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영화가 아닌 글로 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나서 읽다.

엘리야 카잔 감독, 말론 블란도, 비비안 리 주연의 영화로 대학 시절 만났던 이미지가 아직 선한 가운데

글로 이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잡아내기에 당시에는 어렸고 잘 몰랐다면

글로 표현해 주는 텍스트 메시지는 더욱 쉽고 강렬하게 눈을 사로 잡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탄 후 도착하게 되는

'극락'이라는 이름의 거리.

20세기를 거쳐 더더욱 도시화, 산업화되는 세계를 살아가는 삶은

넘치는 욕망의 물결에 휩쓸려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욕망을 채우고 만족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인간의 헛된 바램은 얼마나 큰가.

결국 죽음을 거쳐 묘지로 들어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극락이란 곳에 다다를 수 있는지 모른다.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는 재즈와 블루스의 고향 답게 언제나 거리에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블루스가 그렇듯 거리의 모습은 흥겨운 가락보다 애절한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 애환이란 흑인들의 착취당함의 역사에서 나오는 것부터

남북전쟁의 패배로 인한 몰락, 그리고 나라의 중심 산업에서 밀려난 퇴락적인 모습의 남부 소도시.

그런 곳에서 힘겹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도시 빈민가의 애환이 될 수도 있다.

 

문도 없이 방 두 개 사이에 커튼 하나로 갈려질 수 밖에 없는 작은 공간에서,

폴란드계 이민자로 거친 남성상을 보이는 스탠리와,

몰락한 남부 귀족 집안의 장녀로 과거와 꿈을 먹고 과시적이며 향략적인 여성상을 보이는 블랑시,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현실과 과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텔라는 어쩔 수 없는 갈등구조에 놓이게 된다.

 

그 갈등 속에서 결국

남성이, 현실이 승리하는 것은 더이상 과거의 꿈과 낭만에 젖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블랑시를 짖밟고서도, 스텔라에게 폭력적이고서도, 이전의 삶의 방식을 전혀 바꾸지 않고서도

포커에서 승승장구하며 승리자의 모습을 극 막판에 과시하는 스탠리의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으나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남성적인 상이 낯설지 않은 것은 반세기 전에 쓰여진 이 희곡이 그리는

욕망과 죽음의 세계, 과거와 현재의 투쟁, 꿈과 현실의 간극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덕 시티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시원한 블랙 코미디.

다 읽고 나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누가 보아도 현대 물질 만능 자본주의 한 단면인 식습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식습관의 첨병인 미국에 대한 풍자인 이 소설은

어리석은 대중을 몇 가지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이끌어 가는 미국이란 나라를 그리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우중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그 상징들이 매우 쉽게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탐욕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는 오리를 이름으로 하는 도시 국가.

그리고 그 오리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만들어 낸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

도날드와 그 여자 친구 데이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중요한 인물인 존은 미국 이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다.

 

애이햅 프로젝트는 멜빌의 <백경>에서 따왔는데

미국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책이며 또한 이 책에서 그리는 포획의 대상인 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의 대부분이 바닷물의 차가운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지방으로 되어 있고,

바로 포경 산업은 이 기름을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산업이었으므로,

체지방과의 전쟁인 애이햅 프로젝트는 역시 아이러니칼한 이름이다.

 

역자 해설에도 나오지만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도 설파되었듯이

오늘날의 계급을 보여주는 지표 중에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가 하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서구 열강 중에서 빈부의 격차가 가장 미국의 일반 대중은

(이 책의 또 다른 비판 대상 중의 하나인)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들 -

즉 기름지고 포화 지방이 많으며 고칼로리이지만 영양가는 떨어지는 - 음식을 즐기며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비만이다.

이에 반해 사회 지도층은 웰빙하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가 등은 뚱뚱한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비만을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푸는 해법 또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푼다.

슬로우 푸드라 일컬어지는 좋은 음식 - 그래봐야 현대 사회에 들어오기 전에 일반적으로 먹었던 음식들

을 먹으며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을

다이어트 산업이란 이름 하에 또 하나의 일거리로 만들어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이는 끝없이 부가 가치를 생산해야만 사회 구조가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속성에 기인한 것이며

이 때문에 대중들은 끊임없이 먹고 다시 먹은 것을 없애야 하는 악순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 역시

폭식의 정반대인 거식으로 향해 가는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의 모순점을 보여주며

또한 그러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기업가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로비 문화가 만연한 미국식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나라의 현실임을 생각할 때 슬프기 그지없지만

슬픔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책을 심각하게 읽어볼 일이다.

