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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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던 루와 만도. 예닐곱 살 때 부터 벌써 그들은 죽어서도 변치말자는 약속을 하지만, 성장해감에 따라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맞게 되자 이때부터 이들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루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변화나 역할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만도는 새로운 관계들을 냉정하게 잘라내거나 루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네 삶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인데 만도에게 루는 ‘내 일기가 곧 네 일기’가 되듯 내 삶이 곧 네 삶이 되어야 했다. 루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펑-'하듯 만도의 문제가 루 앞에 드러나게 되고, 루는 자신이 그의 문제를 촉발하였다고 자책한다.

루에게 만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충격적인 사실을 일깨운 정신분석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등 없는 작은 의자가 전부 다리 네 개로 서 있는 건 아니다. 그중엔 다리 세 개로 버티는 것들도 있다. 거기서 다리 하나가 더 없어지면 치명타가 된다. (p.152)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만도가 과연 애초부터 다리 세 개를 가지고 있었을지 그것부터 의문이 들기 때문에 이 말을 만도에게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들 관계를 과연 악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도는 다리 하나가 없어져 쓰러져 버린 다리 세 개의 의자가 아니라, 애초부터 다리가 두 개인 의자였는데 이 의자의 세 번째 다리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 루가 아니었을까 싶으니.


작가 필립 그랭베르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정신분석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정신분석학적으로도 꽤 잘 접근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의자 다리가 과연 두 개 였을까, 세 개 였을까 뿐 아니라 의문이 드는 부분이 또 있다. 다리 세 개인 의자가 세 번째 다리를 잘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서 있을 수 있느냐 넘어지느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면, 이 다리 세 개인 의자에 네 번째 다리를 만들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왜 간과해버리고 있는 것일까.

얇아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소설이다.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져놓고는 냅다 튀어버린 듯한 느낌.  



친구와의 만남의 빈도나 접촉하는 횟수가 우정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스무 살 전 까지만 해도 다들 똑같은 일상을 살았는데... 매일 얼굴 맞대며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고민을 안고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제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길들을 걷으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경우에는 더욱이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잠잘 때만 빼고는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꼭꼭 붙어다니며 늘 똑같은 삶을 살아갔는데.. 대학을 선택하면서 각각 이 지방, 저 지방으로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대학 졸업 후엔 거기 더해 유학 간 친구, 해외취업한 친구도 생겨버리자 만남의 횟수는 더욱 줄어들고, 연락하는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어버린 경우도 있다.
게중에는
일 년에 한 번 보고, 일 년에 한 번 전화해도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듯 편한 친구도 있는 반면, 이렇게 물리적 거리로 인해 마음도 멀어져버려 이제는 그 친구의 결혼식엘 꼭 가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드물지 않게 있으니..
우리가 예전에는 친구였었지..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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