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퇴근하시면 찌그러진 누런 대야에 물을 담으시고 삐약삐약 수선스럽기 그지 없는 열댓명 되는 손주들에 둘러쌓여 한명한명 까르르 넘어가게 장난을 거시며 발을 씻으셨던 나의 외할아버지...
시내 유명 극장에서 영사기 돌리는 일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흑백영화속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나는 내내 그 직업을 가진 할아버지가 무지 근사하게 생각 됐었다.. 머리크고 나선 "시네마 파라디소" 를 보며 실제론 한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일하시는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이나 한 듯 착각하며 누가 지나가며 슬쩍 물어봐 주지 않나 내심 자랑하고픈 마음에 들뜬 적도 있다...
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참 이상하지 돌아가셨다는 말에도 한동안 아무 느낌이 없었다...결혼 하고 나선 일년에 한 두번 뵐까 말까 한 할아버지의 죽음에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을 어디다 맡기고 가야하나 남편을 먼저 보내야 하나....하다.....문득 발을 씻으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수많은 모습중에 다른 어떤 모습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이쪽 저쪽을 깨끗이 씻으시던 모습만 생각이 났다...한번 두번 할아버지를 생각할때마다 떠오르는 그 모습에 갑자기 이제 다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죽음이 느껴졌다... 보지 않는것과 볼 수 없는것 죽음의 규칙은 정해 져 있다. 누구에게도 예외를 허락치 않는 죽음은 멀찍이 떨어져 경계심을 풀어 놓게 하고는 순식간에 무거운 자신만의 규칙을 사람들에게 던진다... 쿵 쿵 그 무게에 숨도 쉴 수없게 그 예외없는 철두철미함에 반항할 수 없게 ... 어느새 눈 앞에 다가와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비웃는다.
누구나 처럼 나도 후회한다... 아프셨을때 좀 자주 찾아 뵐껄.. 지나번 마지막 생신때 갔어야 했는데...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후회를 나도 지금 하고 있다.
눈을 감고 할아버지를 기억하려 한다... 가만히 내 안에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나만의 이별의식을 치루기로 한다...기억해 드리는것 이것이 내가 할아버지와 이별하는 방법인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