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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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갸날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진짜 이유처럼 생각된다. (p.17)


마흔을 두 해 남긴 서른 여덟의 하루키와 그의 부인은 그렇게 해서 삼년간의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글쎄, 이들이 유럽에서 겪은 갖은 어려움들로 하여금 그리스는 절대 갈만한 나라가 아니야. 라거나 이탈리아는 예상했던 것 보다 그다지 나쁜 나라는 아니던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도 이렇게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가끔은 정착해서 두어달 여유롭게 한 지방에 콕 박혀 있어 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내 귓가에 둥.둥.둥- 하는 먼 북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주저하고만 있는 것일까? 타지에서 보낸 그 삼년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부러워보이지만은 않는 여행 에세이. 그렇지만 그렇게 훌쩍 떠나 여기저기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도 꽤나 근사할 것 같아 보인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지금은 그날을 위해 한푼, 두푼 모으고 있지만 나도 마흔이 되었을 때 이렇게 모든 걸 접고 떠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때는 부모님 손을 빌려 훌쩍 훌쩍 잘도 떠났는데, 무언가 크게 손에 쥔 것도 없는 지금은 그것들조차 차마 내어 놓을 수 없어, 그 끝을 잘라버릴 수 없어 꼭 붙들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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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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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의 화자 40대의 나(와타나베)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 약 3~4년간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회고 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불현듯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첫사랑의 얼굴이 아렴풋해진 것을 떠올리며 ‘영원이란 없다, 중요한 무엇인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희석되기 마련이다.’라고 생각 한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몇몇 장면이나 그들의 대화. 행동들 중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긴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나(와타나베)를 포함하여 나의 어린시절 단짝, 그리고 영원히 나의 베스트 프렌드일 것만 같았던 기즈키, 그의 여자친구였던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었던 나오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여자친구 미도리. 대학에서 만난 선배 나가사와. 그의 여자친구 하쓰미. 나오키의 요양원 룸메이트 레이코- 모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인물들처럼 그려져 있다. 마치 내 옆에, 내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내 친구의 친구나 선후배 정도로는 만나볼 수 있을 듯한 캐릭터인데, 그러면서도 묘하게 모두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상적이기도 하면서 너무도 비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통해 주변인에 대한 상실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20대의 초상이라면 너무 슬프다. 모두가 방황하고 어지러운 청춘들뿐인.
이들이 처했던 현실은 소설을 읽고 있는 나조차도 부정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계속 '이건 너무 일본 색채가 강할 뿐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문화적 장벽을 쌓아올리게 된다.    

 

 

 그러나 수없이 ‘이건 허구야. 단지 허구일 뿐이야.’ 라고 되뇌일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책을 덮고 난 지금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고요하기만 하니... 적어도 기억 속 20대 초반의 내 모습은 밝고 싱싱했기에, 이들처럼 끝데없는 나락에 떨어진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이라도 하고 있는것일까?    

 

 책 뒤에 전문가 쓴 서평 중, 하루키 소설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가 하는 물음에 대해 "그 분위기 자체 - 소설 주인공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한때 나도, 이러한 분위기의 일본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이는 삶의 태도(자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치 방관자 처럼 인생을 살아가는)에 적잖이 매료된 적이 있었지만, 이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더러 적어도 내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듯한 느낌에, 허무주의에 빠져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에 염증이 나 한동안 일본 소설을 등한시 하기도 했었다.  

 

  

 대체 <상실의 시대>에서는 어떤 인물의 삶의 태도나 양식이 그렇게나 매력적이었을까?
인물 한 명 한 명 따져 생각해보아도...

없다.    

 

 화자인 나(와타나베)부터 시작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비정상적인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공감이 가는 문장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오롯이 하루키의 필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을 딱 한 문장만으로만 남긴다면. 

