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여섯 편의 소설을 내어 놓고도 소설 문학의 완성자 중 하나로 칭송 받으며 불멸의 위치에 올라선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그의 문학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것은 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변하지 않는 보편적 정서를 독자와 공유하며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거창한 시대적 흐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미시적인 시대적 모습과 생활상을 구체적이고 산문적으로 묘사하여 이질감보다는 친화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배경도 위와 같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인물들의 캐릭터 성은 평면적이고 그들의 성격을 작품 전체를 통해 유지한다. 그렇지만 제법 여러 명이 등장하는 와중에서도 각 인물들은 전체 플롯에서 고유한 위치와 특성을 고수하며 전체적으로 어우러지기 때문에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속물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자연스럽고 또한 전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귀족 집안의 둘째 딸의 사랑과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 속에서 신분, 사랑, 성격, 그리고 재산 등등을 가지고 평가하거나 밀고 당기는 모습들은 어찌 보면 수백년 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의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때로는 답답하기조차 하면서도 언제쯤 앤과 앤트워스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지켜보는 것은 이 고색창연한 이야기를 좇아가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신파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안도감과 함께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역시 오스틴의 세련된 필력 때문이 아닐까. 숱한 사랑의 변주곡을 울리고 얽히고 설키며 불륜에 무엇무엇까지 범벅시킨 요즈음의 이야기들이 짜증을 불러 일으키며 지켜보게 만든다면 검고 웅장한 표지로 나온 이 책의 이야기는 그 분위기에 맞게 장중하고 약간은 근엄하게 (마치 주말 TV앞과 오페라 극장과도 같이 나뉘어) 잘 차리고 읽는 느낌이 나며 보통 사람들이 예술 극장에 한번 다녀왔을 때 처럼 다 보고 나면 뭔가 으쓱하게 만들면서 '나도 이 책 읽었어' 라고 자랑하고 싶은 느낌이다.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오스틴. 이제 몇 편 남지 않은 나머지 작품을 더 읽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