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추리 조선사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사도세자의 뒤주까지, 가정과 추론으로 재구성한 조선 이야기
김종성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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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만약에..그랬다면?˝이라는 질문을 통해 이미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선택한 주제들이 조선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들이기에 책이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조선사에 있어 많이 아쉽게 생각하는 광해군의 몰락, 소현세자의 죽음, 정조의 갑작스로운 죽음등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무난하게 읽히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찬 작가의 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결론을 너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는 부분까지는 동의할 수 없다. 역사에 있어 가정은 무의미한 결과론을 가지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몽주가 이방원의 공격을 피하고 정권을 지켰다면 그는 다음 수순으로 돌입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이 실권을 쥔 상태에서 고려왕조를 유지한 것이다. 이런 상태로 원명 교체기의 혼란응 넘겼다면 고려는 계속 생존했을 것이고, 정몽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만고의 충신이 됐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성계처럼 신왕조 개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정몽주 자신이 신왕조의 주인이 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정도전처럼 정몽주도 다른 누군가의 참모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아무리 출중한 문신이라도 단독으로 권력을 잡기가 힘들다. p.44

상국에 체류하면서 상국의 신임을 받은 왕세자라 해서 즉위 이후에 상국을 충실히 떠받들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상국을 배반하고 자주 노선을 표벙할 수도 있었다. 상국 사람들 틈에서 처별당하고 비위를 맞추다 보면 상국에 대한 반감이 싹트기 쉽다. 소현세자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p.169

송시열의 말은 치국평천하에 앞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부터 하라는 뜻이었다. 군비 증강을 주장하는 임금 앞에서 마음공부나 하라고말한 것이다. 군주를 조롱한 것이다.......효종은 정통성 문제로 시련을 겪은 임금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왕권 강화가 급선무였다. 송시열 회담 중간중간에 효종의 진의를 의시뫈 것은 송시열이 보기에도 효종은 북벌이 아니라 왕권 강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븍벌이 실제로 추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효종의 진짜 관심도 북벌에 있지 않았던것이다. p.179~180

중종실록에 따르면 중종12년 1월 23일 열린 석강에서 조광조는 소인도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상대편을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화해 군자, 즉 자기편으로 만드는게 붕당정치의 목표였다........숙종시대 당쟁은 승자에게 ‘모‘응 안겨주었다. 패자에게는 당연히 ‘도‘였다. 이것은 승자 독식 풍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승자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 승자가 패자로 바뀌고 패자가 승자로 바뀌는 때가 오면 이전의 승자는 비참해지고 이전의 패자는 지독해졌다. p.200~203

일본의 조선 장악을 가능케 한 로젠-니시 협정 때부터 가속화됐다. 그때부터 조선이 거인국 사람들의 손아귀에 놓였기때문이다. 일본의 조선 장악을 가능케 한 로젠-니시 협정의 시초가 독일의 자오저우만 점령이었고, 자오저우만 점령이 칭다오맥주 생산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점령이 없었다면 조선에서의 러일 세력 균형은 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의 멸망도 좀 더 늦어졌을 것이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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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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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특히 부검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난폭할만큼 독선적인 부검의 권위자,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외국인 의사, 아직 미래를 결정하지 못한 수련의, 그리고 적절한 빈틈과 때로는 전문가다운 치밀함을 가진 형사.....이런 전형적인 캐릭터를 통해 죽은자가 말하는 사건의 진실을 얘기하는 소설이다.

부검이라는 다소 전문적이고 낯선 주제를 이처럼 전형적이고 소설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통해 흥미롭게 플어냈다고 하겠다. 기가막힌 반전의 묘미보다는 부검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더 흥미로운 작품인 것 같다.
속편격인 ˝히포크라테스 우울˝은 어떨지 궁금하다.
같은 작가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는 속편이 더 흥미로왔던 기억을 가지고 히포크라테스우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다수 조직은 좀처럼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아닌 다른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 따라서 저는 조직의 지시에 따르는 일이 늘 공포를 느낍니다. 또 오류로 일어나는 손해를 누가 배상할 것인가가 조금도 가늠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그 점에 한해 교수님 지시는 늘 안심하고 따릅니다. 그분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터입은 아닙니다. p.163

살아있는 몸이든 죽은 몸이든 메스를 들어야할 때 들지 않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야. 그저 의사 면허라는 종이 쪼가리를 지녔을 뿐 똥파리지. p.198

살아있는 인간은 의도와 상관없이 거짓밀을 하지. 자기 자신을 지키기위해, 타인을 지키기위해, 그리고 조직을 지키기위해 어쩔 수 없이 때로는 당당하게 거짓말을 내뱉기도 해. 특히 책임을 지면 질수록 그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지. 그.속박으로부터 나도 자네도 벗어날 수 없네.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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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시오리코 씨와 사라지지 않는 인연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3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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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대장정을 서막을 알리기위한 부분이었고 2권은 좀 더 책과 주인공에 대한 미스테리한 사연의 시작이었다면, 3권은 앞의 2권의 몸풀기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내용은 좀 더 치밀해졌고, 주인공 들의 이야기도 더 미스테리하게 진행되려 하고 있다. 3권은 부재는 집착을 낳고 우리들에게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는 말이 책을 읽고 난뒤 내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에게나 꼭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 한개는 존재할 것이지만, 그건 부재 즉 소유하지 않을때 더 간절하고 가치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 시오리코의 크라크라일기 처럼 말이다.



