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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번뇌(百八煩惱)


백팔번뇌는 중생이 가지고 있는 온갖 번뇌를 108가지로 열거한 것을 말한다. 원래 108이란 많다는 뜻으로 쓰여졌던 숫자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심화와 함께 108번뇌의 산출법이 뚜렷하게 생겨나게 되었다. 그 세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두 가지 설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첫번째의 산출법은 눈·귀·코·혀·몸·뜻의 육근(六根)과 이 육근의 대상이 되는 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法)의 육진(六塵)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에 대한 산출법이다.

육근이 육진을 접촉할 때 각각 좋고(好)·나쁘고(惡)·좋지도 싫지도 않는(平等) 세 가지 인식작용을 하게되는데, 이것이 곧 3×6〓18의 십팔번뇌가 된다. 또 이 호(好)·오(惡)·평등(平等)에 의거하여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樂受),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苦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捨受)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고·낙·사수의 삼수(三受)를 육식(六識)에 곱하면 역시 십팔번뇌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36종의 번뇌에 전생·금생·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숫자를 얻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두번째의 산출법은 어떻게 수행을 해서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 하는 수행문제를 잘 풀이해 주고 있다.

이것은 사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 번뇌를 근거로 하는 산출법이다. 곧 견혹(見惑)인 88사(使), 번뇌와 수혹(修惑)인 10혹(惑), 번뇌에다 10전(纏)의 번뇌를 더하여 얻는 백팔번뇌설이다.

견혹이란 사고·지식·인식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 여기서의 견(見)은 지혜에 얻어진 지식적인 내용을 뜻하며, 혹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혜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 올바른 지혜를 가로막는 번뇌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곧 없어지는 번뇌이며 보기만 바로 보면 곧 해탈된다는 뜻을 가진 번뇌이다.

수혹은 정서적·의지적·충동적 번뇌로서 그 번뇌의 성질이나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곧 바뀌어지지 않는 번뇌이다. 돈이나 명예나 이성에 대한 탐욕이 바람직하지 못한 줄로 알고 있고, 시기·질투가 나쁜 줄 알면서도 그러한 심리작용이나 습관이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견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수혹은 정신의 이면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인간의 생을 이끌어 가는 번뇌로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견혹의 88가지와 수혹의 10가지 번뇌에 탐심과 진심과 치심의 근본번뇌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뇌를 더하여 백팔번뇌가 되는 것이다. 

백팔번뇌 (百八煩惱)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과거(過去), 현재(現在),미래(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煩惱)..
 
 백팔번뇌 百八煩惱
  [풀이]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과거(過去), 현재(現在),미래(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煩惱). 육관〔(六官 : 耳(소리), 目(색깔), 口(맛),  鼻(냄새), 心(뜻), 體(감각)〕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不好不惡)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가지의 번뇌가 된다. 거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어 18 ×2=36가지가 되고, 이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즉 전생(前 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3世에 36×3=108이 되어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한다.
  참고 ☞만(卍)은 불보살(불보살)의 가슴, 손, 발 등에 나타나는 길상(吉祥) 만덕의 상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표지, 태양, 움직이는 사방위, 흐르는 물, 둥글게 선회하는 빛의 상징이라 하는데, 태양의 신 비슈누(VISHNU) 신의 가슴팍에 자란 털 모양을 나타낸다는 길상의 증표라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유래는『화엄경(華嚴經)』에“여래의 가슴에는 훌륭한 분의 특징인 만(卍)자 모양이 있다. 이것을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부르는데, 온통 세계를  진리의 바다처럼 넘실거리게 한다.”에 나온다. 만(卍)자가 불교의 상징 마크가 된 것은 부처님의 백호(白毫: 눈썹 사이에 난 흰터럭)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우선(右旋)이라 하여 신성시하여 길상의 기호로 형상이 만(卍)이 된 것이다. 卍은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비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이 있다.
    (하켄크로이츠)마크는 유럽 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이었다. 나치가 당의 상징으로 도입한 것은 독일 민족이 아리안족의 적자(嫡子)라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다.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의 순수성이라든가, 살인이나 파괴와 같은 원시 본능을 칭송함으로써 집단  무의식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군중을 바로 눈 앞의 것만 내다보는 근시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과거 영광에의 열망’이라는 민족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성(性) 이미지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해석도 있다. 즉 정신과 의사 라이히에 따르면, 갈고리 모양의 (하켄크로이츠)마크는 남녀가 휘감긴 체위를 상징하고  있어서 독일인의 강렬한 섹스에 대한 욕망을 은연중 강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엎드려서 왼발을 치켜 올리고, 남자가 무릎을 굽혀 뒤에서 관계를  갖는 형상이 곧 (하켄크로이츠)마크이기 때문에 그것이 심리적으로 높은 호소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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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veda) 사상

베다 문화를 창조한 인도-아리안 족은 오늘날 이란이나 러시아, 그리고 유럽 인과 같은 조상을 가진 민족으로서, 모두 인구어족(印歐語族 :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문화의 주류는 베다를 원류로 하는 산스크리트 문화이며, 산스크리트(Sanskrit, 梵語)는 희랍 어, 라틴 어, 페르시아 어와 더불어 인구어의 가장 오랜 형태의 하나이다.

