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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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 (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 TV에서 보았던 미국 학원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 중

유난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별로 인기도 없었던 그저 그런 류의 드라마였지만,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소년의 학교에 특이한 아이가 하나 전학을 왔는데,

알고 보니 길에서 먹고 자는 부랑아 였고 학교도 등록되지 않았던 애였던 것.

호기심에서 시작한 만남이었지만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 때쯤

그 아이는 저 길 끝에 빛나는 별을 찾아 떠다는 소년의 뒷모습을

멋진 그래피티로 그려 놓고 사라지면서 그 에피소드는 끝이 났다.

U2의 "I'm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라는 곡이 나오면서.

 

그때는 자유로운 미국의 중고등 학교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봤던 드라마지만

이 에피소드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떻게 길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시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심하고 숫기없고 융통성없는 나로서는

혼자서 길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이 상상이 되지 않았고

또한 동경의 마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이라는 걸 품을 수 있다는

다소 낯간지러운 주제가 U2의 저 멋진 노래와 함께 멋있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성장을 다룬, 그리고 길 위에서의 삶을 다룬 많은 텍스트들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 위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주지 않아도

그렇게 떠나는 모습이 언제나 좋았다.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은 '본'이라는 자신이 지은 이름을 가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험하디 험한 현대 미국 사회의 길에서 삶을 꾸려 간다.

너무도 어린 나이이기에 그것이 '살아감'이라는 의식 조차도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이다.

많은 일과 사람을 만나면서.

 

미국의 작은 소도시에서 점차 그 지평을 넓혀가며

결국 자메이카라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이르기까지

본은 자신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넓혀 간다.

그것이 라스파타리안과 같은 특이한 종교와 마리화나에 의한 환각적 세계이든,

지극히 현실적인 이성의 세계이든 상관없이

15살 어린 소년은 점점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그것은 그에게 의미있는 오직 세 사람에 대한 사랑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인 <본의 법칙 Rule of the Bone>을 뒤집으면 '본이 지배한다 Bone rules" 로 바뀐다.

환각과 이성을 뒤집어 두 세계를 넘나드는 본은

결국 거리에서 배운 그의 삶의 법칙을 깨닫고

그 자신의 생을 지배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된다..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생각할 거리도 많고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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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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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작가를 만나는 방식의 전형은 전작주의 이다.

어느 작가가 맘에 들면 그 작가의 책은 계속 본다.

정말 좋아지면 전부 다 모아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질려버리면 거기서 스톱.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아예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게 된다. 읽을 책이 너무 많으므로.

 

예를 들어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경우는 <개미>가 너무 좋아서

전작식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그 이후의 작품은 점점 재미가 없고

나중에는 질려 버려서 <개미> 이외의 책은 모두 없앤 경우.

딘 쿤츠 같은 경우는 조금 읽어보고 싶은데

십수 년전 처음 접했던 그의 작품들이 너무 재미없어서 다시 손에 잡고 있지 않은 경우..

이런 식이다 보니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좀처럼 읽지 않던 일본 현대 미스테리물을 어느 계기로인가 읽게 되었고,

지금 이러저러하게 여러 작가들을 만나고 있다.

그 중에 눈에 띄였던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

어느덧 책장에 그녀의 책이 30권이 넘어가는 듯 하다.

유난히도 다작을 하는 작가가 많은 일본 미스테리 분야에 들어서다 보니

이런 식의 책읽기는 나로서는 지금은 피해야 할 작가가 둘 있다.

너무나 작품이 많아서 전작 독서를 하기에 무리일 듯 하여 시작하지 않고 있는..

온다 리쿠와 히가시노 게이고 이다.

그중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은 읽지 않았어도 영화나 드라마로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이 더러 있어

읽으면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매우 강한 상태라 주저주저하는 중에 책이 몇권 생겼고,

드디어 이 작품 <다잉 아이>로 그의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일단 이 작품은 만족스럽다.

시작점에서 끔찍한 교통 사고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데...

이 죽음의 사념이 왜 작품이 시작이 되었는지는 미스테리 소설답게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심령적인 느낌도 있지만 그렇다고 개연성이 없지도 않은..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쉽게쉽게 넘어가면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품이 좋고

어찌 보면 간단할 수도 있는 소재를 잡아 내어

타이트하게 독자를 잡아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상당한 작가로 보인다.

알 것 같으면서도 궁금하게 만들면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주인공 하나의 심리 및 행동으로

이야기를 이렇게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런 소재와 이야기라면 뭔가 여운을 좀더 남겨주는 결말을

어떻게든 만들었다면 좀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앞으로 게이고의 작품을 조금 더 읽어볼 만한 느낌을 주었다.

과연 그와 나의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나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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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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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보르헤스에 가려 묻혀 있다가 그의 사후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작가인 지라..

나 역시 보르헤스를 읽다가 그의 존재를 발견했었다.

국내에도 출간된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드디어 그의 단독 작품을 읽게 되었다.

 

남미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모험 소설에 대한 보르헤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책의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그 성격과 내용이 파악이 되지 않는다.

도망쳐서 한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려 하는 주인공 앞에 어느 날 나타난 한 무리의 남녀들.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혼자 만의 독백과 생각을 노트에 적어나가는 수기 형태의 이 책은

주인공의 일반적이지 않은 심리와 짝사랑, 두려움 등이 혼재된 문체와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일어나는 수수께끼같은 느낌들이 뒤영켜

말 그대로 환상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한다.

