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열정적인 순간에, 삶의 그 황금의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그리고 자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한구석에서는 앞으로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왜냐하면 특히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도 상황이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을뿐더러, 만약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다면, 미래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p.125)
Story
1975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부유한 집안의 잘나가는 청년 케말과 그의 애인 시벨, 그리고 케말이 사랑한 여인 퓌순이 등장한다. 케말은 자신의 부와 권력에 걸맞는 교양있고 세련된 여자 시벨과 애인 사이지만 시벨의 선물을 사러 들어간 양품점에서 먼 친척인 퓌순을 만나첫 눈에 반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자주 어울렸는데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퓌순. 미인대회에도 출전할 만큼 아름다운 그녀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자 케말은 결국 양품점으로 다시 퓌순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엉겁결에 자신의 아파트(이십 년 전 어머니가 투자 목적으로 사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집안 물품들을 보관하는 용도로나 사용하게 되어버린 아파트)로 그녀를 불러들이게 되는데... 뜻밖에도 케말은 퓌순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솔직한 고백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비밀장소인 아파트에서의 반복되는 만남.
케말은 시벨과 약혼하고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갈 미래를 꿈꾸면서도 계속 퓌순을 곁에 두고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시벨과의 약혼식 날. 퓌순이 자신의 약혼식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녀와의 이런 만남을 자신이 결혼 하고서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약혼식 다음날 그들이 만나던 아파트에서 재회하기로 한 그와 그녀.
그러나 이튿날 퓌순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케말은 퓌순을 찾아 나서지만 그녀는 종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상태. 그제서야 퓌순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케말은 시벨과의 약혼을 취소하고, 퓌순과의 재회 그리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꾼다.
퓌순의 행적을 찾아 헤매며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케말은 퓌순의 초대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데...
그녀의 가족 앞에서 허락을 구한 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에게 청혼할 결심까지 하고 퓌순을 찾아간 케말 앞에 유부녀가 된 퓌순이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감독인 퓌순의 남편이 진행하게 될 영화에 투자를 요청하는 퓌순의 가족을 보며, 그들이 자신을 초대한 이유가 고작 이런 것이라는 데 대해 케말은 환멸감을 느낀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일 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퓌순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이제는 멈추어질 것 같아서.
그러나 또 하루, 이틀이 지나자 케말은 퓌순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이 생긴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퓌순이 결혼을 하게 된 이유가 케말 자신의 약혼식을 보며 버림 받았다는 절망감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을 거라며, 퓌순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합리화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남편과 함께 셋이긴 하지만, 이렇게 잦은 만남을 통해 퓌순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그의 어깨에 기대는 그녀를 보면서도, 퓌순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을, 자신의 눈에 그녀를 새길 수 있는 이 시간을 행복하다고 케말은 생각한다.
1,2권으로 나누어진 소설인데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이다.
450페이지 남짓한 분량인데, 중간에 다른 책도 읽긴 했지만, 정확히 19일 동안이나 이 책을 읽었다. 250페이지가 넘어간 후 부터는 이 책만 들었다하면 잠이 쏟아져 하루에 한 페이지조차 읽지 못하고 잠들었던 날도 있었는데... 2권을 굳이 읽지 않아도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파악했다 하는 마음이 들어 2권은 일단 보류해야겠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책을 읽는데 시간 소요가 너무 크다는 것과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할 만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할 책도 넘치고 넘치는데 굳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을 몇 날 며칠이고 붙들며 꼭 한 권을 다 읽어야 할까 싶어서 2권은 당분간 보류.
순수 박물관은 케말이 시벨을 그리워하며 그녀의 손에 닿은 물건,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수집하여 세우는 박물관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케말의 시점에서 쓰여졌는데, 케말은 종종 그녀의 체취가 묻은 물건을 보며 “이 귀고리는 나중에 그녀와의 추억을 기념할, 박물관에 처음 전시될 물건이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을 생각했을 때, 그것이 이미 아주 오래전 일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황금의 순간이 남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들 이후에 남겨진 물건은 그 순간의 기억, 색깔, 보고 만지는 희열을, 그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들보다 더 충실히 간직하고 있다. (p.125-126)
......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행지에서 가져온 온갖 입장권들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를 사랑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였지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44일 간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하는 케말. 퓌순을 놓쳐버린 케말을 만난 때가 한참 <시크릿 가든>이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불안불안해 하고 있던 때라 묘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캐릭터 둘을 보고 있는 것이. 한 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한 놈은 이기적이었던 선택의 대가로 사랑하는 이를 평생 타인의 아내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상황. 어찌보면 케말은 김주원처럼 약지 않아서 순진하게도 퓌순이 자신의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라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다. 퓌순이 길라임처럼 “나는 인어공주가 되지 않을꺼야.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테니까”라고 말해 케말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면 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