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스다 요시노리, 유아사 다케오, 이시 히로유키 등 3인이 토론형식으로 저술한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엄청난 확장은 유목민들에게 배운 전술방식을 사용한 것 뿐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이 사는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즈텍 잉카 등의 거대제국이 있었다. 특히 잉카제국은 수백킬로에 달하는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을 이용한 우편 및 교통이 발달해 있었으며, 농업도 유럽에 비해서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즈텍과 잉카제국에 온 유럽의 침략자들 조차도 거대한 도시구조물과 성곽축성술 앞에서 여기를 온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간사하고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서 아메리카를 점령했다.

이 당시만 해도 서유럽은 아시아나 이슬람권에 비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허약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며, 콜럼버스보다 80년 전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일곱번이나 원정을 떠났던 중국 명나라 영락제 때의 환관 정화(鄭和)의 경우가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콜럼버스의 네차례 원정에서 범선이 가장 많은 경우가 17척, 100-1200명 규모였던데 비해서 정화의 원정은 41-317척과 매 30000명이나 동원된 거에 비하면 어이가 없다 하물며, 이러한 침략의 계기로 기폭제가 된 르네상스도 이들의 독창품이 아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배운 그리스 로마에 대한 동경을 통해서 나온 결과도 아니며, 그것은 이슬람의 화려한 예술 및 문학의 발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그들이 거짓으로 동경했다던 그리스 로마신화도 이집트의 신화의 모방품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서로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