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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한때는 열심히 공부했었으나 지금은 다 잊은 언어. 독일어..
이제는 접할 일도 거의 없기에 이제 나에겐 거의 사어가 되었지만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독일어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Als das Kind Kind war 라는 구절일 것이다.
'아이가 아이였을때 When the kid was kid'라고 번역되는 이 구절은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계속 이끌어 가는 구절이다.
이 시와 같은 구절로 읖조리며 흘러가는 이 영화를 나는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벤더스의 팬이 되었으며 그 이후로 만났던 그의 영화들 또한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벤더스의 사진 에세이라는 이 책이 나왔을 때 그래서 별 고민없이 집어 들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사진이어도 좋았고, 별 의미없는 글이어도 좋았다.. 벤더스니까.
그렇지만 역시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내가 잊지 못할 독일어 한 단어를 각인시켰다.
Einmal 한번은 once.. 정도로 번역되려나..
몇장의 사진은 순간순간을 담고 있으되,
그 사진들이 담고 있는 순간은 그의 Einmal로 시작되는 짧은 말들로 인해 이야기가 되었고,
사진 사이사이의 시간 동안 일어났을 시간의 흐름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져 끊기지 않는 '흐름'으로서 지각 속에 자리 잡았다.
부러울 정도로 세계 이곳저곳을 다닌 벤더스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예술인들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이름모를 평범한 이의 모습을 담기도 하며,
인물이 아닌 풍경과 피사체의 모습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천연색으로 그 이미지들을 변주하며
능숙하게 멈춰져 있는 순간을 다룬다..
그리고 Einmal.. 이라 읖조리며 그 시간과 장소와 사건들을
아주 짤막한 몇 줄 문장으로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그 이야기들은 특별하지도 않지만 통속적이지도 않다.
조악한 내 설명력으로 말하기 어려운,
그가 그토록 나를 반하게 했던,
내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지는 감성적 표상들이 떠오른다.
더군다나 영상이 아닌 정지된 이미지는 더욱 많은 것을 상상하고 채워나가게끔 한다.
표지 사진인 (사랑해 마지않는)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마틴 스콜세지의 사진만 보더라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며 서로 다른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의 모습과
황량한 미국 서부의 사막 풍경이 어우러져 있는 이 사진을 보며
굳이 배우와 감독임을 알지 못하더라도 두 남녀의 이야기를 끝없이 궁금하게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이야기로 채우고 싶게 하지 않는가.
이미 몇 차례의 사진전까지 개최했다고 하는데..
그의 이런 작업이 계속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뜨문뜨문 만날 수 밖에 없는 그의 영화들로는 그가 들려줄 수 많은 이야기들과 이미지들을
다 향유할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