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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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여덟 살. 도심의 헌책방에서 알래스카 최북단 마을의 사진을 본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마을을 찾아가보고 싶었던 그는 사진 캡션에 ‘Shishmaref'라고 씌어진 것을 보고 편지를 쓴다.

“저는 일본에 사는 호시노 미치오라는 학생입니다. 책에서 그 마을 사진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 생활에 흥미가 많습니다. 방문하고 싶지만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을 해야한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니, 모쪼록 어느 댁에서든 저를 받아주실 수 있을런지요.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조차 알 수 없었던 그는 사전에서 '마을 이장'이라는 의미의 ‘mayor’ 단어를 찾아 편지를 부친다.
받는 이 : Mayor
             Shishmaref
             Alaska USA

그리고 편지를 보낸 사실조차 잊어가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우편함에 꽂힌 국제우편 봉투를 만나게 된다.

보낸 이 : Clifford Weyiouanna
             Shishmaref
             Alaska

이렇게 알래스카와 처음 대면한 소년은 대학 졸업 후 야생동물 사진가의 조수로 일하다가 알래스카로 날아가 알래스카 대학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하고,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야생동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기 시작하게 된다.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과 사람들과 함께한 야생사진가 호시노 미치오.
1996년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러시아에서 여행하던 중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피사체의 하나인 곰의 습격을 받아 4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지식e 6>편에서 호시노 미치오라는 작가를 만나자마자, 그의 책 두 권을 바로 주문했다.
그가 사랑한, 그리고 나도 사랑하는 곰의 사진을 담은 <곰아>, 그리고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자연에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이 책은 호시노가 1989년 <주간 아사히>에 일 년 동안 연재한 원고를 새로 손질하여 1991년에 발간한 것으로 알래스카로 떠나오게 되기 까지 자신의 이야기와 알래스카에서 만난 사람, 동물, 자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연,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작가.
글은 모두 시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의 글은 모두 진심이 넘친다.
이 글이 나온지도 벌써 20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알래스카에 대한 그의 글을 보며, 지구온난화로 격변의 과정을 겪고 있는 그곳이 그가 했던 걱정만큼이나 걱정스럽다.
자연을 사랑한, 자신이 사랑했던 그 자연 속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고인이 되어버린 작가. 책을 읽으면서 자연의 숭고함에, 그런 자연과 함께 하는 그곳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 그리고 자연에 묻힌 작가의 삶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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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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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열정적인 순간에, 삶의 그 황금의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그리고 자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한구석에서는 앞으로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왜냐하면 특히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도 상황이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을뿐더러, 만약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다면, 미래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p.125)

Story
1975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부유한 집안의 잘나가는 청년 케말과 그의 애인 시벨, 그리고 케말이 사랑한 여인 퓌순이 등장한다. 케말은 자신의 부와 권력에 걸맞는 교양있고 세련된 여자 시벨과 애인 사이지만 시벨의 선물을 사러 들어간 양품점에서 먼 친척인 퓌순을 만나첫 눈에 반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자주 어울렸는데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퓌순. 미인대회에도 출전할 만큼 아름다운 그녀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자 케말은 결국 양품점으로 다시 퓌순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엉겁결에 자신의 아파트(이십 년 전 어머니가 투자 목적으로 사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집안 물품들을 보관하는 용도로나 사용하게 되어버린 아파트)로 그녀를 불러들이게 되는데... 뜻밖에도 케말은 퓌순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솔직한 고백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비밀장소인 아파트에서의 반복되는 만남.

케말은 시벨과 약혼하고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갈 미래를 꿈꾸면서도 계속 퓌순을 곁에 두고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시벨과의 약혼식 날. 퓌순이 자신의 약혼식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녀와의 이런 만남을 자신이 결혼 하고서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약혼식 다음날 그들이 만나던 아파트에서 재회하기로 한 그와 그녀.
그러나 이튿날 퓌순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케말은 퓌순을 찾아 나서지만 그녀는 종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상태. 그제서야 퓌순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케말은 시벨과의 약혼을 취소하고, 퓌순과의 재회 그리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꾼다.
퓌순의 행적을 찾아 헤매며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케말은 퓌순의 초대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데...
그녀의 가족 앞에서 허락을 구한 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에게 청혼할 결심까지 하고 퓌순을 찾아간 케말 앞에 유부녀가 된 퓌순이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감독인 퓌순의 남편이 진행하게 될 영화에 투자를 요청하는 퓌순의 가족을 보며, 그들이 자신을 초대한 이유가 고작 이런 것이라는 데 대해 케말은 환멸감을 느낀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일 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퓌순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이제는 멈추어질 것 같아서.
그러나 또 하루, 이틀이 지나자 케말은 퓌순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이 생긴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퓌순이 결혼을 하게 된 이유가 케말 자신의 약혼식을 보며 버림 받았다는 절망감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을 거라며, 퓌순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합리화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남편과 함께 셋이긴 하지만, 이렇게 잦은 만남을 통해 퓌순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그의 어깨에 기대는 그녀를 보면서도, 퓌순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을, 자신의 눈에 그녀를 새길 수 있는 이 시간을 행복하다고 케말은 생각한다.