인구어의 모형(母型)을 사용하던 인도-아리안 족의 조상들은 B.C. 3000년경 카스피아 해(海)와 흑해(黑海)사이의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확실치 않은 원인(자연재해로 추정됨)으로 B.C. 2000년경부터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무리는 서방으로 향해 이들이 오늘날 유럽 인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고 일부는 동방으로 향하였고 서(西) 투르키스탄의 초원지대에서 수세기 거주했던 듯하다. 이들은 페르시아 어와 산스크리트 어의 모어(母語)인 인도-이란 어를 사용했던 페르시아 인과 인도-아리안 인의 조상이다. 그 후 이들 중 한 무리는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이란 땅에 들어가 아리안계 이란 인의 선조가 되었고, 다른 한 무리는 B.C. 1500년경 힌두쿠쉬 산맥을 넘어 인도 서북부의 펀잡(Punjab, 五河) 지방에 들어왔다. 이들이 바로 베다 문화의 주역인 인도-아리안 족이다.

많은 유물, 유적을 남긴 인더스 문명과 대조적으로 초기 인도-아리안 인의 유물이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인구어로 전해하는 가장 오래 된 종교 문헌인 『리그 베다』뿐이다.

이것에 의하면, 인도-아리안 족은 반야만적인 유목민족으로서 육식과 술을 먹었으며 춤과 노래를 즐겼던 현실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의 민족이었다. 손잡이 달린 도끼와 긴 활, 그리고 말이 끄는 수레를 전투에 사용했다. 도시와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를 건축했던 원주민보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침입할 당시 인더스 문명이 이미 쇠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있지만, 유목생활과 오랜 이동생활에서 단련된 체력, 말이 끄는 전차의 사용, 호전적인 무인 기질 등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원주민은 피부 빛이 검다는 의미의 ?다사스(dasas)?로 불렸으며, 후대에 ?다사?가 노비의 뜻으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선주민이 4성계급의 마지막인 수드라의 신분으로 전락했다고 추정된다.

모계 중심적이고 풍요를 위해 지모신(地母神)을 숭배하며 농업에 경제적 기반을 두었던 원주민과 대조적으로 인도-아리안 족은 가부장적, 부계 중심적 대가족제도를 유지했으며, 딸보다 아들을 선호했다. 이런 습속은 오늘날 힌두 사회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도시문명을 발전시켰던 원주민과 달리 인도-아리안 족은 촌락을 기반으로 하면서 목축을 주업으로 한 소박한 생활을 영위했으며, 벽돌을 굽거나 진흙을 구워 만든 조상이나 목욕탕, 하수시설도 없었고, 인장이나 도기(陶器)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힌두쿠쉬 산맥을 넘을 때 그들 특유의 몇 가지 문화를 인도로 들여왔다. 그것은 새로운 신들과 그들에게 바치는 찬가(讚歌), 그 찬가를 외우고 낭송하며, 신들에 대한 제사를 담당하는 전문가(이들이 후에 바라문 계급이 됨), 그리고 ?소마(soma)?라고 부르는 정체 불명의 환각제(이것을 복용함으로써 르쉬[仙人]는 몰아지경에서 신들과 소통하고 찬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 사제촵무사촵서민으로 구성된 3계급의 사회구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스크리트라는 정교하고 과학적인 언어 등이다.

초기 인도-아리안 족의 종교는 하늘, 태양, 바람, 폭풍, 비, 불, 번개 등 자연현상이 갖는 힘을 상징하는 자연신들(天, deva)에게 제화(祭火, 아그니)를 피우고 우유, 버터, 소마 등을 바치면서 찬가(리트)를 부르고, 신들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드리거나 신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은혜를 빌었다. 그 기도의 내용 역시 무병장수, 가축의 번식, 자손의 번영, 전쟁에서의 승리 등 매우 현실적이고 소박한 것이었다. 신들에 대한 이러한 찬가들은 B.C. 1200~1000년 사이에 점차로 『리그 베다』의 형태로 편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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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뿐만 아니라 신이나 사제(司祭)로 보이는 남성의 모습도 보인다. 머리에 뿔이 달린 장식을 하고, 낮은 평상 위에 책상다리로 앉아 있으며, 왼편엔 코끼리와 호랑이가, 오른편엔 외뿔소와 물소가 그리고 정면 밑에는 역시 뿔 달린 동물들이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동물의 주인이거나 신적인 존재로 추정된다. 동물과 더불어 나무도 성스러운 것으로서 예배 대상이 된 듯하다. 한 인장에선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높다란 머리장식을 한 남자가 나무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데 뒤에서 거대한 염소가 굽어보고 있는 장면이 있다. 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인물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예배자를 두 마리의 코브라가 뒤에서 지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된 인장도 있다.

