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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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도원의 아사다 지로가 쓴  소설...

한달에 한권읽기도 벅차던 시절 이틀만에 홀딱 읽어버린 책

흥미진진한  6편의 단편들이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한다..-상투적인가?  어쩌나..사실인데..-

늘 책을 손에서 놓지않는 선배의 추천서였다 역쉬... 그뒤로도 한참을 그 선배에게 이것저것 추천받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읽은지 좀 된 책이라 내용이 가물가물 하네  조만간 함 다시 들춰 봐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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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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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고 있는 뭔가를 나누어 주는 책이 좋다. 엄청 좋다.

사유의 큰 원동력이 되는 읽었던 책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으면 너무나 반갑다.

이윤기 산문집 '내려올때 보았네' 이윤기님은 친절히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을 책속에<<  >> 쳐 내어 놓으셨다. 감사하다. 읽고 읽지 않고는, 품고 품지 않고는 내 몫이다. 하얀 종이에 어디로 흩어질새라 날리는 글씨로 목록을 만든다. 저 목록들은 수일 내 묵직한 상자에 담겨 내 집 초인종을 누르리라.. 무겁게 무겁게   ..^^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것 어떤 것 보다도 부자가 된 듯한 ... 행복해 지는 일이란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여러모로 근간의 읽었던 산문집중 나와 가장 코드가 맞았던 책!!

상당부분 환경이나 나무심기를 강조하신 것도 요즘 나의 땅밟으며 살기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아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키우면 죽는다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나도 이제 나이를 좀 타려나 어째 지난번 산 자스민은 비실비실 하면서도 오래간다...

낮선 이름이다 했는데 이분의 번역서를 나도 몇권 읽었더군...쩝

본 작가 이름도 무심히 넘기는데 번역가야 오죽하랴...  번역서를 구매하며 번역가를 꼼꼼히 따져보는 사람들을 이제사 조금 이해 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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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조명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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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통해서 라면 어렵게 느껴지는 여성 심리를 조금은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우리들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 진 시노다 볼린은 여성 심리안의 다양한 모습들을 신화 속에 등장 하는 7명의 여신들의 원형을 찾아 그 신화들로 풀어 나가고 있다. 복잡다단한   인간의 심리를 그것도 여성의 심리를 단 7명의 여신들로 설명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감정들을 지나치게 일반화 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지만 우리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들이 갈등의 순간엔 마치 내면에서 올림포스 전쟁이 일어난 듯 신들의 원형들이 갈등을 일으킨다는 표현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가슴에 확 와 닿는 재미있는 비유였다.

 
<책 내용 생략...>

  볼린의 신화 속 여신들의 모습을 통한 여성심리의 증명 과정은 확실히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녀는 고전적으로 이렇다 알려진 여성의 성향을 여성적이라는 표현으로 일반화해서 책 내용 내내 서술하고 있다. 여성적이라는 것이 결코 의존적이라거나 수동적인 것은 아니건만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아르테미스나 아테나는 남성적인 성향으로 상처받기 쉬우면서 의존적인 성향의 페르세포네 헤라는 여성적이다 라고 표현한 부분들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 보면 이 여신들의 내부엔 또 얼마나 많은 여신의 유형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겠는가... 여신 하나하나의 성향을 신화의 사건들과 연결지어 이거다 라고 얘기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 여기 저기 여신과 나를 비교해서 그 안의 나를 발견하는 것은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옛날 올림포스 산에서처럼  여신들 간의 경쟁 과 갈등이 내 안에서도 반복해서 발생하고 다시 소멸된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안에서 강력하게 숨쉬고 있는 원형은 과연 누구인가 ?”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내 삶의 순간순간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굳게 앞으로 나아갔던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상처받기 쉬운 여신들 틈바구니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헤메고 있는 내 모습이 잠깐 한심한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 안의 어딘가에 있을 합리적인 처녀여신들을 계발해 내야겠다는 단단한 다짐도 함께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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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학파의 꿈해석
Fraser Boa 지음, 박현순 옮김 / 학지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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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의 첫 문장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를 알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던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나에게 꿈이란 무엇 이였던가?.. 어떤 의미였던가? 그저 전에 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의 엉터리 조합이요, 미래를 예견하는 영험한 이들의 전유물 정도....

