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궤도 1 - 빨간 비행기 신의 궤도 1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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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 장르를 좋아하는 팬이나 써보고 싶은 작가는

언제나 소수의 팬덤으로서 존재하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틀을 깨기 위한 노력이 조금씩 행해져 왔으나

그마저도 소수의 주도 아래 일종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크게 부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언제나 소수 문화로서만 존재했던 SF가

근자에 들어서 그나마도 조금씩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의 소수 문화 혹은 서브 컬쳐 또한 조금의 다양성과 취향성을 확보해 가고 있으며,

그렇게 쌓여온 역사가 이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소위 고전을 번역하고 소개해오던 관행에서 벗어나

극히 최근작의 번역이 이루어지거나,

영미권의 작품이 아닌 작품들이 소개되는 현상 이외에

또 하나 특징적인 현상은

젊은 SF 작가들의 출현이다.

 

이들은 PC 통신 문화에서 교류해오던 세대들 속에서

팬덤의 일원으로서 자라왔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이론적 지식과 바탕을 습득한 뒤

보다 전문적인 SF를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던 이들로서

그들의 작품은 그리하여 일정 수준의 작품성과

팬덤으로부터의 지지를 발판삼은 흥행성 역시 지니고 있다. 물론 제한적이지만..

 

그러한 작가군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이중의 하나가 바로 배명훈이다.

단편들로 이러저러한 곳에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가,

듀나나 몇명 정도만 가능했던,

SF 장편 소설을 출간하고 이를 어느 정도 흥행시켜 당당히 주류 문학계에서도 주목하는 이로 선 뒤,

이번에는 두권의 두툼한 장편을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펴내기에 이르렀다.

 

셀링 파워를 어느 정도 인정받기도 한 것이거니와,

그의 필력이 6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를 소화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팬으로서 반갑지 않을 수 없어 당장 읽기 시작했다.

 

SF적 요소보다 여느 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어느 순간 15만년 뒤의

가상 행성으로 떠나 새로운 세계관 내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오롯하게 그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특징적인 인물들이 비행기, 그것도 강력한 제트 추진이 아닌 구식 비행기들이 가득찬 세계를 누비며

이루어내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상상할 수도 없는 미래에,

사는 미래인들이 전혀 다른 관념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공감이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야기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은 이 작가가 아직은 더 발전할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오히려 반가운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본다.

 

긴 여행을 마치게 되는 은경과 나물..

그들의 이야기를 신나는 삼엽기에 타고 들어보고 싶은 느낌이 들며

창공 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유영을 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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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걷기여행 시리즈
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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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라하에 있었던 5일 동안 정말 충실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책.

 

여행의 방법 중에 가장 느리지만, 가장 많은 것을 직접 체험하며 볼 수 있는 방법이 도보 여행일 것이다.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찬찬히 살피며 다닐 수 있지만,

효율적인 루트를 짜지 않으면 피곤하기만 하고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특정한 루트 없이 이리저리 발길 닿는대로 다니는 여행도 매력이 있지만,

어떤 것을 꼭 보고 싶다는 목적지가 있다라고 하면 그 곳으로 가는 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프라하 같이 도심에 볼거리들이 밀집해 있으면서도 구시가의 복잡한 골목골목이 얽혀 있고,

볼만한 문화재들이 너무 많아 자칫하면 놓치고 지나가기 십상인 도시는

따라서 쓸만한 가이드북과 지도는 필수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 가이드북과는 달리,

오직 여행의 루트만 그림과 지도로 제공하고,

오픈 시간이나 가격 등 일반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재와 볼거리에 대한 읽을 만한 설명과 3차원 입체로 보여지는 지도,

그리고 아주 효율적으로 잘 짜여진 루트는

내가 그 동안 만나왔던 수 많은 가이드 북 중에서 최고인 듯 싶다.

 

너무나 압도적인 프라하의 풍광 속에 처음에는 여러 가이드북을 참고하며

일정을 짰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다른 책들은 놔두도 이 책 하나를 친구 삼아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5일 동안의 짧지않은 일정이었으나

너무나 모자랐던 시간에,

만일 이 친구가 없었으면 어찌 그 많은 곳들과 시간을 꽉꽉 채울 수 있었을지..

처음에 이 책을 활용하는 법을 잘 모른 채 헤맸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유용하다.

 

비셰흐라드의 언덕 위에서 프라하 일정을 모두 마치며

이 친구를 성벽 위에 쉬게 해주었던 마지막 저녁.

고마운 친구와 함께 추억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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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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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헌책방 동지'를 책으로 만나게 되다.

 

내가 만난 이런 류이 책으로 의미있는 책은 이 책의 본문에도 언급되지만

조희봉의 <전작주의자의 꿈>이 있다.

무엇보다 출간을 위해 저자가 고민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계속 지켜보던 끝에

드디어 책이 나와 즐겁게 술 한잔하게 되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기에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되기에 뭐랄까.. 짠하고 반갑다.