1,2권으로 나누어진 소설인데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이다.
450페이지 남짓한 분량인데, 중간에 다른 책도 읽긴 했지만, 정확히 19일 동안이나 이 책을 읽었다. 250페이지가 넘어간 후 부터는 이 책만 들었다하면 잠이 쏟아져 하루에 한 페이지조차 읽지 못하고 잠들었던 날도 있었는데... 2권을 굳이 읽지 않아도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파악했다 하는 마음이 들어 2권은 일단 보류해야겠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책을 읽는데 시간 소요가 너무 크다는 것과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할 만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할 책도 넘치고 넘치는데 굳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을 몇 날 며칠이고 붙들며 꼭 한 권을 다 읽어야 할까 싶어서 2권은 당분간 보류.


순수 박물관은 케말이 시벨을 그리워하며 그녀의 손에 닿은 물건,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수집하여 세우는 박물관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케말의 시점에서 쓰여졌는데, 케말은 종종 그녀의 체취가 묻은 물건을 보며 “이 귀고리는 나중에 그녀와의 추억을 기념할, 박물관에 처음 전시될 물건이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을 생각했을 때, 그것이 이미 아주 오래전 일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황금의 순간이 남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들 이후에 남겨진 물건은 그 순간의 기억, 색깔, 보고 만지는 희열을, 그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들보다 더 충실히 간직하고 있다. (p.125-126)


......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행지에서 가져온 온갖 입장권들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를 사랑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였지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44일 간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하는 케말. 퓌순을 놓쳐버린 케말을 만난 때가 한참 <시크릿 가든>이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불안불안해 하고 있던 때라 묘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캐릭터 둘을 보고 있는 것이. 한 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한 놈은 이기적이었던 선택의 대가로 사랑하는 이를 평생 타인의 아내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상황. 어찌보면 케말은 김주원처럼 약지 않아서 순진하게도 퓌순이 자신의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라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다. 퓌순이 길라임처럼 “나는 인어공주가 되지 않을꺼야.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테니까”라고 말해 케말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면 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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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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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던 루와 만도. 예닐곱 살 때 부터 벌써 그들은 죽어서도 변치말자는 약속을 하지만, 성장해감에 따라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맞게 되자 이때부터 이들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루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변화나 역할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만도는 새로운 관계들을 냉정하게 잘라내거나 루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네 삶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인데 만도에게 루는 ‘내 일기가 곧 네 일기’가 되듯 내 삶이 곧 네 삶이 되어야 했다. 루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펑-'하듯 만도의 문제가 루 앞에 드러나게 되고, 루는 자신이 그의 문제를 촉발하였다고 자책한다.

루에게 만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충격적인 사실을 일깨운 정신분석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등 없는 작은 의자가 전부 다리 네 개로 서 있는 건 아니다. 그중엔 다리 세 개로 버티는 것들도 있다. 거기서 다리 하나가 더 없어지면 치명타가 된다. (p.152)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만도가 과연 애초부터 다리 세 개를 가지고 있었을지 그것부터 의문이 들기 때문에 이 말을 만도에게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들 관계를 과연 악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도는 다리 하나가 없어져 쓰러져 버린 다리 세 개의 의자가 아니라, 애초부터 다리가 두 개인 의자였는데 이 의자의 세 번째 다리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 루가 아니었을까 싶으니.


작가 필립 그랭베르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정신분석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정신분석학적으로도 꽤 잘 접근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의자 다리가 과연 두 개 였을까, 세 개 였을까 뿐 아니라 의문이 드는 부분이 또 있다. 다리 세 개인 의자가 세 번째 다리를 잘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서 있을 수 있느냐 넘어지느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면, 이 다리 세 개인 의자에 네 번째 다리를 만들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왜 간과해버리고 있는 것일까.

얇아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소설이다.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져놓고는 냅다 튀어버린 듯한 느낌.  