 

왜 책의 제목이 <모렐의 발명>이었는지는 책의 후반부에 드러나는데,

그 과정 까지의 전개를 생각한다면 작가가 계속 써 왔던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기도 하여 그 과정을 따라가게 되기도 하지만

정작 작품 전체로 보면 짧은 분량의 후반부에서

수수께끼가 풀린 이후에

관조적인 삶에 대한 태도와

살아간다는 것 자체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세계관에 대하여

이야기가 커지게 되고 보다 사변적인 소설로 성격이 변한다.

 

어찌 보면 장자의 나비 이야기도 연상시키면서

정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를 모호하게 만들면서도

그것을 현실의 과학과 연결되어 있는 '발명품'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창조해 버린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며,

주인공은 그 과학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삶과 역사에 인간이 개입할 수 없음을 한계 짓는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역시 남미 소설답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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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5
브렛 이스턴 엘리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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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맞으며 온 세계 들썩였다 좀 가라앉았을 금세기 초.

졸업 준비에 여념이 없어 찌들고 지쳐버린 스터디 친구들과

너나 할 것 없이 오늘은 좀 쉬자, 하는 마음을 먹었으나

극히 소심하게도 멀리 가지 못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저녁을 때우고

술은 그렇고 그냥 영화나 한번 보자, 해서 들어갔던 비디오 방.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골라서 (우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이 중요했기에)

틀었던 영화가 바로 <아메리칸 사이코>였다.

지금은 수퍼 스타가 되어 버렸지만 당시에는 코 참 높다, 싶은 잘생긴 사이코가 등장하는..

원래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을 먼저 읽기 전에는 잘 보지 않지만

당시에는 원작이 있는 것 조차 몰랐으니

같이 봤던 친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황당한 사이코 짓에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난다..

판금 조치까지 겪으며 우여 곡절 끝에 출간된 이 책을 드디어 읽었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의 느낌은 뒤로 하더라도

이 텍스트는 겉보기와 달리 매우 복잡하게 읽힌다.

언뜻 보면 엽기적인 묘사로 가득한 희안한 소설이지만

이 책에서 작가가 늘어놓은 각종 서술은 실제로는 매우 계산적으로 배치한 장치들이며

점점 미쳐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구구절절히 묘사한 것이 아닌,

꽤 까다로운 방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튀어 나오는 수백 가지의 명품 브랜드와 가격과 드레스 코드.

돈많고 학벌좋고 잘 나가는 뉴욕 속물들의 식당과 음식에 대한 과시적 집착.

그 가운데 공허한 연애질.

과시적 소비와 대칭점에 있는 하류층에 대한 멸시와 조소.

날뛰는 듯한 섹스 행각.

그야말로 사이코적이고 엽기스러운 살인과 폭력.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대중 음악에 대한 취향과 분석 등등..

 

스토리와 상관없이 튀어나오며 이리저리 배치된 이 다양한 텍스트들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미처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이다.

그것은 점점 정신분열증이 심해지는 주인공의 상태가 그러하기에

일반적인 정신 상태의 독자라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저러한 장치들의 공통점인

미국 사회 혹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며 동경하는 저러한 소비들이

주인공 베이트먼을 사이코로 만들어 버리는 피폐함의 근원임을 암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뚜렷한 결말이 없이 어물쩡 넘어가며

그 모든 엽기 행각들이 과연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망가진 주인공의 심리가 단순히 상상하고 있는 일인지 조차 불분명해 버린 후,

독자들에게 남는 것은 여러 가지 느낌일 것이다.

허탈하고 황당한 공허일 수도 있고 엽기 코드를 웃어 넘기는 유머와 여유일 수도 있으며,

지독한 묘사에 대한 짜증과 분노일 수도 있다.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넘어간다.

 

나 자신의 평가만 간략하게 적어 본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많고 많은 사이코 중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이코이며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운데,

그를 너무도 자세히 묘사한 이 책은,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조금더 끌리는 이율배반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묘한 경험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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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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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을 정극으로 본 적은 역시 없지만,

몇년 전에 이 극을 한국식으로 번안하여

(예를 들어 요정을 도깨비로, 귀족을 양반으로 등등) 잘 풀어냈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극이 <한 여름 밤의 꿈>을 번안한 극인지도 모르고,

다만 어디서 좀 들어본 스토리 같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으나

재미있는 줄거리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춤을 아주 즐기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즐거운 기억을 가진 채 원극본을 읽어본다.

 

극의 메인 줄거리는 역시 '사랑'을 토대로 하여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익숙한 포맷이다.

네 명의 청춘 남녀가 물고 물리는 사각 관계를 이루고 있을 때

자신들의 사랑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요정의 왕과 왕비가 나타나고

그들의 짖궂은 시종의 실수로 인하여

네 주인공들의 사랑은 엎지락 뒤치락하게 된다.

 

또한 테세우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극중극 형식의 또 다른 극 역시 눈여겨 읽을 만 하다.

동시대에 쓰여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의 플롯을 상당히 가져다 쓰고 있으므로

비교하여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도 요정같은 신적 존재에 의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왔다갔다 하며 그러한 감정으로 인생을 거는 것이 인간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수많은 인간의 감정 중에 그렇게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사랑의 힘이다.

결국 그 감정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고 컨트롤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신적 존재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자유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한날 한시에 맺어진 이 극 속의 세 커플은 그러한 숙제를 안고서

그 밤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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