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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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프라하, 크로아티아의 두보로브니크,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아직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슬로베니아는 그렇더라도

전세계적으로 동유럽하면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곳을 돌아보면서 쓰여진 글.

다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번역하는 여자의 동유럽 독서 여행기"라는 부제처럼

여행을 다니며 떠올린 단상을 주로 책과 연결지어 쓴 에세이집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어떤 형식과 내용의 책일지 궁금해 하며 책을 펼쳤었다..

 

초반부 눈에 박히는 표현이 있었다.

천장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샤워 물줄기 때문에,

'다리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제대로 씻기가 어려워 그 동안 배워놨던 요가 자세를 응용하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겨우 샤워를 끝냈다는 문장..

 

묘한 성적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이 표현은

저자가 자신의 젠더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그 인지를 드러냄에 거리낌이 없다는 증거.

대개 자신의 글에 이렇게 그러한 표식을 남겨두는 사람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공주병이어서 자신을 계속 보고 상상해 달라고 갈구하는 부류이거나,

공격적인 젠더 성향을 드러내는 페미니스트여서 초반부터 난 이런 사람이다, 라고 선을 긋는 것이거나,

아니면 저러한 재치있는 문장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글을 뽐내며 맘껏 멋을 부리는 부류..

 

읽어감에 따라 나는 저자가 세번째 부류라고 결론을 내렸다.

번역가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고 접하게 되는 직업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스펙트럼은 제법 넓다.

비단 책뿐 아니라, 영화, 그림, 역사, 음악 등에 대해서 이리저리 펼쳐 놓은 취향은 갈래가 넓다.

중간중간 주요 포인트는 주로 표기하며 해설을 달아 놓았지만

많은 부분을 건너 뛰는 것은 마치 '나 정도 되는 내공으로 읽으며 대화하자' 라고 하는 듯.

그 대화에 끼지 않거나 못하는 독자에게는 불편한 텍스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불편함을 대화 상대에게는 강요할 수 있다.

불편해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으면 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분문에도 나오지만 보부아르 역시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조건으로 항상 칸트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던가.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불편함을 조금은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누들스가 아닌 맥스에게 있는 아우라'라는 표현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Once upon a Time in America"라는 영화를 내가 아주 좋아하지 않았다면

개풀 뜯어먹는 비유가 될 것.

일방적인 대화인 독서라는 과정에서는 조금은 이러한 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듯.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모르는 부분은 건너뛰고 이해되는 부분은 음미하며 읽어가면서 해결하고 보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맛깔나다.

흔히 많은 여행기가 그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사진 일색이 아닌,

충분히 내화되어 또 다른 텍스트와 연결하는 능력과 시선을 공유하는 것은 즐거웠던 경험이다.

다행히 취향도 조금 비슷한 점이 있고.

 

그러나 어느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그저 내가 직접 그 도시들을 가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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