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안전거리
박현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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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며 느끼고 깨닫는 부분을 문학과 연결해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다. 그냥 재밌게 읽을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진지했으며, 많이 와닿았다.


대부분 생각의 시작은 나와 비슷하다. 서있느냐 앉아있느냐에 따라 교통체증이 다르게 느껴지며, “끼어들지 말라”고 말해줄 버튼이 있었으면 하고, 길 위의 다른 차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여기서 다른 사람의 사정도 생각해봐야 하고, 과도한 소통은 다들 원치 않으며,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갈 뿐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타인에게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그래도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으며, 굳이 새치기하면서 가야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나에게는 조금 색다르더라. 물론 저자도 화를 안 낸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운전을 둘러싼 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문학을 소개하는 에세이 같다. 어떻게 그렇게 상황에 딱딱 맞는 문학들을 생각해낼까. 그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또 많아졌고, 나도 같은 걸 느낄까 궁금해졌다.

선택에는 실망이 보통임을 이해한다면, 차에 대한 불만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설사 헤어지게 되어도, 차는 인간 파트너와 달리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 P44

수없이 많은 사람과 스치듯 살아가며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 마음에도 그런 거리가 있다. 어떤 날은 가까워지고, 어떤 날은 멀어진다. 어떤 날은 더욱더 멀어져 습지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 P88

처음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성공적 결혼‘을 하는 해피엔드이므로 그 시수를 어떤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합리화가 마음 편하기도 할 것이다 - P111

많은 사람들은 "소통이 필요해"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지나친 소통에 지긋지긋해한다(117쪽).

애착은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 그렇게 삶의 한 마디가 맺힐 것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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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빌려줄래? -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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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속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 컷 하나하나,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에서 저자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종종 다른 서적을 참고해서 그려낸 부분도 있는데, 역시 그림으로 보니 눈에 잘 들어오고 흥미롭다. 단어로 말장난을 친 게 꽤 많아서 원서로 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이 책엔 탐독가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면모가 모두 담겨있다. 나에게 더 공감이 되는 부분은 역시 탐독가로서의 이야기다. 어디서나 책을 읽고 싶어하고, 책장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책 정리할 때 강박증이 있기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아끼던 책을 읽는 여정을 반복할 수 있도록 같은 책을 다시 구매하는 부분도 좋았다. 요즘도 가끔 그 여정을 되돌아보고 싶은 책도 생기니까. 예전엔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걸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좋은 책이 워낙 많아서 다 읽고 싶은 욕심에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일이 줄어들었다.


완벽함은 없다는 데서 왠지 모를 위안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글도 잘 쓰고 싶다면 일단 많이 써야, 아니, 무엇보다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며 책에 있는 글쓰기 원칙에 따르고자 노력해야 한다. 퇴고, 그리고 또 퇴고를 반복하면 점차 좋은 글이 나온다. 물론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겠지만 말이다. 창작자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책 좀 빌려줄래?”는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정말 잘 담긴 제목 같다. 나는 반대로 남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이 많은데 책이 돌아오지 않거나 (남에겐 괜찮지만 나에겐 괜찮지 않을 정도로) 손상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참 슬픈데 책을 돌려 읽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일은 좋다. 내가 빌릴 때는 내 책보다 나중에 읽게 되어서 자꾸 늦게 돌려주게 되어서 미안하고. 생각난 김에 책을 빌려주고, 또 빌려봐야겠다.

다양하게 읽되 보편성을 추구할 거야 - P29

완벽이란 세상에 없는 것. 완벽은 머리에서 지우고 뭐든 실행에 옮겨보자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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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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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족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나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 능력이 출중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아버지의 신전에만 있는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넥타르를 주는 소심한 반항에서 인간 세계에서 만나 반하게 된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바꾸고 연적 스킬라를 괴물로 변하게 하는 일까지 저지른다. 신들의 법칙에서도 벗어난 마녀 ‘파르마키스’로서 그녀는 신들에게 위협을 준다. 무인도 아이아이에로 쫓겨난 키르케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비술을 연마하고 짐승을 길들이며 지낸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과 신을 만나며 각종 사건에 휘말리며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소소한 존재로서 존재 유무조차 관심 갖지 않는 삶을 살다가 첫 마녀로서 신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쫓겨나고, 또 갑자기 신들이 제멋대로 찾아와 키르케의 삶을 헤집어놓는다. 인간들조차도. 평화롭고 편히 살고 싶어도 주변에서는 그녀를 계속 괴롭게 한다. 순수하고 순진한 님프에서 잔혹한 마녀로서의 면모까지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다. 키르케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많은 이야기는 신들에게 휘둘리는 괴로움과 또 그 속의 즐거움과 행복, 또 고통까지 아주 강하게 와닿게 만든다. 그녀는 성장하며 점차 단단해진다.