과연 식습관 뿐 아니라 일상 자체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나는 천박하게 살고 있는가.

비록 그 구조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끌려가지 않고 끌어감으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신료 이야기 - 달콤한 미각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252
정한진 지음 / 살림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생활을 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의식주라고 할 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문화사를 살펴 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독서가 된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식' 그리고 그 중 향신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음식 문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배고플 때 배를 채울 수만 있으면 좋다,, 라는 수준에서 벗어난 지가 얼마 안 되어

직접 요리를 한다는 것은 고사하고, 맛을 잘 구별한다거나 재료를 안다거나 하는 것은 꿈도 못 꾸지만

향신료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배낭 매고 해외에 몇번 여행을 나갔다 오게 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특이한 맛 또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손에 끌려 처음 여행을 갔었던 싱가폴에서 먹게 되었던 '꼼양꿍'은 특이한 향취 탓에

거의 먹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그 '고수'를 어느 정도는 먹게 된 것도,

그리고 그 빈대 냄새나는 풀의 이름이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모두 그러한 경험 덕분이다.

 

향신료의 정의를 어디까지로 할까 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알게 된 그 종류와 쓰임새는 어마어마 하게 많았다.

인류가 존재해 온 이래 주된 음식 재료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되,

그 식재료를 요리하여 먹는 방법은 수없이 변해왔고, 그러한 변화를 이루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향신료의 발견과 이용에 있었음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후추, 고추, 생강, 마늘 등을 포함하여

서양 중세사를 보다 보면 이름만 듣게 되지 실제로 어떤 것인지 항상 궁금했던

육두구나 정향, 사프란 등..

다양한 향신료의 산지와 특징, 역사 등을 짧은 글 안에 담아낸 이 책은

관심이 있는 이에게는 제법 많은 정보를 주기에 잠깐 짬내어 읽어 볼만 하다.

 

우리가 주로 먹는 향신료 이외에 서양식 향신료는,

과거에 화폐와 같은 지위를 누렸을 정도로 값이 비싸서 상위 계층만 먹었던 것과 달리

이제 식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내고 자연식을 먹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

서양 음식에는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잘 먹기 힘든데..

인도, 중동, 동남 아시아 등에서는 아직 그 지역 고유의 음식에 많이 쓰이고 있다 하니..

이 책을 다 읽은 김에 인도 커리 전문점에 오랜만에 한번 가볼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In the Blue 2
백승선 / 쉼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동일한 저자들의 크로아티아 여행기를 너무나 즐겁게 읽어서 주저없이 읽게 된 책.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고 알려진 나라들보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정말로 가볼 만한 나라인 크로아티아와 벨기에를 소개시켜 주었기에 고마움.

유럽의 중북부에 위치한 벨기에는 자그마하고 프랑스의 압도적인 문화와 넓이에 밀려

그다지 우리 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막상 벨기에 하면 와플과 월드컵에서 보았던 축구 대표팀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할까?

아, 스머프도 있다.

하지만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계기가 생긴 것은 브뤼셀의 마그리트 박물관 때문이다.

왠지 마그리트의 창문과 하늘 그림에 나오는 산뜻한 아름다움이 가득할 것 같은 나라로 상상된다.

 

역시 네 곳의 도시를 소개한다.

브뤼셀, 안트베르펜, 브뤼헤, 겐트.

 

수도인 브뤼셀.

유럽의 여느 도시들처럼 아름다운 건물과 그 도시만의 색을 간직한 곳.

안트베르펜,

보통 영어식 발음인 앤트워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항구지만

인구는 겨우 몇십만..

루벤스의 도시이며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플랜더스의 개'라는 동화의 배경.

브뤼헤,

수도와 이름이 헛갈리기 쉽지만 풍경은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소도시.

운하의 도시로 마치 베니스 같은 곳.

겐트,

자전거로 조용히 돌아보면 딱인 소도시. 시간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책을 읽고 드는 내 막연한 느낌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다 보면 받는 느낌이나 떠올리는 추억과 생각은 누구도 다를 것이다.

