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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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읽는 책이다



 

자세히 보면 저 핑크핑크한 표지에
햇빛으로 비추어야 보이는 
맹인들을 위한 활자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소설의 한 대목이 인쇄되어 있다

표지 디자인으로도 최고인듯하고..
내용 또한 그야말로 소설같은 짧은 이야기들을
시처럼 예쁘고, 슬프고, 쓸쓸하게도 써서
이삼십페이지밖에 안되는 이야기 하나를
이삼일이나 걸려 읽게 만드는..
가성비가 제대로인 그런 책이다.

시인들한테는 질투 말고는 다른 감정을 사용하진 않거든요..라는 대목은,
김연수작가의 진심인듯 하다.
이 책의 단편들이 그러한 질투라는 감정의 범프를 듬뿍 받은 듯,
문장들이 빛이 나서..
읽는 내내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다.


 

여섯살짜리 우리 늦둥이 막내가
종이접기 시간에 처음으로 책갈피를 만들었단다.

 
고뿔이 걸려 시들시들
소파에 이렇게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엄마에게
막내가 슬며시 다가 오더니
종이로 접은 책갈피를 꽂아 준다


중년의 엄마는 노년의 미스마플을 꿈꾸며,
책들을 파기 시작했건만..
파고 또, 파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 무슨 길이라도 보이리라.
헛기대인줄  알고도, 기대했건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놈의 마플여사(이하 마여사)가 안되면 또, 어떤가 싶다

타고난 품성과
엄마의 밑으로 내려갈 수록 게을러지는 훈육으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키워가는 늦둥이 막내가
이제 곰방 늙어 빠질 엄마를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처럼 
누구누구씨라 부르며,

공룡과 같은 세대를 살았었다는데..
화석으로만 남았었다는데..
어찌 어찌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서
우리 앞에 숨쉬는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호수 건너편이든, 세상 끝이든..
걸어가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무척 사랑하고, 헤어지며, 행복하며, 슬퍼 할 ..
그런 머지 않을 미래가 느껴지는 데 말이다.


마여사 할 일은 
이노마에게 누구누구씨로 불리며
무척 응원할 뿐..


 

시인들한테는 질투 말고는 다른 감정을 사용하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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