궁금하긴 했으나 재미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어릴 때 읽는 신화는 재미있었으나,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비통하거나 안타까울 때도 있었지만 키르케가 겪는 그 많은 일이 흥미롭다. 그녀의 성장이 기껍다. 키르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이다.

나는 평생 혼자였다. 아이에테스, 글라우코스는 내 기나긴 고독의 쉼표에 불과했다 - P144

살아 생전에는 아무리 활기 넘쳤어도, 아무리 눈이 부셨어도, 아무리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어도 결국은 먼지와 연기 신세였다. 반면에 아무리 하찮고 쓸모 없더라도 신은 별빛이 꺼질 때까지 계속 환한 공기를 마실 것이다 - P207

나의 평화는 매순간이 거짓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몇 년을 살건 그들은 마음대로 내려와서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건드릴 수 있었다 - P296

인간에 삶에 반드시란 없다, 죽음 말고는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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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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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의 정의와 예시, 그리고 공리주의를 반박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다. 구체적 사례도 담고 있어서 하나하나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저급한 쾌락이 아닌 고상한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의 몸을 희생함으로써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하고자 하기도 한다. 밀은 사람들이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바람직한 것을 자연적으로 알고, 미덕은 행복의 한 부분이어서 소중히 원한다고 한다. 밀이 가장 강조하는 건 행복이다. 모든 건 행복을 위해서고, 또 사람들은 본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의무조차도 행복에 포함시키는 듯하다.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 또한 어떤 행위가 행복에 기여했는지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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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부분은 공리주의의 내용을 반박하는 사람들에 대해 직설적이고 신랄한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을 정직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고, 무식하다는 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공리주의에 대한 모든 ‘오해’에 대한 반박을 정말 세세하게 설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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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으면서 참 어려웠다. “무슨 말이지?” 해서 다시 읽거나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중간쯤 읽었을 때 나중엔 무슨 얘기를 하나 봤더니 이 책은 원래 어려워서 두세 번 읽어야 한다며, 조금 쉽게 대화체로 써놓은 부분이 있어서 먼저 읽었다. 읽고 보면 좀 낫다. 원문은 더 어렵다는데 철학자들은 참 대단하다. 나도 두세 번은 더 읽어야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읽어도 모를 수도 있고. 지성인이 되기는 참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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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랑스 책벌레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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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랑 사느라 힘든 얘기인 줄 알았더니,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게 하는 마법 같은 책. 필력이 좋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 부분이 없고 책벌레 남편과 사는 괴로움과 동시에 사랑도 느껴진다. 애정 어린 투덜거림 같달까? 엄청나게 얄미워하지만 가족 간의 따스한 느낌이 어쩐지 모르게 글에 녹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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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은 힘들어보였다. 집 한가득 책이어서 인테리어도 마음대로 못한다. 시댁 모임에서는 시 낭송을 하고, 자주 책 내용을 읊는다. 반면 물건은 자주 잃어버린다. 다른 데는 돈을 안 쓰지만 책방에서는 돈을 엄청나게 쓰고, 여행 갈 때마다 책이 한 짐이라 비행기 추가요금까지 내야 한다. 기껏 오랫동안 요리했더니 책 읽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하거나 못을 박아달라고 했더니 책 열 장만, 열 줄만 더 읽는다고 하고 매번 미루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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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떠올리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모르는 척 하기 싫어서 남편이 말한 책을 찾아 읽고 원래 알던 양 얘기하고, 서로 작문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불만을 얘기할 때는 책에서 관련 있는 부분을 적어서 전달하고, 친지나 지인에게 책을 선물하거나 시 구절을 적어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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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점이 참 확실하다. 아이같이 순수해보이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착한 것 같지만 또 말싸움을 많이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남편 에두아르가 쓴 글을 보면 역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역자의 번역이 멋있기 때문도 있지만. 서로를 더 나아지게 하고, 또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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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잔소리가 반복성을 띠는 것은 그것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의 반증이다 - P123

생활은 생각하지 않아도 유지되지만, 삶은 생각하지 않으면 망가질 수 있다 - P130

’열등감’으로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열등감은 가져볼 만한 것 같다 - P197

베스트셀러의 가장 큰 의미는 ‘문학성’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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