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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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여섯 편의 소설을 내어 놓고도

소설 문학의 완성자 중 하나로 칭송 받으며 불멸의 위치에 올라선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그의 문학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것은

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변하지 않는 보편적 정서를 독자와 공유하며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거창한 시대적 흐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미시적인 시대적 모습과 생활상을 구체적이고 산문적으로 묘사하여

이질감보다는 친화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배경도 위와 같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인물들의 캐릭터 성은 평면적이고 그들의 성격을 작품 전체를 통해 유지한다.

그렇지만 제법 여러 명이 등장하는 와중에서도 각 인물들은 전체 플롯에서

고유한 위치와 특성을 고수하며 전체적으로 어우러지기 때문에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속물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자연스럽고 또한 전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귀족 집안의 둘째 딸의 사랑과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 속에서

신분, 사랑, 성격, 그리고 재산 등등을 가지고 평가하거나 밀고 당기는 모습들은

어찌 보면 수백년 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의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때로는 답답하기조차 하면서도

언제쯤 앤과 앤트워스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지켜보는 것은

이 고색창연한 이야기를 좇아가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신파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안도감과 함께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역시 오스틴의 세련된 필력 때문이 아닐까.

 

숱한 사랑의 변주곡을 울리고 얽히고 설키며 불륜에 무엇무엇까지 범벅시킨 요즈음의 이야기들이

짜증을 불러 일으키며 지켜보게 만든다면

검고 웅장한 표지로 나온 이 책의 이야기는 그 분위기에 맞게

장중하고 약간은 근엄하게 (마치 주말 TV앞과 오페라 극장과도 같이 나뉘어)

잘 차리고 읽는 느낌이 나며

보통 사람들이 예술 극장에 한번 다녀왔을 때 처럼

다 보고 나면 뭔가 으쓱하게 만들면서 '나도 이 책 읽었어' 라고 자랑하고 싶은 느낌이다.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오스틴.

이제 몇 편 남지 않은 나머지 작품을 더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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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31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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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펑크와 페미니즘 문학의 만남.

상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SF란 장르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풀어내는 것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 어찌 보면 하나의 커다란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축복을 제대로 활용하는 작가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본인은 SF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부하고 있으나

이미 마가렛 애트우드 라는 한국에도 많이 소개된 작가를 통해 위와 같은 조합의 효과는 입증되었고,

이제 또 하나의 걸출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저자 약력을 통해 소개된 마지 피어시의 생은 매우 화려하다.

작가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왕성하게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으며

그 노력 또한 많은 상으로 인정받았던 듯.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이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매우 독특한 내용의 작품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의 한 곳, 한 시대에서 소수 인종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존엄성을 부여받지 못한 채 각종 폭력과 차별 속에서 살아왔고

결국 그러한 경계 지음 속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외부인, 혹은 비속인으로서 정의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하지만 또렷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각 능력과 지능을 가진 그녀는

그러한 처지에 대해서 극복하거나 대처하기가 힘들다.

소설의 한 축은 이러한 현실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조금씩 성장하며 극복하려는 노력을 펼치는가 이다.  

여기까지는 여성 문학의 단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주인공 코니가 미래의 인들과 일종의 텔레파시로 교신하며

미래 세계를 경험하는 것.

사이버 펑크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 수수하지만

장르에 상관없이 이러한 SF적 장치를 통하여 작가는 미래 세계를 하나 그려본다.

그녀가 그린 미래는 성적 역할이 불분명해져 개인적인 롤로 대체되고

공동 생산적인 소규모 커뮤니티적 사회로 세분화되며

자급적이고 소비지양적인 농업적, 기술적 생산 사회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적 단면들을 묘사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도록 설정하여

그녀가 생각하는 현대의 문제를 역으로 꼬집는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이야기들이 맞물리며 이야기는 전개되고

이로써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코니는 성장하고 점점 맞서싸우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은

(나는 굳이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인간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극히 최근에 시작되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의에 동의한다고 할 때에도

바뀔 수 없는 생물학적 차이와 수천년 동안 쌓여온 사회적 편견과 장치들을 넘어서기 위한

좋은 방법은 (내 생각에) 아직 찾지 못한 상태로,

그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음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하는 사람들의 한 명인 저자가 내어 놓은 하나의 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문제점을 꼬집고 그에 대한 하나의 작은 방안을 그려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게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수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급진적 성향을 생각한다면 그것보다는 좀더 많은 수확을 원했을 테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성차를 생각해 보는 글을 만났다.

 

딱딱한 사회 과학 책이 아닌 소설로 이런 생각을 좀더 쉽게 끌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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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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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료와 공부를 통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뒷받침한 뒤,

그 재료들에서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사실과도 같으나,

환상과 판타지, 호러 등등의 여러 요소가 복합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로,

상복도 많은 제프리 포드의 또 다른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재능있는 화가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초상화가로 삶을 꾸려 가는 화가 앞에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거액의 제안이 들어오지만 그 임무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상이 되는 인물을 보지 않은 채 초상화를 그리는 것.

