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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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으며 마감에 치이던 일상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 이어 그의 신작 소설인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를 읽게 됐다. 한여름 숲으로 초대받아 여름을 애틋하게 하던 시간을 지나 내 곁에 켜켜이 쌓여온 수많은 계절의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 당연하게 홋카이도를 그리워 하게 되는 줄 알았건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간 내 곁을 떠난 가족들의 수많은 장례식을 떠올리게 했다. 장례식장에 둘러앉아 각자 가지고 있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었지 애써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결국 모두의 눈길이 영정 사진에 가 닿는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언젠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상처받은 사실에 놀랐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20여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으니 약간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가족'이란 비슷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고, 우리는 진짜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이란 존재는 어느 집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우리에게만 닥친 시련같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결국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다른 사람이 가족이었고, 그럼에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 역시 가족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겠다. 모두가 사라지고 모든 기억을 잃어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섬세한 문장과 단어의 조합들이 나를 산속의 별장으로 안내했더라면, 이번 책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특유의 섬세함이 가슴에 하나씩 틀어박혀 나를 울렸다.

 

담담하게 써 내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모두의 이야기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오래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은 전혀 슬프지 않았는데 책을 덮고 한숨 돌리는 사이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어쩌면 그게 지난 일들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앞으로의 그리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눈으로 우주의 끝을 보려는 것과 비슷했다. - P6

"핏줄이 이어진 부모 자식은 사실 성가셔.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타인에게 사랑받으며 자란다면 오히려 진정한 신뢰를 키울 수 있을지 모르지. 아이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 P90

자신도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안쪽의 격렬한 뭔가를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안쪽은 그저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깥에서 들어오려는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싶은 마음은 아주 강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 P225

멀다는 것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작게 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은하계도 수십,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용돌이 모양의 형태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P330

가족이란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P361

사라질 준비. 그것은 큰 고리를 중간 정도의 고리로 줄이는 일, 작은 고리를 중심을 향해 더욱 축소해가는 일, 고리였던 것은 결국 점이 되고 그 작은 점이 사라질 때까지가 그 일이었다. -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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