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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제철 잘 챙기면서 살고 계신가요?“
누가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가족들이 있었고 철마다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남들보다 절기에 대해 잘 알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조금 민감한 편이다 그런 인생을 거듭하면서 계절마다 만들어둔 체크리스트들이 있다 예를 들면 봄에는 원미산 진달래를 꼭 볼 것, 장마에는 꼭 웅덩이를 밟으며 걸을 것, 노랗게 물든 가을 햇살에 열심히 걸을 것, 눈 오는 날은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갈 것 등등 빼곡하게 쌓인 체크리스트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한 해가 끝나버리면 회고하며 ’으이그! 뭐 하느라 그것도 못했어!‘ 나를 자책하고 ’내년엔 잘 하자‘며 등을 두들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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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제철 꽃‘이다 순식간에 피었다가 지는 통에 놓치는 것도 일쑤지만 되도록이면 초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자주 걷는 것을 목표로 사진을 많이 찍어둔다 꽃 마중을 나가 피는 꽃을 반기고 지는 꽃을 보내주는 시간들이 나에겐 어쩌면 가장 중요한 행사가 아닐까 싶다 봄을 알리는 봄까치꽃부터 초여름의 수국, 겨울의 동백까지 잘 마주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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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계절보다 더 세밀하게 나눈 24절기 제철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절기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던 나조차도 24절기를 다 외우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제철과 묶어 절기를 마주하니 확실히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역시 절기는 참 신기한 녀석이라는 생각과 옛날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온난화다 뭐다 계절이 이상하다 싶어도 절기에 딱 맞춰 계절의 흐름이 변하고 공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아무튼 그렇게 절기를 경험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달력에 다가오는 절기를 찾아보게 된다 다음 절기는 무슨 이름일까 어떤 뜻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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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절기마다 추억을 떠올리며 써내린 글에 나도 비슷한 추억을 꺼내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이 많아서 좋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서 살고 계시군요 절로 웃음이 났다 일이 바빠서 놓친 걸 생각하면 괴로웠고 생각지도 못한 약속을 마주하면 마치 내 세상이 넓어진 것처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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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만에서 망종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고, 망종은 벼와 같이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한다 작가는 소만엔 가벼운 안부를, 망종엔 무얼 하든 바깥이 제철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가벼운 안부를 짙어진 초록 밑에서 하면 어떨까 하지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바깥의 초록과 예쁘게 피어난 장미 구경을 실컷 하자 그럼 뒤이어 능소화가 피어나겠지
그렇게 앞으로 있을 계절의 부지런함을 따라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제철맞이를 하면 좋겠다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계절을 더 잘게 나누어둔 절기가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 네 번이 아니라 스물네 번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일이겠지. 이래서 지금이 좋아, 할 때의 지금이 계속 갱신되는 일. 제철 풍경을 누리기 위해 이루러 시간을 내서 걷고 틈틈이 행복해지는 일. - P69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 P102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온 마음을 한 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좋아하는 바깥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즐기고 그게 곧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 P141
어떻게 그런 걸 알아? 묻는 말에 좋아하면 알게 돼, 대답하는 일.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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