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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예프의 생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이희원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기록되지 않은 사실과 진실은 암흑에 덮여 망각의 묘지로 향하고, 기록된 사실만이 생기를 얻어......"
소설의 첫머리에 인용된 말이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한 매혹적인 말이다. 작가가 떠나온 고향에서 보낸 유년기, 청년기에 대한 회상의 기록이니 이 말만큼 책의 성격을 명확히 알려주는 말이 어디있을까 싶다. 우리는 여러 경험을 하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되어 나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경험들이 있다. 왜 어떤 경험은 그리도 강하게 남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아르세니예프의 아버지가 해주는 말처럼 "신만이 알 일"이리라...그래서 마음을 기억의집합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다.
처음 출생의 기억으로 부터 시작하여 청년기까지 시간의 순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지는 기억들 중, 유년기의 기록은 전원생활과 주변 환경에 대한 서정적 묘사가 계속 책 속으로 빠져들게끔 하였다. 내가 형태를 주고 싶었던 마음의 상태, 느낌, 주변에 대한 묘사를 어디서 이런 표현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멋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표현의 유려함은 책이 끝날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가 결국은 책이 진행이 될 수록 공감대를 줄여나갔는지 모르겠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갖는 애착은 그 고향에 사는 이들보다도 진하고 향수에 젖어 풀어내는 표현은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생소한 지역 특유의 정서를 자아낸다. 그래서 결국 읽는 이는 이방인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유려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책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겉돌게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네 개 줄 수 있는 이유는..
번역이 잘 되어있고, 친절한 각주가 달려있고, 내가 동감을 느낄 수 없을지언정 잘 쓰여진 문장들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