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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주의 시작을 이야기하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을 머릿속에 심어놓더니,
원자의 크기를 예를 들어 설명해 헉소리나는 아찔함을 던져주고는,
지구 속을 파고들며, 망망대해를 떠돌며,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숨 한 번 쉴 수 없게 만들고는,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담담히 이야기 해버리는 이 책은...
과연 제목처럼 '거의 모든 것은 역사'를 담아낸다.
과학책을 읽는다 하면 '에? 그 어려운걸? 전공도 아니잖아?'라고는 진저리 치기 쉽상이다.
그도그럴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등가속도 운동' '질량보존의 법칙' ...정도랄까?
이를테면 '중요하지만 어려운 것' '필요하지만 피해버리는 것'이 되어버려, 몰라도 무식해보이지 않는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과학책이라고 다 그런법은 아니다.
일명 '과학 인문 교양서'는 일반인을 위해 쓰여진 아주 친절한 책들이다.
나 역시 몇 권 읽지 않은 분야의 책들이지만, 권할만한 책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찬사를 미리 보내고 싶다. 500페이지의 책과 가끔은 난해해지는 개념들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만 빼고 본다면 '술술'읽힌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수 많은 과학자들처럼 우주의 광활함이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천재적인 직감과 열정적인 탐구는 없는 사람이다. 일생을 바치고, 젊음을 바치고 때론 죽음을 담보로 얻어낸 그들의 업적과 노력에 그저 경의를 표하고는 뒤돌아서는 내 일상을 다시 찾아내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허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수많은 '그들'의 일생을 함께 따라간다.
신비로운,
그래, 이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잡아내서, 감춰진 비밀들이 드러나는 순간은 기쁘고 들뜨기까지 하다.
내가 사는 지구는, 내가 속한 태양계는, 우리 은하는, 이 우주는..
도무지 짜맞춰넣을 수 없는 그 질서정연함과 그리고 헤아릴수 없는 무질서의 다양함으로 가득한가.
그 안에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보잘것 없으며 또 얼마나 귀중한가. 이런 귀중함들을 초신성의 폭발이라든가 대류권의 존재라든가 마그마와 지진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는 것은 꽤나 멋진 경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두려운,
아무렇지도 않게 내쉬던 내 주변 공기와 자외선을 걱정하긴 해도 여전히 반가운 태양광선과 멋진 볼거리로 가득한 밤하늘 유성우와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저 바다과 내 발 밑.
모든 것을 다 알지도 못하는 나는, 이 평범한 내 주변을 둘러보며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됐다.
정말 말그대로 '우연히' 죽을 수도 있었으며, 눈 깜짝할 새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환경속에서 용케도 살아있구나..라며 평화롭고 고요하기만한 자연의 온기에 차가움을 느끼기도 해본다.
이렇게 신비롭고 두려운, 이 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전부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많은 실수들과 무지로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얇지만 생명의 든든한 보호자였던 오존을 편리함에 열광하며 잃어버렸고, 인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살아남은 물고기를 단지 맛이 좋다고 잡아 먹어 놓쳐버렸다. 무책임하게 덮어버린 흔적들은 또 어떤가?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혹은 영향력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 역사속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와..이 두꺼운 책을 내가 다 읽었어?라며 뿌듯해하고
뭐,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보지?라고 조금은 뻐겨보고
그리고, 결국에는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을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고개를 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