하지만 프란츠 박사는 이 것이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깊은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나의 또 다른 반쪽 저 깊은 곳에 숨어서 살고 있는 그림자를 찾아내고, 또한 내 삶의 잠재성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꿈에 귀 기울이라고...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꿈을 어떻게 읽어나가야 하는가?

꿈은 상징의 언어다. 무의식은 꿈속에서 상징으로 드러나고, 꿈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상징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참 신기한 것은 내가 꿈을 적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견한 수많은 상징들이다. 그 이전에는 간과하고 지나쳤던 소소한 것들이 상징으로 내 꿈속 이곳저곳에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꾸었던 수많은 여행의 꿈. 그 것도 보통의 여행이 아닌 암벽등반에 가까운 등산이거나 끝나지 않고 계속 되는 장거리 여행이라는 특징, 또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사람들 앞에 무언가 상을 받기 위해 서있던 내가 수상하려는 순간 언제부터인가 쓰고 있던 모자는 비에 젖어 벗겨지려하고 너무나 예쁜 스푼으로 무언가를 먹게 되고, 등등.. 모든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얘기하려는 상징인 듯 보여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프란츠 박사는 본인이 스스로 꿈을 분석해 내기는 어렵고 많은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얘기한다. 융이 자신만큼 꿈을 분석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했다는 얘기로 본인이 꿈속의 무의식을 스스로 읽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꿈이 나를 이해하는 것이며 내가 나의 꿈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변화하고, 꿈이 우리에게 귀 기울일 때 바로 꿈이 변화 한다는 사실이다.




      ((분석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네 가지 원형))




*그림자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그림자가 숨어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우리가 내보이는 얼굴 아래, 우리의 또 다른 인격이 숨어서  살고 있다.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열등한 성질, 나의 그림자.. 내가 지금껏 받아왔던 수많은 교육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나의 자아로 하여금 수  많은 가면을 쓰도록 강요해 왔다. 그로인해 우리는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고 모든 종류의 자연스러운 동물적 반응과 예의범절이나 사회상황의 요구에서 벗어나는 단순한 인간적 반응을 억압하게 된다. 그렇다. 지금 나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 수도 그저 일부이거나 아님 전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어두운 그늘에 묻혀진 나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꾼 한 꿈속에서 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억눌린 듯한 감정을 폭발 시키며 엉엉 울고 상대에게 내가 하려는 말을 모두 해대고 있다. 그 사람이 말문이 막힐 정도로. 현실의 나에게선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다. 내가 나의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바라봐 주고 좀더 그림자대로 살게 된다면 나는 보다 인간적인 그리고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을까?  비록 어렵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그림자를 알고 집단 현상(약한 자아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주변 사람들의 암시에 걸려들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는 그림자 부분을 실행하는 것 ) 으로부터 그림자를 지켜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내지 못한 모든 불쾌한 성질을 가지고 주변을 짓누를 것이다. 때때로 내 가슴속에 느껴지는 화 덩어리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상시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언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지쳐버리는 순간 튀어나오는 불같은 덩어리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내 가까운 가족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한 번쯤은 내 안의 깊숙한 곳에 마음의 눈을 대고 화를 폭발할줄 아는 고집 센 나의 그림자를 만나야겠다. 그리고 어서 그림자와 정답게 악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니마

