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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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반해 읽은 시집이
당신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였다.

시집을 선택한 내 빈약한 기준에 비하면,
그 시집은 대박이였다.

시집을 읽다보면, 개개의 시는 훌륭한데
하는 말이 반복되는 것도 있고,
시집의 구성이 기승전결은 안되어도,
서론-본론-결론 정도는 되어야하느데..
대부분은 기기기기..이거나,
승승승승..이거나해서,
어느 단계의 이야기만 하는 느낌인데,
박준시인의 시집은 다 있는 삘로
깔끔하니 잘 떨어진 드문 예였다.
감성이니, 표현이니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소설가는 체력이 무엇보다 받쳐주어야 하는 이야기꾼이요.
시인은 재능이 무엇보다 받쳐주는 이야기꾼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시도 서사가 있어서, 
자기 이야기뿐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엮어 내어야 하니,
맥락이니, 가닥이니,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엄청 어린데, 다 늙어 빠진 마음을 노래하는 시인도
바깥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분명 사계절인데..한 계절만 노래하는 시인도 있는데,
청춘의 냄새를 뿜어내면서,
청춘이 보는 늙어 빠진 마음,
청춘이 보는 봄, 여름, 가을, 겨울..두루두루 다 엮어 내더라.
이러니 나도 질투외에는 시인을 대할 마음의 자세가 없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라는 드라마에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지만..이라는 책을 언급하기전에
이미 문학동네까페에서 무척이나 많이들 읽고 계셔서,
나도 주문하여 읽었더랬다.

전문 수필가의 뺨말떼기를 요래조래 칠정도로 잘 쓴 에세이고..
밑줄 칠 여러 대목도 보이고..
그의 시집에 은유된 시어의 배경도 보이고,
친절한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그 뿐.

나는 아까웠다.
이런 글은 그냥 시인의 블러그에나 올리고,
여기 적힌 감성들은 좀 더 거르고 걸러서 시로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박준시인을 대하던 연로한 시인의 술잔과 존중을 추억하는 대목에서
나는 홀로 웃었다.
어디에서나 빛났겠지..
연로한 시인의 술잔과 존중이 아무에게나 주어 지는 것은 아니겠지..하는 생각으로.
아이들 학급에 친한 친구형제가 있다.
각각 우리 아들1호와 2호의 같은 반 베프다.

형제의 엄마는 교양있고, 예의바르며, 친절하고, 상냥하다.
체질이신듯한데, 체질이란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두 가정이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 생은 처음이란다..가 화제란다.

내 반응은 드라마가 중간으로 넘어 가는데도, 
아직 키스도 안한 드라마는 내 생에선 아웃이라니..
여전히 예의바른 그 엄마가 굴하지 않고 스몰톡을 이어간다.

그 드라마에 나온 책들이 화제라고..
이름들을 외워대며..

자기가 근처 도서관에 애들을 데리고 자주 다니는데,
새로운 한국신간이 들어 와도 누가누군지 몰라서 집어 오지 못한다고.
누가 누군지 알아내고, 다시 달려 가면,
이미 그 책은 사라진 지 오래고, 
온 동네를 한바퀴 도느라,
도서관 책꽂이에서 다시 보기 무척이나 어렵다며..
박준 시인의 운다고..를 언급했다.

나는 갑자기 나도 쓸모 있어진 드문 예의 대화를 듣고 있는듯한 느낌 
벌떡 일어나, 
지지분해서 문짝을 언제나 꽉 닫아둔 서재에서
책을 집어다가 그녀에게 안겼다.
올해 안에까지만 리턴하셔~라는 멘트와 함께.

그녀의 눈이 반짝했다.
그후로 그 엄마와의 카톡에는
교양에도 진심이, 예의에도 진심이, 친절에도 진심이, 상냥에도 진심이..
하트 모냥을 하고, 글자 밖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그런 책이다.
이 책이..
운다고 달라질 일이 왜 아니 없겠음?
박준시인이 운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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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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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작가의 댓글부대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데,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 시의적절성이라고 본다.


작가가 한국사회 전체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누구나 가지는 의문을 작가도 가지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하여 발로 뛰고,

용기를 내어서 참으로 좋은 타이밍에 글을 썼다는 것이다.


2년전에 쓰여진 소설이고,

작가 스스로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글이라며 강조한 글인데도,

그 글들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일을 토대로 쓰여졌고,

공들인 취재와 자료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쌓아 올라가서

얼마 안되는 시간이 겨우 흘렀건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


많은 작품들이

그 뛰어난 문장력, 구성력,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면서도

언제까지나 70년대와 80년대의 같은 소재를 그리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시대에 있었던 사건들과 그 시대가 남긴 상처들이

충분히 소명되고 회복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고,

어찌보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처이니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주목받고, 계속 회자되어야 하는 것은 나도 아는 바이다.


허나, 70년대생 작가도.. 80년대생 작가도..쫌 그 수가 많다는 생각

이제는 안전해진 주제를 가지고, 안전하게 욹궈 먹는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다


모든 작가가 르뽀작가가 될 필요도 없고,

저널리즘과 작가의 길은 중첩되는 부분은 있으나, 같으라는 법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지금'의 문제에 당면하며,

숱하게 쏟아지는 팩트와 그 팩트들의 교묘한 편집사이에서,

작가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숱하게 많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에 금방 판명될 예언이나, 예측이 겁나겠지만도..

대신 판돈은 어마어마하지 않는가 말이다.


저널리스트들은 내놓고 소설을 써본다는데..

소설가들은 왜 소설을 써 보지 않았는지.


그래서, 이 작품은 가치있다.

