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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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여느 희곡을 읽는 것과는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세익스피어가 아직 야만스런 수준으로 격하되어 있던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극 창작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텍스트와 표현을 사용하여 일상어뿐 아니라, 예술이 가능한 정도의 언어로서

영어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가 연출한 극이 귀족들뿐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사랑받음으로서

그러한 영어의 사용이 영국이란 나라에서 폭 넓게 국민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의미로 인하여

현대의 영어를 구사하는 모든 교양인이 폭넓게 즐기고 누리며 사용하는 인용 텍스트로서

영어 문화권 전반에 뿌리깊게 400년이 지난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영어권 문화의 역사와 현재를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을 듯.

그러나 그런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많은 2차 텍스트와 수많은 인용구로, 그리고 영화와 다른 매체로 세익스피어를 접해왔지만

아직 원전 그대로의 세익스피어를 찬찬히 읽어볼 기회를 그다지 가지지 못했다.

원어로 읽어야 진정한 독서가 되겠지만 능력이 부족한 터라

번역본으로 읽을 수 밖에 없지만

그의 4대 비극을 찬찬히 읽어 보기로 맘 먹었다.

 

맥베스의 비극적 인간형은 조금 특이하다.

어떤 명분없이 스스로의 야망과 탐욕에 의해 살인과 왕위 찬탈을 하였던 악인임에는 분명하나,

찬찬히 극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꼭 그의 인성에 내재되어 있는 악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운명과 상황이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

괴로움에 시달리는 맥베스와 그의 아내의 모습은

그들이 진정 악인이 아닌 양심과 운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약한 인간형의 한 반상임을 보여주는 듯 하다.

오직 마녀들의 예언에만 매달려서 마지막 항전을 벌일 수 밖에 없으나,

결국 자신의 패배를 예감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저 버텨갈 뿐인 맥베스.

그에 대해 같은 길을 걸어왔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안에서 부서진 것은 희망이라기 보다

운명에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불인정이었을 것이다.

마녀들의 예언대로 자신이 죽음에 이르를 것임을 알았을 때 그저 다시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맥베스의 모습은 거대한 운명과 역사 속에 보잘것 없는 존재인 우리 인간의 일반적이 모습이다.

 

맥베스에게서 다시 왕위를 빼앗아 보위에 오르는 이들의 모습은

명분은 있으되, 맥베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복수와 명예 등등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그들 역시 또 다른 마녀의 신탁을 받은 것이 아님을 누가 이야기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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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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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치고 종교에 상관없이, 절집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수학 여행 때문이든,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든,

등산 갔다가 고즈넉한 산사에 한번 들린 것이든,

고시 공부하러 책 싸들고 들어간 것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게 절을 들르게 되면 그저 한 바퀴 돌고 오게 마련이지만,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고,

사실 조그만 절부터 커다랗고 웅장한 절까지 구석구석 볼 것은 참 많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경탄을 일으킬 만한 대단한 예술부터,

작고 눈에 안 띄지만 웃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재미있는 것,

그리고 조용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심으로 만든 다양한 미술품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불교 미술들을 매 꼭지 한 가지 주제에 맞게 소개하되,

해학성에 중점을 맞추어, 마냥 엄숙하게 선념에 빠져 있을 것 같은 불교 미술 곳곳에 숨겨진

많은 재미있고 눈여겨 볼 수 있는 감상을 도와주는 훌륭한 길잡이 책이다.

애초에 단행본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연재글 이었던 만큼

짧은 호흡으로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불교의 교훈과 일화를 소개하며 매 꼭지는 시작하고,

그 불교 말씀과 일화에 맞는 미술품의 사진 소개와 풀이로 글을 이어가며

한두 가지에 우리가 얻을 만한 생각점을 서술한다.

 

평소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절의 구석구석에 이렇게 재미있는 미술품들이 있을 줄이야.

무심코 흘겨 보았던 그림 구석의 많은 소재들..

부처님들과 야차들, 보살들, 짐승들과 중생들.. 등등의

하나하나에 얽힌 일화와 그 일화와 소재들을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으며

그 속에 여유와 해학을 담아 놓은 조상들의 유머 감각이 정말로 기가 막히다.

