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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편 ㅣ AcornLoft
신정일 지음 / 에이콘온 / 2025년 12월
평점 :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냅니다.
이별을 마주할 준비가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요.
그날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남겨진 사람의 마음은 천천히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는 종종 그 마음을 숨기려 합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흔들리지 않는 사람인 척 하면서요.
그러나 그 순간, 우리가 가장 솔직해지기도 합니다.
말로는 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우리는 결국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마음을 붙잡습니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선비들도 그랬습니다.
정약용은 아들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조위한은 아들의 무덤 앞에서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라고 절규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음을 듣고 마음의 버팀목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선비’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절제·예법·체면의 얼굴은
그날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한 사람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자식이었고, 벗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습니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애도문 44편을 모은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절제된 문장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죽인 울음, 끝내 떨쳐내지 못한 그리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흔들림이 느껴집니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들의 글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애도의 시간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잊기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잊지 않기 위해 썼습니다.
기억을 붙잡고자, 사랑을 지키고자,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해 글을 남겼습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책 속 문장들은 조용합니다.
누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슬픔에 이름을 붙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떠나보낸 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고요하게 들려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방향을 조금씩 다시 세우게 됩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품고 살아내는 것이다.”
선비들의 글이 들려주는 이 메시지는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놀랍도록 따뜻합니다.
누군가를 잃고 난 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습니다.
이별의 순간보다 오히려
그 이후의 침묵이 더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이 책의 문장들은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랬다.”
“너도 괜찮다.”
“이 슬픔은 언젠가 너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너의 속도로 슬픔을 살아내면 된다고,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이 책은 고전이면서 동시에 심리서이고,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애도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원문과 현대어 번역을 함께 실어
그 당시의 언어와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는 상실의 거울이 되어줍니다.
어떤 상실을 겪고 있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든,
혹은 사랑과 기억의 무게를 품고 걸어가고 있든—
이 책은 당신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동행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