남성 심리학에서 남성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에게서의 분리를 진정한 남성으로의 심리적 성장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아니마는 남성을 자기 존재의 심연에 연결한다. 하지만 남성의 여성성은 처음 어머니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심리적 성장을 위해 이 동일시를 깨뜨리는 것, 즉 어머니로부터 아니마를  떼어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머니란 어떤 존재인가 끊임없이 자식에게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존재들이 아닌가. 이러한 어머니를 벗어나기란 어머니와 자식 둘 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삶의 성장 과정일 것이다. 이 모성 콤플렉스가 극복될 때 남성은 자유롭게 자기 본성에 있는 여성적인 측면 즉 아니마를 발달시킬 수 있으며 다른 여성과 건전한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 오늘날 우리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은 강력한 여성적 요소의 출현이다. 이제 여성적인 것이 전면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모계 중심적 무의식의 세계가 영웅에 의해 극복 되어져야 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의 상황은 여성적인 원리가 극복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통합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니무스

여성의 꿈에서 남성으로 인격화된 무의식으로 여성의 외적인 부드러움을 보상하는 내적 지주이며 영적인 확고함을 부여한다.

지금의 나에게 아니무스의 개발은 무엇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준다.

보다 깊이 나의 모습을 찾아보자. 나의 아니무스는 상처 입었고 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실행할 힘 또한 많이 잃은 상태다. 만약 이것이 부정적인 형태로 표출 된다면 내 삶의 일정 부분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 하지나 않을지...나 또한 보통의 여성들처럼 항상 나 자신의 기대보다는 가족과 남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느꼈고 그로인해 오는 패배감으로 비참하게 느꼈던 적이 순간순간 참 많았으며 그것이 일정부분 나 자신의 건강한 가능성을 남편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프란츠 박사는 이것은  일반적인 투사이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여성들 자신의 남성적인 욕구인 아니무스라고 얘기했다. 내가 느낀 것은 나 자신을 비추어 찾을 수 있는 거울을 잃어버린데 대한 절망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나의 고유한 성격의 특성을 느끼고 알아차리며 그 고유한 특성을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절망감이라는 감정에서 해방 될 수 있을까? 내 안의 아니무스를 긍정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끄집어내어 내 삶의 활기찬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 (the Self)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정신을 조절하고 통합하는 중심이다. 사람의 의식이 너무 이성적이거나 너무 영적이거나 너무 물질적이거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태도를 가질 때 심리적인 체계 전체를 유동적인 균형 안에서 유지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 의식과 무의식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보상의 법칙 이것이 자기의 기능이다. 현재의 나는 의식 세계가 많은 부분 침체 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 이론에 따르면 무의식의 세계는 보다 활기차고 밝은 모습으로 표현되어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 균형을 이루며 의식세계의 억눌림을 조금은 보상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내 꿈속에서 일정부분 감정의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아직까지는 꿈을 전부 기억해 낸다는 것이 참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진다. 쉽게 기억나지도 않을뿐더러 혹 기억한다 해도 그 꿈의 상징을 읽어낸다거나 내 삶과 연관지어 분석해 낸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 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내딛은 듯 마음이 가볍다.