 

엄숙한 줄로만 알았던 종교의 도량 속에

거룩하게 작업했을 그 미술들에도

삶과 여유를 담아 놓은 그 모습들은

결국 종교와 삶, 내세와 현세가 다름없고 하나이며

언제나 즐거움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 절집 한 군데를 가더라도 눈을 둘 수 있는 이유와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듯 하다.

그 점은 저자에게 감사해야 할 터.

조금씩 더 깊이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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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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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다.

 

대학 다닐 때는 늘상 그의 시집을 끼고 살았더랜다.

대학이란 곳이 너무너무 낯설었던 신입생 환영회의 연속이었던 날들..

술 진탕 먹고서 새벽 서너 시쯤 술집 어딘가에서 헤롱대고 있는데,

내가 참 좋아했던 선배 형 하나가 술에 취해서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시를 한편씩 읽어주고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김용택의 <강 같은 세월>이었고,

술에 취해 흘려 들으면서도 참 좋았던 그의 시구에 반해 다음날 바로 사서 읽었더랜다.

한권씩 한권씩 찾아 읽었던 그의 시들 중에서 <섬진강> 연작은

참으로,, 참으로,, 내게 다가온 시들이었다.

어렸을 때 옆으로 스쳐 지나가거나 다리 위로 지나가 본 뒤

아직도 다시 가볼 기회를 못 찾고 있는 섬진강변이 왠지 고향같이 느껴지는 것은 김용택 시인의 덕이다.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시간들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집이 손에 잡히는 회수가 줄어가고, 그에 따라 김용택의 시를 읽는 회수도 줄었다.

간간히 산문을 접할 기회도 있었으나 그 마저도 줄었다.

그것은 내가 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감성과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고,

 

특히 김용택의 글과 같은,

아이들의 감성과도 같은 순수,

고향과 가족과 사람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과 같은 감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옆집 삼촌 내지 큰 형님 같은 인상의 시인이

이제 60을 바라보며 교직에서 물러났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항상 아이들과 어울려서 일까, 그저 40대 정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시인의 춘추가 그리 되었다니.

그가 마지막 교단을 내려오며 묶은 글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여전하다..

그의 글과 눈에는 언제나 동심과도 같은 순수함과

자연과 사람과 가족과 사회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시와 삶에 대한 열정이 나타난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글은 기운없는 요즘의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었고

그 점에 대해 시인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예화로 모습을 보이는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동시와 일기가

오히려 시인의 문장을 압도할 만한 청초함을 지니고 있음이다.

나 역시 이십 몇년 전 초등학생 시절에는 그러한 글을 지었을 지도 모른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 지금이 안타까울 뿐.

30대 중반의 고단한 삶을, 즐거운 삶으로 바꾸기 위한 힘든 시간을 이제 맞아야 한다.

 

섬진강의 조용한 강변에서 해질녘 강을 바라보며 한번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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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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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한국의 극장가는 두 편의 '핫'한 영화로 화제였다.

하나는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었고,

또 하나는 제인 마치 주연의 "연인"이었다.

 

임팩트는 "원초적 본능"이 훨씬 강했지만

두편 다 무지무지 야하다는 소문에 한창 나이의 나와 친구들은

이 영화들을 어찌 볼 수 없을까,, 하고 보충 수업 쉬는 시간 내내 궁리했고

급기야 평소 노숙한 얼굴로 놀림받던 한 친구 녀석이 가죽 점퍼로 더욱 노숙하게 입고서는

신분증 검사 없이 무사 통과하여 "원초적 본능"을 보고 와서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최고최고.. 를 연발하던 그 녀석은 결국 그해 겨울 방학 때 일본에서 출시된 LD를 사와서는

비디오 테이프에 떠서 전 반 친구들에게 다 돌렸다.

 

영화 한편보는 것도 다운로드 몇번으로.

야한 것 보는 것도 다운로드 몇번으로 볼 수 있는 요즘에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던 20년 전 에피소드.

어쨌든 이 추억 속의 영화들 중 한편인 "연인"의 제인 마치가 표지에 떡 올라와 있는

뒤라스의 이 책을 드디어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다분히 뒤라스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이 책은

식민 치하의 베트남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춘기 소녀가 주인공이다.

베트남에서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는 느껴지지 않고,

광기어린 채 집안을 유지하는 어머니와,

폭력적이고 방탕한 큰 오빠,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나약하게 느껴지는 작은 오빠.

