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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스무살이후 꾸준히 읽은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1등이 이 책의 저자일 것이다. 군대가기 직전 접했던 미학오디세이는 미술을 떠나서 그야말로 나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학, 미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그야말로 첫경험이였다. 이후 작가의 많은 글과 말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음에 틀림없다.
이 책은 작가가 가열찬 현실참여를 자제하고 집필한 서양미술사 중 4번째 책이다. 기존 3권의 책이 고전주의 다음에 모더니즘, 후기모더니즘으로 바로 넘어가 다소 허전했던 부분이 이 책으로 채워졌다는 점에 있어 만족스럽다.
내가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책은 상당히 쉽게 읽히는 편이다. 미술사 책답게 19세기 인상주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한 것도 마음이 든다.
작가의 서양미술사 시리즈 2번째 책이 나왔을때 개인적으로 관심이 두었던 것이 인상주의였다. 그때 바로 이 책을 만났다면 훨씬 더 즐겁게 읽었을 것 같다. 지금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보다는 19세기 미술사조 전반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읽었다.
P.S. 보론으로 다뤄진 ˝사진과 화화 - 지각의 방식이 달라지다.˝ 라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진의 등장으로 사진과 회화간의 재현 문제를 담고있다. 사진이라는 기술이 최초 등장했을때 미술이 어떻게 사진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당시 화가들이 대답을 들려준다.
미술에 현대성이 관철되는 과정은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의 붕괴는 19세기 중엽에 사실주의와 더불어 시작된다. p.37
거칠게 말하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다비드이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둘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수있다. 1848년 혁밍이후 한때 절대왕정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시민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연대에는 균열이 생긴다.....시민계급(자본가계급)에게 배신당핰 노동자계급은 1872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파리코뮌을 수립한다. 1848년 혁명과 이 단명한 정권 사이가 사실주의자들이 활동한 기간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p.71
하지만 이 복고풍은 훗날 우리가 세잔의 그림 속에서 보게 될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주의자들은 원근법을 파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복고를 통한 혁신˝이 때로는 그 어떤 혁신보다 다 혁신적이라는 역성을 보게 된다. p.95
그림을 그리러 야외로 나갈 때 사실주위자와 인상주의자들은 서로 더른 목적을 갖고 있었다. 예를들어 바르비종의 화가들은 ˝제재˝를.찾으러 야외로 나갔다....반면에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외광을 쫓아서 야외로 나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빛의 효과였기에 그들은 현장에서 신속하게 스케치를 한 후 바로 채색에 들어가곤 했다. p.118
인상주의 회화는 색채의 요란함을 위해 윤곽의 명확함를 희생시킨다. 형태나 윤곽은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 만질 수도 있으나, 색채는 오직 볼 수만 있을 뿐 더듬어 만질 수는 없다. 회화를 촉각적 영역에서 시각적 영역으로 옮겨놓은 것, 이것이 인상주의가 일으킨 ˝지각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p.139
사진은 사실 인상주의와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단 사진은 대상의 형태를 정밀하게 묘사할 의무로부터 화가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인상주의자들이 형태의 정확성을 포기한 채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효과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사진이 그동안 회화가 해온 그 과제를 넘겨받은 덕이었다. p.177
과학적 오해에 서 있다고 해서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신인상주의는 사실 광학적 측면보다는 ‘추상예술의 선구자’라는 관점에서 새로이 평가되고 있다. 다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 묘사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형태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이처럼 인체를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는 경향은 세잔 이전에 이미 쇠라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p.217
고흐는 회화를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서 비가시적인 감정이나 관념의 ‘표현’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가시적 본질로 침투함으로써 고흐는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출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p.235
189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는 회화가 특정한 사물의 재현이기 이전에 평면 위의 색채의 형식적 배열이라는 ‘현대적’ 인식이 싹튼다. 그 시절 나비파의 화가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림은 병마(兵馬), 나부(裸婦) 혹은 어떤 일화(逸話)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특정한 질서로 배열된 색채들로 뒤덮인 평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