모든 꿈은 개인에게 그 자신의 고유한 삶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지적해 준다. 이것이 아마 꿈 생활의 가장 중요한 측면일 것이다. 꿈은 우리에게 자신의 삶의 고유한 패턴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나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을 통해 내 감추어진 인격 나의 그림자와 조우하는 것, 내 안의 낡은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택하는 아니무스의 변환, 아니 적어도 내 꿈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일이 내 삶을 훨씬 건강하게 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제껏 읽어왔던 어느 삶의 지침서보다도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강력하게 바로 잡아 주며 내게 삶의 긍정적인 의미를 전해 주는 감동적인 책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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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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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지금껏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어 왔던 일, 보고 싶은 사람들 생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이 책은 방송인이자 작가인 미치 앨봄이 대학 졸업이후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노교수님을 그 교수님의 루게릭 병 발병을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화요일마다 함께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나눈 얘기들을 교수님 사후에 써낸 책이다.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떻게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기로 한 것일까... 아마도 화요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월요일이나 수요일이었다면 나는 결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삶에 휘둘려 살아가던 미치 앨봄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은 충분히 치러내고 계셨던 모리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화요일은 치유로 설명되어지는 날이었다. 모리교수님과 함께한 화요일마다의 수업으로 점점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자신의 건강한 모습과 삶의 의미들을 찾게 되는 미치 앨봄처럼..내게도 화요일 마다 이루어지는 상담공부는 잊고 있던 내 모습들과 찾지 못했던 삶의 의미와 가치들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서른 살 을 훌쩍 넘겨 삼십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에 인생의 가치를 둘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꿈 많던 여고시절이나 고민 많던 생각 많던 대학 시절에 조차 간과하여 흘려보내던 많은 것들을 이제 사 찾아 헤매고 있다. 아마도 나의 마음의 고장은 미리미리 그 모든 것들을 챙겨 두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운 좋게 얻게 된 직업에 아무런 고민 없이 하게 된 결혼, 어찌어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현재의 상태에 까지 이르면 정말이지 나 스스로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 온 건지. 늘 보다 좋아지길, 보다 윤택해 지길 꿈꾸며 그 뒷꽁무니 만을 한결같이 쫓아 왔건만 나는 항상 무언가가 비어있는 사람 인 냥 허전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냥 허무하게 느껴졌었다.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문득 돌아보면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슴 아픔. 그저 반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면 얻을 수 있는 평화로움을 나는 진정 서른여섯 해를 살면서 모르고 지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가에 대해선 철저하게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 나를 내 삶에서 제외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또 모리교수를 알게 되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고 그저 두렵기만 했던 죽음이 그리고 힘들 때면 입에 달고 살던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는 말이 대신에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변하기 시작해 죽음이 삶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에는 항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정답처럼 이어져 내 삶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해 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저 나 하나만을 위해 살면 그만 이었던 어릴 적 단순한 삶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던 내게 모리교수는 현재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그리고 그것을 찾게 되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지지 않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싶어지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을 일을 하고 싶어진다고 얘기해 준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만 내안의 문제들만 바라보던 내가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을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을 보면. 가까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에서부터 전혀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까지 내가 앞으로 공부해 나가고 알게 될 것 들을 함께 나누어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그득해 진다.

시간을 내 주고,관심을 보여 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바치는 일이 내 삶을 의미 있게 해 준다는 모리교수님... 졸업 후 16년 만에 삐죽 찾아온 제자를 그것도 당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찾아온 미치 앨봄을 모리교수님은 온 몸으로 따뜻하게 품어 안으신다. 문득 문득 스쳐가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 함께 있을 때 온전히 나 자신을 바쳐 사랑하지 못한 그들에게 나는 다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지금의 나를 모리 교수님처럼 온몸으로 받아 줄 것인가..용서해 줄 것인가... 우습지만 이토록이나 무질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를 내 스스로 이제는 용서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내게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살아내셨던 모리 교수를 보며 죽음이 결코 삶의 어두운 끝자락이 아니라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내 삶 속의 모든 것들과 화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최후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물론 운이 좋아야겠지만..^^)

마지막 미치 앨봄과 모리교수님의 작별 의식은 호스피스 시간에 나누었던 영화 마이 라이프의 암으로 죽어가는 주인공 존스와 그의 아기 브라이언의 그것과 닮아 있어 펑펑 울어 버렸다. 존스가 브라이언의 숨쉬는 가슴과 아기의 온 몸을 바라보며 작별을 고했듯 미치 앨봄도 숨을 쉬기 위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리교수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온몸으로 그분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인가 보다. 온전히 마음으로 몸으로 서로를 느끼며 사랑 하는 것. 내가 그토록 이나 원했던 것도 어쩌면 함께 할 누군가였는지도 모른다. 모리 교수님이 알려준 비밀처럼 우리는 아기 때 가 지나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문득 돌아봐 지는 건 그것이 나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이 어떻게 살아질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삶은 모퉁이를 돌아 내게 어떤 상황과 만나게 해 줄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이제는 어떻게 내 삶을 맞이해야 할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도 같다..정말 어렴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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