크로아티아 편에 비해 이번 편은 유난히 저자의 개인적 추억이 많이 드러난다.

우리 나라와 크게 관련없이 살아가는 낯선 나라인데 그곳의 어느 것이

동양의 한 나라의 한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러한 느낌을 꺼내었을까.

 

스위스 로잔에서 보낸 어느 일요일 아침이 생각이 난다.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흐린 가을날 일요일 이른 아침.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사람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조용한 도시 거리를 즐거이 걷다가

배고픈 김에 문을 연 빵집에 들어가 마침 막 구워져 나온 와플에 초코 시럽을 듬뿍 올려 들고 나와

역시 걸으며 먹으면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 달콤했던 맛과 조용한 아침을 걷던 즐거운 기분이란..

 

이 책의 사진들은 그때 그 로잔의 풍경과 닮았다.

언젠가..

마그리트 박물관에서 실컷 그림을 감상하고 나와

와플에 벨기에 산 맥주.. (레뻬와 같이 거품 많은) 하나 들고서

광장에 자유롭게 퍼져 앉아 본다면

나 역시 그 추억을 머리속에서 꺼내어 볼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B급 좌파로 유명한 김규항을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나 대담을 나누고 엮은 책.

 

정말로 눈뜨고 보기 힘든 사태가 계속 하여 벌어졌던 이명박 정부 초반.

'촛불'로 대변되는 그에 대한 저항 국면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며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예들의 횡보와 포스트 이명박을 향한 또 다른 세력의 정치적 다툼.

여전히 나아질 길 없는 경제 상황 등의 여러 가지 환경에서

그 흐름에 대해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김규항의 생각을 담고 있다.

 

지방 선거가 한달 뒤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뭔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대학이란 곳에서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을 배우고 난 뒤부터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해왔지만,

사회에 진출하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 살기 빡빡한 세대가 도래한 뒤부터는

역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심정과 행동에는 차이가 있게 살아왔다.

 

적어도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나 자신의 주관 정도는 세우고 싶었지만

왜 내가 이명박을 싫어하면서도 노무현을 좋아할 수는 없는지,

그의 죽음에 안타깝지만 서도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짜증이 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정리할 여력과 역량이 없었음은 변명이겠지만 사실이다.

 

김규항의 생각에서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생각들의 힌트와 근거를 발견했다.

결국 본질적 의미에서 진보는, 반이명박 정도가 아닌 신자유주의 전체를 거스를 수 있는 흐름이 되어야하나

정치적 자유를 지향했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권보다도 신자유주의를 건고하게 다짐으로써 이중적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은

너무나도 공감이 간다.

 

결국 나 역시도 선거 때마다 김규항이 비판하는 '비판적 지지'를 선택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섣부른 비판적 지지는 결국 반진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분석에 수긍이 간다.

그래서 정태춘 아저씨가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나..

얼마전 주점에서 정말 오랜만에 들었던 그의 옛 노래 자락을 생각해 본다.

같이 술 마시던 모든 이가 한순간 말을 끊고서 생각에 잠겼었던 그 순간.

 

과연 함께, 같이, 잘 살아가자는 그 논리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인가.

프리 라이딩을 막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논리 아래

오직 엘리트 만이 살아남고 그 이외의 다수는 그들을 떠받치기 위한 하부 구조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신자유주의를 받아 들여야 하는가..

아니라고 믿어본다. 희망이 없어서는 이 나라에 사는게 너무도 원통하고 억울하여 하루를 살아내기 벅차다.

다만 유럽의 몇 나라만을 부러워 하며 살기에는 아직 살아갈 날이 너무 많지 않은가.

 

종교에 워낙 관심이 없기에 예수를 꺼내며 영성과 혁명, 진보를 이야기하는

김규항의 전작과 이 책의 후반부는 낯설다.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거대 세력으로 하나의 사회적 토대가 되어 버린 종교 집단과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대승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어떤 영성을 통해야 커뮤니케이션이 될지는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예수전>을 읽어봐야 할 듯.

 

사는 것이 힘들다.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들다.

하다 못해 이명박도 힘들어 보인다.

제발 모두 함께 같이 잘 살자.... 그것만 일단 동의하면 희망이 조금씩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너무 나이브할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