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갸날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진짜 이유처럼 생각된다. (p.17)


마흔을 두 해 남긴 서른 여덟의 하루키와 그의 부인은 그렇게 해서 삼년간의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글쎄, 이들이 유럽에서 겪은 갖은 어려움들로 하여금 그리스는 절대 갈만한 나라가 아니야. 라거나 이탈리아는 예상했던 것 보다 그다지 나쁜 나라는 아니던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도 이렇게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가끔은 정착해서 두어달 여유롭게 한 지방에 콕 박혀 있어 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내 귓가에 둥.둥.둥- 하는 먼 북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주저하고만 있는 것일까? 타지에서 보낸 그 삼년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부러워보이지만은 않는 여행 에세이. 그렇지만 그렇게 훌쩍 떠나 여기저기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도 꽤나 근사할 것 같아 보인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지금은 그날을 위해 한푼, 두푼 모으고 있지만 나도 마흔이 되었을 때 이렇게 모든 걸 접고 떠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때는 부모님 손을 빌려 훌쩍 훌쩍 잘도 떠났는데, 무언가 크게 손에 쥔 것도 없는 지금은 그것들조차 차마 내어 놓을 수 없어, 그 끝을 잘라버릴 수 없어 꼭 붙들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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