 

헌책방을 통해 책을 만나는 애서가들이 주로 거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름의 취향과 기준을 가지고 책을 읽어 온다.

2. 우연한 기회에 헌책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책과 분야에 싼 가격 등에 대해 열광한다.

3. 새롭게 만난 세계에 대해 열광하고 미친듯이 책을 사들인다.

4.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어떤 기회에 은거 고수들을 만나면서 점점 관심 분야를 늘려간다.

5. 소위 레어템이라 불리는 책들을 '수집'하게 되고 배워오는 분야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게 되는 전문 분야가 생기게 된다.

6. 안정기에 접어들며 서가에 들이는 책들이 슬슬 컬렉션의 모습을 띄게 된다.. 등등..

 

나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저자도 그러한 듯 보인다.

나보다 연배는 조금 위이되, 이 세계 입문은 내가 조금 빠른 듯.

다만 교직에 몸담에 나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상황적 여유가 있는 저자에 비해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로 학생이었을 때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

내공의 증진이 정체 상태에 있음에, 아마도 비슷한 경력이 아닐까 싶다.

 

나의 20대를 오롯하게 잡아 먹었던

헌책방 순례와, 친구들과의 이야기들.

밤새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책과 삶을 이야기하며 지냈던 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 아니었을지..

이제는 그런 시간들을 가지는 기회가 매우 줄어들어 안타깝지만

드문드문 나오는 이런 책들을 만나는 즐겁게 그 책들과 대화한다.

혹 저자를 만나게 되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지.

아마도, 저자 역시 내가 순례를 통하여 만났던 사람들과 어느 정도는 교류가 있었을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분야를 정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책과 분야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때문에 사실 이런 책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책 한권을 읽음으로써, 갑자기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수십 권의 책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책에 미친 사람들의 숙명인 것을.

 

저자는 나를 모르겠으나,

또 한명의 친구가 생긴 느낌.

예전에는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었고, 지금도 쓸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보다 다른 작업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생각.

여러 가지로,

즐겁기도 하고 숙제도 남는 독서 경험이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개인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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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종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2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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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의 중국 전문가로, 그의 책 또한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로베르트 반 홀릭의

중세 중국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인 디 런지에 시리즈.

실제 중국 역사 기록에 있었던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미스테리를 구성하는 것도 제법 신기한 시도인데,

그것이 서양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더욱 이채롭다.

 

이 작품에는 크게 세 가지의 사건이 동시에 얽혀 돌아간다.

고을의 수령으로서 각종 민형사 사건과 마을 살림살이를 모두 처리해야 했던 당시의 판관에게는

이렇듯 한번에 여러 사건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던 일은 다반사라고 한다.

한 여염집 처녀의 강간 치사 사건은 의외로 단순했으나,

사찰의 의혹과

거대한 부를 이용한 한 인물의 오래된 악행을 자백받아 해결하는 사건은

그 접근이 매우 어려워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지 보는 재미가

의외로 매우 쏠쏠하다.

 

더군다나 저자가 그 사건들을 역사에서 끄집어 낸 이유가

유교 사회에서의 불교 사찰의 미묘한 위치라든가,

당시의 사회상과 법 체계 등에서 대해서 소설을 통해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은 단순한 재미이외에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용도로도 읽힐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디 공 이외의 그의 수하에 있는 다양한 인물군,

즉 마중이라든가 타오간 등의 활약상을 보는 것은

내가 어렸을 적 TV에서 즐겨보던 어사 박문수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한 명의 유능한 관리 또는 수령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할 수는 없는 법.

이를 보좌하는 인물들과의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업을 통해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통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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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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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릴러와 미스테리의 장르 구분을

누가 했는가? 와 어떻게 했는가? 로 해본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스릴러이다.

주인공인 버크가 어떻게 하여 연속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당시의 심리 상태는 어땠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끝이 나지 않았지만,

벌써 십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장기 불황의 여파로 인해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에서는 당연하게도

가장 편안하고 쉬운 방법인, 광범위한 정리 해고가 이루어지고 있고

주인공인 버크는 그 수백만 희생자 중의 한 명이다.

 

한 분야에서 수십년 동안 일한 전문가로서의 자존심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모두 무너지는,

50년이 넘게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감 속에서

버크는 심리적으로 망가지고 여느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망상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방법론이 살인이지만,

그의 엽기적인 행각에 일면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 거의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샐러리맨으로서 거대한 자본주의의 틀 가운데서

하나의 부속으로 느껴지는 박탈감 속에 하루를 보낼 때가 많은 만큼,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만큼,

그가 택한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처지와 상실감은 이해할 수 있다.

 

독자를 이러한 아이러니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저자의 노련한 필력 때문일 텐데,

그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 몸서리치면서 때로 아픔을 느끼며 버크의 행적을 따라가게 되고,

그를 응원해야 할지, 그가 응분의 대가를 치루도록 바래야 할지 헛갈리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리하여 결말에 이르렀을 때 작가가 제시한 결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는 조금 생각해 볼 여운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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