"문학과 외설은 그야말로 한끗 차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뿐이었다. - 와타나베  

인생이랑 비스켓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켓 통엔 여러가지 비스켓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걸 자꾸 먹어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길때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켓 통이라고. 난 경험으로 그걸 배웠거든. - 미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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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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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부의 언론 장악이 한참일 무렵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KBS 사원행동을 했던 한 기자가 있다. 그는 이달의 기자상을 여섯 번이나 받을 정도로 탐사보도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탐사보도팀에서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이유야 짐작할 수 있는 바대로인 보복인사.
이 책의 저자 최경영 KBS 前기자의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언론의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그는 “한국 언론, 너는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서, 투자가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해 “워렌 버핏의 상식 :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대조하여 한국 언론의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대량해고’, ‘대량 감원’, ‘대규모 실직’이라는 단어 대신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근로자를 노동자/직장인으로 구분하여, 파업을 하고 있다면 노동자가 되는 상징적 조작. 노무현 정부 때는 범람하던 ‘세금 폭탄’,‘서민 경제 파탄’이라는 용어 (보수 정권으로 바뀐 지금은 세금이 폭탄처럼 투하되지 않으니 참으로 편안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당사국인 미국의 최대 경제지인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금융위기’라는 단어를 1743번, ‘공포’를 587번, ‘공황’이라는 단어를 351번 언급한 반면, 여기 멀리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라 한국 대표 경제지에서는 각각 4870번, 675번, 425번 사용했던 한국 언론의 호들갑 등.

대놓고 비판하겠다고 쓴 글이다. 읽으면서도 ‘이 저자, 목에 핏대 너무 세운다.’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저자의 답답한 마음이 진하게 전해진다. 책을 덮기 전, 에필로그에서 “사실 이 책은 ‘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저자의 말을 보며 ‘어쩐지. 그렇게 보였소 -’ 하고 끄덕끄덕.
하도 답답하고 노여움이 가시지 않아 펜을 들었다고 저자 또한 직접 밝히고 있긴 하나 대중이 뉴스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다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한국 언론의 현실에 대한 비판만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어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긴, 언론이 독립 언론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면야 대중이 언론이 뿌린 정보를 얼마만큼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 얼마만큼은 걸러내야하는지 이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테지..  때문에 언론인들에게 이렇게 고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한국 언론이 즐겨 쓰는 ‘국익’ ‘화합’ ‘안정’과 같은 애매모호한 추상적인 단어에는 그들이 보호해주고 싶은 사회 기득권의 이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다원화된 이익사회입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 직장인의 이익이 모두 다르고 또 그 안에서도 개별적 이익이 갈라집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어떤 집단은 혜택을 받고 어떤 계층은 거꾸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 자본주의에 바탕한 민주 사회는 이렇게 이익이 천차만별입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기실 신기루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매 순간 갈등하고 타협합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고 있는 ‘국익’이란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포장하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p.28-29)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p.62) 

 값싼 뉴스는 과잉으로 넘쳐나고, 진짜 정보는 없는 상황, 특히 논쟁적인 주제에서 뭔가 뉴스는 많은데 정보가 없는 현대 미디어의 상황을 스탠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프록토는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라는 용어로 정의했습니다.
아그노톨로지는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에 대한 탐구’라는 뜻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저도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대한다고 하는데 시민들은 그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핵심 쟁점에 관해 명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언론에서 대중에게 주로 논쟁의 ‘가십거리’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중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지만 사실은 들은 게 없고,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프록토 교수에 따르면 대중이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의 함정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중은 강호순이나 김길태와 같은 특정 정치 경제 집단의 이익이 얽혀 있지 않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듣게 되지만,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처럼 세금, 환경 등 정작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소음만 듣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특정 이익집단이 ‘소음’을 통해 교란하고 물타기한다는 것이지요. 이 소음의 대부분이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입니다.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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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키스 뱅 뱅!
조진국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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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모델 나현창, 진실한 사랑이 두렵기만한 잘나가는 스타일리스트 민서정,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 담백한 남자 정기안. 그리고 귀엽지만 어설픈. 2인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못마땅스럽기만한 네일 아티스트 조희경. 소설은 이 네 명의 젊은이들이 얽힌 사랑이야기를 각자의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