이 셋과 가족을 이루며 미래를 그릴 틈도 없이 낯선 땅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갑갑한 일상과 불안한 미래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소녀는,

어느 날 한 중국인 사업가를 만나게 되는데,

백만장자이지만 프랑스라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나오고,

역시 베트남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육체적인 관계로 일상의 탈출구로 그를 이용했던 소녀 역시

자신의 갑갑함을 풀어줄 수 있는 그와의 육체 관계가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사랑으로 발전함을 느껴가지만 결국 그들 앞에 놓인 문제들을 극복하려 하지 않은 채

헤어지고 만다..

 

사건들은 간단하게 요약이 가능하지만,

소녀의 정신 세계를 좇아가는 문체는 간단하지 않다.

정신 분석학적 서술을 즐기는 뒤라스의 대표작 답게 소녀의 감정을 이리저리 서술하는 문장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와 연인에 대한 감정들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고 중첩적이기도 하며

미성년자로서 깊은 육체적 관계를 갖고 학교와 가정의 규범 또한 무시하는 그녀의 행동 또한

정상적으로 볼 수도 없다.

 

다만,

영화 속에서 중국인 연인 역을 맡았던 양가휘가

검은 색 리무진 자가용 안에서 뒷좌석에 제인 마치와 나란히 앉아

좌석 위로 살금살금 손을 뻗어 살짝 소녀의 손에 닿았다가 얼른 손을 뺐던 수줍고도 조심스러웠던 사랑과

베트남의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 속에서 천장 위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끈적하게 펼쳤던 정사의 장면과 더불어

이 소설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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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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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프라하, 크로아티아의 두보로브니크,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아직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슬로베니아는 그렇더라도

전세계적으로 동유럽하면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곳을 돌아보면서 쓰여진 글.

다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번역하는 여자의 동유럽 독서 여행기"라는 부제처럼

여행을 다니며 떠올린 단상을 주로 책과 연결지어 쓴 에세이집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어떤 형식과 내용의 책일지 궁금해 하며 책을 펼쳤었다..

 

초반부 눈에 박히는 표현이 있었다.

천장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샤워 물줄기 때문에,

'다리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제대로 씻기가 어려워 그 동안 배워놨던 요가 자세를 응용하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겨우 샤워를 끝냈다는 문장..

 

묘한 성적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이 표현은

저자가 자신의 젠더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그 인지를 드러냄에 거리낌이 없다는 증거.

대개 자신의 글에 이렇게 그러한 표식을 남겨두는 사람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공주병이어서 자신을 계속 보고 상상해 달라고 갈구하는 부류이거나,

공격적인 젠더 성향을 드러내는 페미니스트여서 초반부터 난 이런 사람이다, 라고 선을 긋는 것이거나,

아니면 저러한 재치있는 문장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글을 뽐내며 맘껏 멋을 부리는 부류..

 

읽어감에 따라 나는 저자가 세번째 부류라고 결론을 내렸다.

번역가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고 접하게 되는 직업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스펙트럼은 제법 넓다.

비단 책뿐 아니라, 영화, 그림, 역사, 음악 등에 대해서 이리저리 펼쳐 놓은 취향은 갈래가 넓다.

중간중간 주요 포인트는 주로 표기하며 해설을 달아 놓았지만

많은 부분을 건너 뛰는 것은 마치 '나 정도 되는 내공으로 읽으며 대화하자' 라고 하는 듯.

그 대화에 끼지 않거나 못하는 독자에게는 불편한 텍스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불편함을 대화 상대에게는 강요할 수 있다.

불편해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으면 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분문에도 나오지만 보부아르 역시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조건으로 항상 칸트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던가.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불편함을 조금은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누들스가 아닌 맥스에게 있는 아우라'라는 표현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Once upon a Time in America"라는 영화를 내가 아주 좋아하지 않았다면

개풀 뜯어먹는 비유가 될 것.

일방적인 대화인 독서라는 과정에서는 조금은 이러한 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듯.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모르는 부분은 건너뛰고 이해되는 부분은 음미하며 읽어가면서 해결하고 보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맛깔나다.

흔히 많은 여행기가 그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사진 일색이 아닌,

충분히 내화되어 또 다른 텍스트와 연결하는 능력과 시선을 공유하는 것은 즐거웠던 경험이다.

다행히 취향도 조금 비슷한 점이 있고.

 

그러나 어느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그저 내가 직접 그 도시들을 가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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