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 있는 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날씨처럼, 문득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갑자기 눈가가 뿌예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




온전히 제목만 보고 마음이 울컥했던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탓도 컸지만, 책을 읽고나니 그 울컥함은 조금 다른 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쓴 첫 번째 후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누군가의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 나에게는 여행이 은유였다.

그러니까 떠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아니라 첫 번째로 떠났던 해외 여행을 유독 오래 생각나게 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와 도시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들이 적혀 있는데 드라마틱하고 아름답기만 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계획대로 되지 않고, 시행 착오를 겪고 실패하는 여행 이야기를 통해 소소하게나마 여행팁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며 공감하게 하고 추억을 꺼내보게 하는 감성적인 글이 나를 결국 울컥하게 만든 것이다.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일이 두려워 도무지 용기를 내지 않으면서 여행에서는 언제나 용기 백 배의 사람이 되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 뭐가 나를 그렇게 바꾸는 것일까 궁금하던 때도 있었다. 근데 이제는 그게 진짜 '나'라는 것을 안다. 낯선 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진짜로 되고 싶었던 내가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89p

하찮은 고양이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삶이라면, 존재는 참을 수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사는지 질문할 때 아주 숭고하고 고매한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114p

나는 뮌스터를 걸으며 도시의 아름다운 미래는 실용적인 질문에 반박하는 데서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용적인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꼭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들이 도시의 아름다운 미래까지 보장해 주지 않는다.

실용적인 질문에만 응답했던 대부분의 도시들이 추하게 변해갈 때, 비실용적인 질문에 응답했던 도시들이 시간과 함께 더욱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여행을 다니면서 셀 수 없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런 도시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9p

여행에서는 많은 언어를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마음이라는 언어만 잘 습득하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197p

여행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색깔은 작은 팔레트에 머물고 있는 내가 가진 색깔의 한계를 자주 넘어서곤 했다. 그때마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을 통해 색깔의 한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지 못했던 한계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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