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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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부의 언론 장악이 한참일 무렵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KBS 사원행동을 했던 한 기자가 있다. 그는 이달의 기자상을 여섯 번이나 받을 정도로 탐사보도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탐사보도팀에서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이유야 짐작할 수 있는 바대로인 보복인사.
이 책의 저자 최경영 KBS 前기자의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언론의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그는 “한국 언론, 너는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서, 투자가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해 “워렌 버핏의 상식 :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대조하여 한국 언론의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대량해고’, ‘대량 감원’, ‘대규모 실직’이라는 단어 대신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근로자를 노동자/직장인으로 구분하여, 파업을 하고 있다면 노동자가 되는 상징적 조작. 노무현 정부 때는 범람하던 ‘세금 폭탄’,‘서민 경제 파탄’이라는 용어 (보수 정권으로 바뀐 지금은 세금이 폭탄처럼 투하되지 않으니 참으로 편안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당사국인 미국의 최대 경제지인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금융위기’라는 단어를 1743번, ‘공포’를 587번, ‘공황’이라는 단어를 351번 언급한 반면, 여기 멀리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라 한국 대표 경제지에서는 각각 4870번, 675번, 425번 사용했던 한국 언론의 호들갑 등.

대놓고 비판하겠다고 쓴 글이다. 읽으면서도 ‘이 저자, 목에 핏대 너무 세운다.’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저자의 답답한 마음이 진하게 전해진다. 책을 덮기 전, 에필로그에서 “사실 이 책은 ‘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저자의 말을 보며 ‘어쩐지. 그렇게 보였소 -’ 하고 끄덕끄덕.
하도 답답하고 노여움이 가시지 않아 펜을 들었다고 저자 또한 직접 밝히고 있긴 하나 대중이 뉴스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다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한국 언론의 현실에 대한 비판만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어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긴, 언론이 독립 언론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면야 대중이 언론이 뿌린 정보를 얼마만큼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 얼마만큼은 걸러내야하는지 이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테지..  때문에 언론인들에게 이렇게 고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한국 언론이 즐겨 쓰는 ‘국익’ ‘화합’ ‘안정’과 같은 애매모호한 추상적인 단어에는 그들이 보호해주고 싶은 사회 기득권의 이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다원화된 이익사회입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 직장인의 이익이 모두 다르고 또 그 안에서도 개별적 이익이 갈라집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어떤 집단은 혜택을 받고 어떤 계층은 거꾸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 자본주의에 바탕한 민주 사회는 이렇게 이익이 천차만별입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기실 신기루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매 순간 갈등하고 타협합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고 있는 ‘국익’이란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포장하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p.28-29)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p.62) 

 값싼 뉴스는 과잉으로 넘쳐나고, 진짜 정보는 없는 상황, 특히 논쟁적인 주제에서 뭔가 뉴스는 많은데 정보가 없는 현대 미디어의 상황을 스탠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프록토는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라는 용어로 정의했습니다.
아그노톨로지는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에 대한 탐구’라는 뜻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저도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대한다고 하는데 시민들은 그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핵심 쟁점에 관해 명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언론에서 대중에게 주로 논쟁의 ‘가십거리’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중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지만 사실은 들은 게 없고,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프록토 교수에 따르면 대중이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의 함정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중은 강호순이나 김길태와 같은 특정 정치 경제 집단의 이익이 얽혀 있지 않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듣게 되지만,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처럼 세금, 환경 등 정작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소음만 듣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특정 이익집단이 ‘소음’을 통해 교란하고 물타기한다는 것이지요. 이 소음의 대부분이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입니다.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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