이렇듯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주인공이 맡으면서 이 기묘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세기 전 미국의 도시 풍경과 함께 고딕 소설의 향취가 흘러나오면 슬슬 호러 분위기가 나기도 하고

샤르부크 부인의 이야기는 판타지 스럽기도 하며

갑자기 발생하는 연쇄적인 죽음들을 맞닥뜨리면서부터는 미스테리의 느낌도 난다.

작가 특유의, 이러한 장르를 넘나드는 엮임은

독자로 하여금 계속하여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때로는 샤르부크 부인이 들려주는 신비한 이야기에 빠져서,

때로는 연쇄 살인범의 정체와 다음 수사가 궁금해서,

때로는 주인공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서..

 

소설과 이야기 텍스트가 독자에게 읽히고 재미를 주며

독자의 안에서 감흥과 흥분으로 재창조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면

제프리 포드의 이야기야 말로 그러한 소설의 의의에 매우 적극적으로 부흥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읽기에 즐거운 그의 책을 또 만나는 기회가 어서 생겨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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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와 검의 노래 레인보우 북클럽 20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지음, 이병렬 옮김, 표정수 그림 / 을파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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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앵글로 색슨의 나라라고 알고 있는 영국.

그러나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영국이 유럽사의 전면에 나서기 이전,

야만의 변방 섬나라 였던 시절에는 여러 민족의 그 땅의 주인으로 자리가 바뀌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소설을 영국의 옛 시절에 노르만 민족과 싸워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가던 스칸디나비아 인들의 이야기다.

 

어느 민족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게 마련이지만,

척박한 땅에서, 나날이 강대해져 가는 노르만이라는 외적의 침입에 항시적으로 맞서며 살아가야 하는

이 스칸디나비아 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명예'와 '용기' 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도 그들에게 이러한 점을 명시적으로 알려준 적은 없으나

이 책의 주인공 소년 소녀들인 비요른과 프리다는 그들이 성장하는 중에 이러한 가치들에 대해서

점점 더 깨닫게 되고 자신들의 안에 담아두게 된다.

 

특히 그들의 가치는

각각 소녀가 여성성을 지니어 가면서 자신의 삶을 가사에 둘 것인가, 활을 잡을 것인가,

소년이 청년이 되어 가며 전사적인 칼을 잡을 것인가 자신 안의 서정성을 표현하는 하프를 잡을 것인가,

와 같은 자신들의 삶을 정해가는 성장 속에 더더욱 명징해진다.

 

결국 참혹한 전쟁 속에서 그들이 맞닥뜨린 극한 상황에서

그들은 진정한 용기로서 그들의 가족과 부족을 구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그들은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게 되며

또한 더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으며 진정한 성장의 완성을 이룬다.

그리고 아마도,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한 귀퉁이에 일어났을 법한 작은 이야기를 통하여

많은 것을 이야기한 작가의 이야기 만들기는 놀랍다.

더군다나 나로서는 잘 알기 힘든 시대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지니고

훌륭한 성장 소설이자 역사 소설로서 다가오는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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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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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신간 안내 코너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무심히 또 여느 여행기구나, 하면서 지나쳤던 책.

그러나 점점 더 그 제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읽게 되었다.  

그렇다,

지금 나의 상태가 점점 더 그러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0년도 더운 여름이 점점 가고 3분의 2가 흘렀으니

어찌어찌 짧은 가을을 보내다 보면 끝이 보일 것이다.

 

올해,,

몇년을 살지 모를 생애에서 가장 다사다난한 해라고 해야 할까.

여러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너무도 바쁘고 스트레스 받았고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계속 감내중이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 이후에는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막함이 더 두려움 때도 있고

현재가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놓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으며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이러한 스트레스를 가만 잊고 지내다 보면 또 맘이 편해질 때도 있다...

이러한 삶의 언저리에서 생각난 구절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다.

 

역마살이 껴 떠올아야만 하는 심성은 아니되,

훌쩍 떠나 공고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든 관계로부터 살짝 비켜 있는 시늉을 하면

좀 나아져서 돌아오고는 했었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여건조차도 없었던 올해.

정말 견딜 수 없는 지경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겨우 용기를 내어 비행기표를 사고 2주 뒤에 떠난다.

거기에서 난 무엇을 얻고 올 수 있을 것인가.

 

책의 저자.

좀 외로운 사람인 듯 보인다.

다른 여행기에서 보이는 들뜸과 따뜻함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으며

자기 속으로 들어가는 외로운 여행을 한 듯 보이기도 한다.

나도 가본 여행지에서 눈에 익은 사진들 뒤의 풍경을 보며 그가 떠올렸던 생각들이

어느 과정을 거쳐서 거기에까지 다다랐을지 짐작도 안 가지만

그가 좀더 따뜻한 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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