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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호주 출신 신예 작가 크레이그 실비의 문제작.
비교적 빨리 국내에 소개가 되었고 그만큼 기대가 컸다.
읽은 느낌은,, 여러 가지 작품들을 많이 연상시키는 가운데 차분하니 읽으면서도 즐거웠던 작품.
한 소녀의 죽음을 두고 미스테리 형식을 띄며 사건이 진행되지만
단순한 미스테리 소설이 아닌, 울림을 주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처음 소녀의 죽음을 목도하는 주인공 찰리의 심리는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시켰다.
아직 어린 소년에게 죽음이, 그것도 그 만큼 어린 소녀의 참혹한 죽음과 시체가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그에게 닥친 심리적 충격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극복하면서 한층 성숙하게 되는 과정은
굳이 여러 가지 수사로서 묘사하지 않아도 울림이 크다.
같은 주제를 변주하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 보인 장면이며
이 소설이 훌륭한 성장 소설이 되게 하는 부분이다.
그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면 이 작품이 끝나게 되리라는 것은 작품 초반에 알게 되지만,
작품의 흐름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소년 탐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시기에, 아직 백호주의가 남아 있는 호주에서 베트남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옆 이웃 루 가족의 시련을 보면서 나 역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과 다름을 무작정 증오하고 그것을 빌미로 학대하거나 따돌리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책임 떠 넘기기 등..
몇몇의 멍청한 이들의 개인적인 바보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이러한 일들은
아직도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어떤 형식으로든 만연하고 있고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단순한 '깨어 있는' 몇몇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인종 차별은
아직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 정말로 부끄러운 치부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새삼 분노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아픈 장면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웃음짓게 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것은
찰리와 일라이저의 로맨스다.
어린 소년 소녀의 첫사랑을 다룬 텍스트는 참 많겠지만
내게는 영화 <마이 걸>을 떠올리게 했고, 그 영화의 메인 송이 들리는 듯한 느낌.
첫 키스의 설레임과 첫사랑의 두근두근함.
비록 서로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함에도 서로를 점점 더 의지하고 아끼게 되는 과정을 보며
끔찍한 죽음의 장면을 잊을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플롯.
배경인 코리건 마을은 한적한 호주의 한 마을인데.
그 안에서 나타나는 백호주의와 로라의 죽음에 얽힌 배경은 한적하지 않고
결국 인간의 가장 좋지 않은 면을 그 안에서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를 연상시킨다.
죽은 소녀의 이름 또한 로라이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제목을 따온 또 하나의 주요 인물, 재스퍼 존스.
유명한 예술인의 이름이기도 한 이 이름을 가진 소년의 비참한 현실과 과거.
그러나 그러한 상흔을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려고 하는 그의 모습은
호주의 허클베리 핀이 아니겠는가.
전체적으로 참으로 많은 텍스트들을 연상시키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젊은 청년 임을 생각해 보면
그가 그동안 읽어왔고 접해왔던, 그래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텍스트들이 다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500페이지에 이르는 많은 분량의 소설이 지루하지 않으며
단순한 베낌이나 변주에 이르지 않고
자신의 플롯 안에서 그 텍스트들의 주제가 명확히 살아있도록 표현한 것은
작가의 역량이 범상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가 세상에 내놓을 다음 작품에서 보다 명확한 평가를 받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