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다

 

여기, 고난이라면 어떤 예술가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그 어떤 예술가보다도 자신의 혼을 담아 작품 활동을 했다. 이에 20세기 최고의 여류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화폭 속에 자신의 치열했던 삶과 가혹한 운명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불꽃같은 화가, 그녀의 이름은 프리다 칼로다.

 

파란만장. 그녀의 삶은 이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으며, 성장 후에는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무려 서른다섯 번이나 수술을 해야 했다. 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했던 결혼생활 역시 실패로 끝났고, 유산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죽는 날까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언제나 행복하고 쾌활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구질구질한 슬픔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이렇듯 신은 그녀에게 잠시도 행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고통의 순간에 그 고통에 집착하지 않았고, 외로울 때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지 않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초월하다


‘왜 하필 나일까?’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연,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날도 있었다. 차라리 그 수많았던 사고로 인해 생각마저 빼앗겼다면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기도 했다. 숨만 붙어 있을 뿐 죽은 목숨과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창문 너머로 새 한 마리가 유유히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자신도 새처럼 다시 비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고통을 잊기 위해 무수한 상상을 했다. 상상 속 자신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당당했으며, 무엇보다도 건강했다. 생각이 변하니 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는 엄마에게 부탁해 천장에 거울을 달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었지만 사람의 열망과 간절함이 얼마나 큰 위대함을 잉태하는지 그녀는 여실히 증명했다. 하루 종일 붓을 놓지 않고 손이 아닌 가슴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조금씩 형성되어 간 것이다. 그렇게 미술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으면서 몸 역시 서서히 회복되었다.

 

고통은 그녀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천재성을 깨웠다. 이에 그녀는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과감히 펼쳤다. 그 결과, 그녀는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피카소와 칸딘스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일약 미술계의 저명인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병이 도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이 문제였다. 결국 그녀는 오른쪽 발을 잘라내야 했다. 하지만 수술대에 올라가는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고통을 다 초월한 느낌이었다.
“난 행복해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전혀 슬프지 않아요.”

 

수술 후 그녀는 잠시 건강을 회복했지만 잇따른 수술과 쇠약해진 몸 탓에 폐렴을 앓다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한 듯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고통의 연속인 삶 속에서도 시련과 아픔마저도 초월한 채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살았던 그녀였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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