<소울메이트><안녕,프란체스카>를 보진 않았지만, 이 두 작품들에 열광하던 이들이 있는걸 보면 이미 검증된 작가다 싶어서 별 거리낌 없이 책을 들었다. 그런데 왠걸 열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아차차- 하게 된다. <코스모폴리탄>에 연재가 되었다더니. 역시나. 하고 적당히 페이지를 눈으로 훑듯 읽는다. 수위가 한참이나 높은 글들을 많이 싣기로 소문이 자자한 <코스모폴리탄>에 연재되어서 그런걸까? 적당히 자극적일꺼라고는 예상했지만 출근시간 한 시간 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소설이나 읽자던 계획은 남이 볼새라 책장을 넘기는 분주한 손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그러고보니 주인공들 직업도 모델, 스타일리스트, 소설가, 네일아티스트다. 약간은 붕 뜬 듯한, 현실감이 묘하게 결여된 스토리도 잡지의 무게 딱 그만큼인 것 같다. 무게로 따지자면 <코스모폴리탄>이 여느 잡지들보다는 좀 더 무겁기는 하더라마는.



Story
1. Poison Prince '나현창'
현창은 모델이지만 아르바이트로 바에서 일을 하고 있다. 바에서 그는 모델 오디션에서 자신에게 칼날을 겨눈 스타일리스트 민서정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녀의 친구 희경으로부터 서정과 함께 밤을 지새워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이었고, 하룻밤 쯤이야 누구와 잠을 자든 상관이 없었던 그는 이제껏 그래왔듯 망설임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서정과 함께한다.

2. Writing to reach you '정기안'
서정의 애인인 기안은 서정과 함께 간 파티에서 현창을 만난다. 익숙한 얼굴의 그. 며칠 전 기안에게 전달된 사진 속 주인공이다. 사진에서 현창은 서정과 열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안은 감정을 억누르고 사진 속 모습을 털어내려 애쓴다. 한 번이니 나만 눈감아버리면 지나갈 수 있으리라. 그녀와의 사이는 아무 문제 없으리라. 파티에서 희경은 현창에게 서정과 다시 한 번 밤을 같이 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그녀의 몸도 마음도 그 자신에게 향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그날 이후 두 번째로 함께 밤을 나눈 현창과 서정. 그들의 모습은 이번 또한 기안에게 전달된다. 기안은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서정에게 이별을 고한다.

3. My heart is as black as night '민서정'
화보촬영차 들른 일본의 바에서 기안을 만났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이제껏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안달했던 여느 남자들과 다르게 그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늙어 죽을 때 까지 함께 하자고 했던 그가 이제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 현창에게 몸을 묻으며 자신을 망가뜨려본 것인데, 기안이 이별을 고하자 서정은 그가 없는 삶이 이제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겠다고 다짐한 서정은 현창에게 제안했다. 기안과 서정 공동명의로 된 집에 같이 들어가서 살자고. 이렇게해서 세 명의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된다.

4. Broken bicycles '조희경'
희경은 서정의 친한 친구이다. 잘나가는 스타일리스트 서정의 소개로 네일 아티스트로의 명성을 떨쳐나가고 있긴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서정의 그림자일 뿐이다. 자신의 일에서도 일인자이지만 연예인 뺨치게 예쁘기까지한 서정. 뭇남성들의 시선은 서정에게만 향해있고 희경은 언제나 서정의 친구, 딱 그 자리에만 있다. 하루걸러 남자를 갈아치우는 서정. 곁에 기안이라는 멋진 남자가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여전히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헤매고 있는 서정이 희경은 못마땅하다. 기안이 그녀에게는 너무 과분해보여서, 그 남자가 내 남자가 되었으면 해서, 그 남자를 얻고만 싶어서 현창에게 제안을 했다. 현창이 서정의 몸도 마음도 다 차지해달라고.