정말로 시의적절하게 문학쪽에서 제기해 줬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라 더욱 돋보이기도 하고,

그 돋보임에 보내는 격려의 의미로

제주 4.3정치문학상에서 장강명작가의 댓글부대를 수상작으로 뽑은 것은 칭찬해~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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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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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읽는 책이다



 

자세히 보면 저 핑크핑크한 표지에
햇빛으로 비추어야 보이는 
맹인들을 위한 활자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소설의 한 대목이 인쇄되어 있다

표지 디자인으로도 최고인듯하고..
내용 또한 그야말로 소설같은 짧은 이야기들을
시처럼 예쁘고, 슬프고, 쓸쓸하게도 써서
이삼십페이지밖에 안되는 이야기 하나를
이삼일이나 걸려 읽게 만드는..
가성비가 제대로인 그런 책이다.

시인들한테는 질투 말고는 다른 감정을 사용하진 않거든요..라는 대목은,
김연수작가의 진심인듯 하다.
이 책의 단편들이 그러한 질투라는 감정의 범프를 듬뿍 받은 듯,
문장들이 빛이 나서..
읽는 내내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다.


 

여섯살짜리 우리 늦둥이 막내가
종이접기 시간에 처음으로 책갈피를 만들었단다.

 
고뿔이 걸려 시들시들
소파에 이렇게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엄마에게
막내가 슬며시 다가 오더니
종이로 접은 책갈피를 꽂아 준다


중년의 엄마는 노년의 미스마플을 꿈꾸며,
책들을 파기 시작했건만..
파고 또, 파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 무슨 길이라도 보이리라.
헛기대인줄  알고도, 기대했건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놈의 마플여사(이하 마여사)가 안되면 또, 어떤가 싶다

타고난 품성과
엄마의 밑으로 내려갈 수록 게을러지는 훈육으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키워가는 늦둥이 막내가
이제 곰방 늙어 빠질 엄마를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처럼 
누구누구씨라 부르며,

공룡과 같은 세대를 살았었다는데..
화석으로만 남았었다는데..
어찌 어찌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서
우리 앞에 숨쉬는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호수 건너편이든, 세상 끝이든..
걸어가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무척 사랑하고, 헤어지며, 행복하며, 슬퍼 할 ..
그런 머지 않을 미래가 느껴지는 데 말이다.


마여사 할 일은 
이노마에게 누구누구씨로 불리며
무척 응원할 뿐..


 

시인들한테는 질투 말고는 다른 감정을 사용하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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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적시며 창비시선 342
이상국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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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4번 출구

-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

철없는 아빠를 가졌지만..


이 시를 읽고 나니

그 아빠마저 생각난다.


세살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나기도 전

아빠는 통근기차가 버스 정류장처럼 촘촘했던

그시절의 철도청에 다니고

우리는 섬진강 강변에서 살았다.


뒷뜰에 대나무밭이

바람이 불면

긴머리 아가씨들 머리카락 날리듯하고,

문가에는 밤나무 한그루가

대나무 기세에 위로만 웃자란

방 세칸짜리 집에 한칸 방에 살았다.


깍아놓은 밤톨같은 아빠가

꼭대기에만 열린 밤 좀 따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대문앞을 지나다 얼핏 생각이 나는

그런 출근길이면

냅다 발차기를 밤나무에 한방 날리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리곤 했다.


후두둑 밤들을

후다닥 줏으러..


아빠가 말했다

내가 이뻐서

엄마아빠 한이불

그 가운데다 놓고 자면

꼭 밤에 오줌을 싸서

아빠 배꼽이 축축해져 일어났다고.


겨울인디..

추운디..

말여.


그때 아빠나이가 스물 다섯

철 없음을 용서는 못해도

이해는 할 수있는  그런 나이

 

중년이 되는 건

여전히 구리지만

완전 후지지는 않다


아팠던 일들은 흐릿해지고

추억을 파먹는 걸

땅따먹기처럼 넓혀 갈 수 있어서 말이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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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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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이들어감에 따라..라든가,

나 어릴 적에는..라든가로

시작되는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기에

딱 적당한

그 만큼 나이가 든

그 무렵부터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예전 이야기들을,

추억들을,

사라진 풍경에 대한 글들을,

그냥 저냥 흘려 들으려 한다.


느낌 아니까..


그런 내가 이미경 작가의 책을

이 먼 곳에서까지 구매까지 한 것은

글보다는 그림때문이었다.


가난했던 우리 부모가

한때나마 호구지책 삼았던 구멍가게이기도 하거니와

방학때마다 어린 우리 남매가 맡겨지던

시골 외갓집에서 보았던 

이제는 사라지고만

그 숱한 진짜 구멍가게들이

그 모습 그대로 그려져 있어서이다.


이 책은

같은 시기를 지나간

모두의 개인의 앨범같다.


내가 피사체가 된 사진보다는

내 눈이 보았던 풍경들을 기록한 그런 앨범말이다.


 

 

그림을 보면서

기억나는 건

이런 가게에 들어서는 봄날이면

햇살로 가득 차있는 바깥과 달리

가게안은 무지하게 컴컴해서

몇가지도 안 놓인 그 진열대의 과자들을 식별할려면

멍하니 몇초동안 응시해야 했었던  거.


선택의 여지도 없었던

과자 하나를 들고 나서면,

그 어둠을 뒤로하고,

가게앞의 저 화려한 봄날이 기다리는

다른 세계로 한발 내딛는 거 같았던 기억들


산천은 의구하되

인물은 간데없다...고

오백년 도읍지를 거닐던 선조께서

육백년도 전에 읊으시었는데,


조상님하~

살아 보니

산천도 마냥 의구하지 않더이다.


주변환경 사정 봐줄 거 없이

어느 곳에서도 화사하던

그런 미모의 나무들도

컴컴하던 굴속 가게와 같이

어디론가 흘러 가버리고 없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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