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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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나의 여행을 돌아보면 언제나 도시의 화려함과 반짝임보다는 지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언제나 랜드마크는 조용히 무시하고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곳이 대부분 자연과 어우러진 한적한 동네였다. 어쩌면 그곳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시골'이라 불리는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시골'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쪽으로의 여행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나라와 수도만 외우는 정도라 당연하게 시골의 존재 유무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제목이라 잽싸게 펼쳐 읽었다.


이 책은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인 문정훈님이 글을 쓰고 셰프 겸 푸드라이터인 장준우님이 사진을 찍는 프랑스 시골의 먹고 마시는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크게 부르고뉴, 프로방스 두 파트로 나눠져 있으며, 시골에 대한 덕심이 느껴지는 신명나는 문장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사진만으로 프랑스의 시골 인심, 풍부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농산물, 다양한 소도시 마을의 매력, 지역별 와인 맛, 자연 풍경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 그래서 이 책이 화보로 팔렸으면 좋겠다고 하셨구나! (웃음)


프랑스 여행하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디저트 식도락 여행을 과감히 지우고 렌트한 차를 타고 달리며 여러 포도밭에 들러 와인을 맛보고 라벤더, 해바라기, 허브가 가득 펼쳐진 자연 풍경을 만나고 소박한 마을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을 새로 입력했다. 이런 프랑스 여행이라면 몇 번이고 방문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동안 왜 아무도 프랑스의 시골은 소개해 주지 않았는지, 왜 주구장창 파리의 에펠탑만 자랑했었는지, 프랑스를 다녀온 지인들에게 따져 묻고 싶을 만큼 프랑스의 시골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언젠가 하늘길이 열려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프랑스 시골 여행도 꼭 리스트에 올려둬야겠다. 랜드마크 따위 스치듯 지나쳐 얼른 포도밭 도장 깨기를 시작하고 싶다. 와인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과음하고 비싼 술값에 와이파이 잃은 한국인처럼 울어도 보고, 그들만의 자부심 담긴 음식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고 음식 맛에 감탄하고 싶다.


하아, 정말 여행이 너무 그리웠는데 이렇게나마 여행 욕을 채워본다. 그래서 이분들 한국의 시골 이야기는 언제 나온다고요?






포도밭을 둘러볼 때에는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 열매를 주로 보게 되는데, 앞으로 포도밭을 가게 된다면 나무 아래에 있는 땅를 제대로 관찰할 것을 추천한다. 시골 여행의 백미다. 땅을 관찰하려면 흙을 직접 만져봐야 한다. 그 질감을 피부로 느껴보자. 예전 프랑스의 수도사들은 포도밭 흙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흙을 입에 넣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참도록 하자. 흙 말고도 이 세상엔 먹을 것이 충분히 많으니. 흙을 느꼈다면 이제는 포도를 내리쬐고 있는 태양의 영험함을 느껴보자. 어렵지 않다. 실은 포도밭에서 조용히 눈만 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다. 어떤 포도밭에서는 자글자글, 또 어떤 포도밭에서는 바삭바삭, 포도밭마다 다른 태양의 ‘손길‘이 내 얼굴을 희롱한다. 그리고 조금 오래 머물게 된다면 어떤 질감의 바람이 포도를 쓰다듬고 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포도가 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 태양, 흙 같은 이런 떼루아Terroir가 와인이 된다. - P26

내가 다시 부르고뉴를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반드시 이 샤토 드 베세울의 객실에서 적어도 하루는 머물 것이며, 매일 아침 포도밭 사이를 말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매일 해가 질 무렵에 이 훌륭한 베세울의 레스토랑에서 돼지처럼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곳. 그러나 나도 모르게 와인을 과음하게 되고, 다음날 식사보다 훨씬 비싼 술값을 확인하면서 마치 와이파이를 잃은 한국인처럼 슬퍼하는 곳. - P48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풍족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아니한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힘겹게 채집하고, 양을 늘리기 위해 맛없고 질긴 부위까지 끓여서 먹어야 한다면 예술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생존을 위한 절절한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 뿐이다. - P72

프랑스의 어리바리한 돌 박음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또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보인다. 많은 이들에게 프랑스는 화려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내 머릿속의 프랑스 감성이란,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그러니까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다. 이게 내 마음속 ‘프랑스다운‘ 느낌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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