진창에서 뒹굴기만 하는 현창. 그의 악마 같은 웃음과 나이답지 않은 어두운 모습에 서정은 몸서리를 치지만, 현창은 자신의 꿈과 서정을 맞바꿀 모험을 감행한다. 현창의 사랑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고, 서정의 사랑은 현창과 기안 사이에서 위태위태한 외줄타기와 같았다.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 아스라한 감정을 새긴 기안은 현창의 모험 앞에서 뒤돌아서야만 했고, 친구의 사랑을 넘본 희경은 연심을 주었던 남자에게 자신의 밑바닥 추악한 모습을 다 드러내고야 말았다. 꿈을 잃었지만 사랑을 얻은 현창, 삐딱하게 칼날을 겨누고서라도 지켜야만 했던 자신을 더 이상 홀로 지킬 필요가 없어진 서정.
결국 기안이 홀로 남게 되었지만 서정은 아무래도 기안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상대였을지 모르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기안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고 싶다. 
티격태격할 것은 안봐도 뻔하지만 현창과 서정이 앞으로 행복하기를, 기안은 그에 맞는 좀 더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희경도 자신을 좀 더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되길, 그에 앞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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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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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minute rule. 은행을 털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 무사히 빠져나가기 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2분. 돈을 챙겼든 챙기지 않았든 은행전문털이범 맥스 홀먼은 이 2분의 법칙을 반드시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홀먼은 'Two minute rule'을 어겨 경찰에 집히게 되고, 10년간의 교도소 수감을 마친 후 보호관찰 상태로 풀려나게 된다.  

 그런데 수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옮기려는 홀먼에게 그의 아들인 리처드가 경찰 동료 3명과 함께 피살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생의 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홀먼과는 달리 경찰이 되어 그 자신을 안심하게 만들었던 아들, 도나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던 아들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은 홀먼을 혼란 속으로 집어삼킨다.   

 도대체 왜. 그의 아들이 피살되었던 것일까? 홀먼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리처드의 상관으로부터 아들이 아버지인 그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과 질이 좋지 못한 동료들과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리처드와 그의 동료들을 살해한 용의자는 곧 밝혀지지만 용의자는 체포 직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상태였고 이로서 경찰의 수사는 종결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홀먼은 이 사건의 수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수가 없고,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밝힌 내용들 사이에서 미심쩍은 구석들을 발견하게 된다.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아들의 오명을 벗기고 진짜 살인범을 찾기 위해 홀먼은 전직 FBI 요원이자 10년 전 자신을 체포한 캐서린 폴라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둘은 진실을 쫓아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과 음모들.  진실에 다가갈수록 홀먼에게는 '부전자전' 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오르고... 아들에게 못다 준 부성애, 죄책감, 자기 회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서 폴라드는 수사의 진척에 따른 쾌감과 짜릿함, 홀먼에 대한 동정과 애정을 갖게 되는데... 

 

모든 것을 걸고 아들의 죽음을 밝히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홀먼과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적극적으로 돕긴 하지만, 여전히 그를 100%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폴라드. 소설의 엑기스인 마지막 50페이지에 다다라서 매 페이지마다 촌각을 다투며 벌어지는 일은 'Two minute rule'의 진가를 만날 수 있게 한다.

독서 속도가 매우 느린 나조차 4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대여섯 시간만에 훅-하고 읽어버릴 정도로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책이다.  
1. 스토리가 단순히 사건의 전개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물의 내면 묘사와 개인내적인 갈등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어 그들의 감정에 절로 젖어들게 만든다는 점.
2. 폴라드가 셜록홈즈도 필립 말로도 아닌, 단지 '전직' FBI 요원으로의 모습 딱 그 만큼만 보여지고 있다는 점.
3. 그래서 결국은 '폴라드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인 리처드가 문제를 해결해낸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든다.
별 기대 없이 집어들었는데 의외성을 엿볼 수 있었으니 아주 큰 소득을 얻은 것만 같다. 
작가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어 최근에 출간된 <워치맨>도 주문해서 책상 위에 대기 중.
이번 책 <투 미닛 룰>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는데, 다음 책 <워치맨>은 이미 <타운>이라는 영화로 영화화 되었다. 책 읽기 전에 너무 기대하면 안되는데.. 그래도 다음책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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