이노우에 다이치로 씨께.
그쪽은 춥나요?
만날때마다 우리애를 겁주던데, 그러지마요.
지금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고우라 다이스케군도 좋은 청년 같던데 잘 지네봐요.
책은 못 읽는 것 같지만. p.112

˝어릴때 단짝의 집에 다고 싶었어. 외롭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곳. 이 사람하고 결혼해서 그런 집을 찾았어.˝ 마즈에가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시노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를 맞이해야 해. 왜냐하면 난 이제 외로운 꼬마가 아니니까. 어른이 되어 조금은 강해졌으니까.....지금 우리 집에 오려는 아이를 절대로 내쫓지 않을 거야. 고생하는 게 나아. p.193

내 말이 엄마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요즈음에는 답장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가 읽어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아무리 그래도 아무도 없는 구멍에 대고 외치는 건 너무 쓸쓸하니까......사카구치 미치요의 크라크라일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남긴 책.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언니에게 주라고 했던 책이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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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저장되어 있는 휴대폰 매모장에 쓰여진 문구를 보고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이 1판인 것으로 봐서 출간되자마자 산 것 같다.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해 각자 인생을 살아왔어. 그라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 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 해도 어느정도 오차야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어. p.370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참 이상해 p.385

냉정하면서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냥 밸런스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습관적으로 자신이 끌어안은 무게를 좌우지점으로 잘 배분할 뿐이다. p.430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진 않았어. 우리는 그 때 뭔가를 강하기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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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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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무살이후 꾸준히 읽은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1등이 이 책의 저자일 것이다. 군대가기 직전 접했던 미학오디세이는 미술을 떠나서 그야말로 나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학, 미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그야말로 첫경험이였다. 이후 작가의 많은 글과 말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음에 틀림없다.
이 책은 작가가 가열찬 현실참여를 자제하고 집필한 서양미술사 중 4번째 책이다. 기존 3권의 책이 고전주의 다음에 모더니즘, 후기모더니즘으로 바로 넘어가 다소 허전했던 부분이 이 책으로 채워졌다는 점에 있어 만족스럽다.
내가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책은 상당히 쉽게 읽히는 편이다. 미술사 책답게 19세기 인상주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한 것도 마음이 든다.
작가의 서양미술사 시리즈 2번째 책이 나왔을때 개인적으로 관심이 두었던 것이 인상주의였다. 그때 바로 이 책을 만났다면 훨씬 더 즐겁게 읽었을 것 같다. 지금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보다는 19세기 미술사조 전반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읽었다.

P.S. 보론으로 다뤄진 ˝사진과 화화 - 지각의 방식이 달라지다.˝ 라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진의 등장으로 사진과 회화간의 재현 문제를 담고있다. 사진이라는 기술이 최초 등장했을때 미술이 어떻게 사진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당시 화가들이 대답을 들려준다.


미술에 현대성이 관철되는 과정은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의 붕괴는 19세기 중엽에 사실주의와 더불어 시작된다. p.37

거칠게 말하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다비드이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둘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수있다. 1848년 혁밍이후 한때 절대왕정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시민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연대에는 균열이 생긴다.....시민계급(자본가계급)에게 배신당핰 노동자계급은 1872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파리코뮌을 수립한다. 1848년 혁명과 이 단명한 정권 사이가 사실주의자들이 활동한 기간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p.71

하지만 이 복고풍은 훗날 우리가 세잔의 그림 속에서 보게 될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주의자들은 원근법을 파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복고를 통한 혁신˝이 때로는 그 어떤 혁신보다 다 혁신적이라는 역성을 보게 된다. p.95

그림을 그리러 야외로 나갈 때 사실주위자와 인상주의자들은 서로 더른 목적을 갖고 있었다. 예를들어 바르비종의 화가들은 ˝제재˝를.찾으러 야외로 나갔다....반면에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외광을 쫓아서 야외로 나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빛의 효과였기에 그들은 현장에서 신속하게 스케치를 한 후 바로 채색에 들어가곤 했다. p.118

인상주의 회화는 색채의 요란함을 위해 윤곽의 명확함를 희생시킨다. 형태나 윤곽은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 만질 수도 있으나, 색채는 오직 볼 수만 있을 뿐 더듬어 만질 수는 없다. 회화를 촉각적 영역에서 시각적 영역으로 옮겨놓은 것, 이것이 인상주의가 일으킨 ˝지각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p.139

사진은 사실 인상주의와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단 사진은 대상의 형태를 정밀하게 묘사할 의무로부터 화가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인상주의자들이 형태의 정확성을 포기한 채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효과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사진이 그동안 회화가 해온 그 과제를 넘겨받은 덕이었다. p.177

과학적 오해에 서 있다고 해서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신인상주의는 사실 광학적 측면보다는 ‘추상예술의 선구자’라는 관점에서 새로이 평가되고 있다. 다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 묘사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형태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이처럼 인체를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는 경향은 세잔 이전에 이미 쇠라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p.217

고흐는 회화를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서 비가시적인 감정이나 관념의 ‘표현’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가시적 본질로 침투함으로써 고흐는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출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p.235

189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는 회화가 특정한 사물의 재현이기 이전에 평면 위의 색채의 형식적 배열이라는 ‘현대적’ 인식이 싹튼다. 그 시절 나비파의 화가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림은 병마(兵馬), 나부(裸婦) 혹은 어떤 일화(逸話)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특정한 질서로 배열된 색채들로 뒤덮인 평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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