친구와의 만남의 빈도나 접촉하는 횟수가 우정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스무 살 전 까지만 해도 다들 똑같은 일상을 살았는데... 매일 얼굴 맞대며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고민을 안고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제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길들을 걷으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경우에는 더욱이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잠잘 때만 빼고는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꼭꼭 붙어다니며 늘 똑같은 삶을 살아갔는데.. 대학을 선택하면서 각각 이 지방, 저 지방으로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대학 졸업 후엔 거기 더해 유학 간 친구, 해외취업한 친구도 생겨버리자 만남의 횟수는 더욱 줄어들고, 연락하는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어버린 경우도 있다.
게중에는
일 년에 한 번 보고, 일 년에 한 번 전화해도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듯 편한 친구도 있는 반면, 이렇게 물리적 거리로 인해 마음도 멀어져버려 이제는 그 친구의 결혼식엘 꼭 가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드물지 않게 있으니..
우리가 예전에는 친구였었지..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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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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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갸날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진짜 이유처럼 생각된다. (p.17)


마흔을 두 해 남긴 서른 여덟의 하루키와 그의 부인은 그렇게 해서 삼년간의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글쎄, 이들이 유럽에서 겪은 갖은 어려움들로 하여금 그리스는 절대 갈만한 나라가 아니야. 라거나 이탈리아는 예상했던 것 보다 그다지 나쁜 나라는 아니던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도 이렇게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가끔은 정착해서 두어달 여유롭게 한 지방에 콕 박혀 있어 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내 귓가에 둥.둥.둥- 하는 먼 북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주저하고만 있는 것일까? 타지에서 보낸 그 삼년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부러워보이지만은 않는 여행 에세이. 그렇지만 그렇게 훌쩍 떠나 여기저기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도 꽤나 근사할 것 같아 보인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지금은 그날을 위해 한푼, 두푼 모으고 있지만 나도 마흔이 되었을 때 이렇게 모든 걸 접고 떠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때는 부모님 손을 빌려 훌쩍 훌쩍 잘도 떠났는데, 무언가 크게 손에 쥔 것도 없는 지금은 그것들조차 차마 내어 놓을 수 없어, 그 끝을 잘라버릴 수 없어 꼭 붙들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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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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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의 화자 40대의 나(와타나베)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 약 3~4년간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회고 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불현듯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첫사랑의 얼굴이 아렴풋해진 것을 떠올리며 ‘영원이란 없다, 중요한 무엇인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희석되기 마련이다.’라고 생각 한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몇몇 장면이나 그들의 대화. 행동들 중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긴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나(와타나베)를 포함하여 나의 어린시절 단짝, 그리고 영원히 나의 베스트 프렌드일 것만 같았던 기즈키, 그의 여자친구였던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었던 나오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여자친구 미도리. 대학에서 만난 선배 나가사와. 그의 여자친구 하쓰미. 나오키의 요양원 룸메이트 레이코- 모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인물들처럼 그려져 있다. 마치 내 옆에, 내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내 친구의 친구나 선후배 정도로는 만나볼 수 있을 듯한 캐릭터인데, 그러면서도 묘하게 모두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상적이기도 하면서 너무도 비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통해 주변인에 대한 상실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20대의 초상이라면 너무 슬프다. 모두가 방황하고 어지러운 청춘들뿐인.
이들이 처했던 현실은 소설을 읽고 있는 나조차도 부정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계속 '이건 너무 일본 색채가 강할 뿐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문화적 장벽을 쌓아올리게 된다.    

 

 

 그러나 수없이 ‘이건 허구야. 단지 허구일 뿐이야.’ 라고 되뇌일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책을 덮고 난 지금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고요하기만 하니... 적어도 기억 속 20대 초반의 내 모습은 밝고 싱싱했기에, 이들처럼 끝데없는 나락에 떨어진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이라도 하고 있는것일까?    

 

 책 뒤에 전문가 쓴 서평 중, 하루키 소설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가 하는 물음에 대해 "그 분위기 자체 - 소설 주인공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한때 나도, 이러한 분위기의 일본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이는 삶의 태도(자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치 방관자 처럼 인생을 살아가는)에 적잖이 매료된 적이 있었지만, 이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더러 적어도 내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듯한 느낌에, 허무주의에 빠져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에 염증이 나 한동안 일본 소설을 등한시 하기도 했었다.  

 

  

 대체 <상실의 시대>에서는 어떤 인물의 삶의 태도나 양식이 그렇게나 매력적이었을까?
인물 한 명 한 명 따져 생각해보아도...

없다.    

 

 화자인 나(와타나베)부터 시작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비정상적인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공감이 가는 문장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오롯이 하루키의 필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을 딱 한 문장만으로만 남긴다면. 

"문학과 외설은 그야말로 한끗 차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뿐이었다. - 와타나베  

인생이랑 비스켓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켓 통엔 여러가지 비스켓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걸 자꾸 먹어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길때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켓 통이라고. 난 경험으로 그걸 배웠거든. - 미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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