뿔 달린 동물의 수컷이나, 남근이 발기된 상태에서 뿔 달린 머리장식을 한 남성상은 모두 자연의 생산력 혹은 생명력을 나타낸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증거는 인더스 부지에서 발굴된 많은 양의 돌로 만든 링가(linga : 男根)상이다.

동물의 수컷이나 뿔, 링가 등이 상징하는 남성적 힘과 성력(性力)에 대한 숭배가 주로 상위 계층의 종교였다면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여성신, 혹은 지모신(地母神)에 대한 신앙은 대중과 가정적 차원에서 행해졌던 것 같다.

한때 영화를 누렸던 인더스 문명도 BC 1600년경엔 지진이나 강물의 범람 등 확인되지 않는 어떤 원인으로 몰락의 길에 들어섰고, B.C. 1500년경 아리안 족이 침입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인더스 문명의 생명력이 다해 가고 있었다. 철제무기와 말이 끄는 전차를 사용했던 유목민인 아리안 족은 큰 어려움 없이 원주민을 정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더스의 도시가 몰락했다고 문화까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더스 문명은 민중 속에 살아남아 갠지스 강 유역이나 남인도로 확산되었다. 비록 정복당했지만 인더스 문화는 아리안 족 문화에 영향을 주어 베다 문화의 변화를 초래했으며, 아리안 문화와 혼융하여 더 커다란 종합을 이루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인장의 조각은 베다나 불교문화의 핵심인 요가나 선정의 모습으로 되살아났으며, 성스러운 뱀의 수호를 받으면서 보리수 밑에 앉아 명상에 잠긴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에서도 인더스 문명의 영향이 뚜렷하게 전해지고 있다.

인더스의 종교는 베다 문화가 대중화된 힌두교에서 시바(siva)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위대한 요기(yogi : 요가수행자)이자 동물의 주(主)인 시바는 수소 난디를 타고 다니며, 우주적 창조력의 상징인 링가로 표상된다. 또 정화(淨化)의 의식인 목욕하는 관행도 아리안 족의 문화가 아니며 인더스 문명의 영향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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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문명의 비밀의 일부를 드러내주는 다른 열쇠는 많은 양의 수공품들이다. 그 가운데는 몇 개의 돌조각과 청동조각이 발견되며,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진흙 조형(테라코타), 그리고 돌을 깎아 만든 인장(印章)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장기판과 십진법을 사용한 정확한 측량도구, 그리고 어린이의 장난감도 보인다.
테라코타 조형의 주요 소재는 동물의 수컷, 특히 황소이며, 인물조형의 경우는 반대로 다산(多産)과 관련된 여성의 모습이다. 진흙 조형보다 더 중요한 자료는 인더스의 신앙과 종교의식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형상을 새긴 돌로 만들어진 인장들이다. 인장에는 인더스의 문자가 새겨져 있으나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인더스 인장이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어 인더스 인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무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장에 새겨진 그림의 소재도 테라코타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수컷인데, 황소, 외뿔 가진 무소, 호랑이, 코끼리, 영양, 악어 그리고 신화적인 상상의 동물도 발견된다. 한 인장에선 물소 앞에 일렬로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동물들이 단순히 공예를 위한 소재가 아니라 종교적 예배와 의식의 대상임을 말해 준다. 동물들이 모두 수컷이고 또 뿔 달린 동물을 즐겨 묘사한 것으로 보아 이들이 자연의 힘, 내지는 남성적 생식력, 생명의 힘을 상징한다고 보인다. 이러한 동물들에 대한 예배의식을 통해 예배자도 그러한 힘을 받기를 기원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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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문명
1921년 죤 마살 경(卿)이 인더스 문명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이래 하랍파와 모헨조다로를 비롯해서 300여 군데서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남으로 봄베이, 북으로 히말라야, 동으로 델리에 이르는 인더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화나 고대 이집트 문화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고대문명 가운데서 가장 발달한 것으로 평가한다.
B.C. 3000년에서 B.C. 1500년 사이에 존속했던 인더스 문명은 아리안 족의 베다 문화와 달리 문헌의 형태로 전해지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발굴된 유물과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으로 그 실상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하랍파와 모헨조다로의 유적은 인더스 인들이 당시의 고대문명 가운데서 가장 발달한 도시문명을 건설했음을 보여준다. 두 도시는 모두 서편 둔덕에 세워진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와 저지대의 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두 도시가 모두 잘 통제된 계획도시라는 점이다. 시가지는 주요 도로가 바둑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구운 벽돌을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도시계획이나 거대한 곡물창고와 성채로 보아 중앙집권적 통치기구와 능률적인 행정조직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잘 지어진 거대한 공중 목욕소와 하수처리 시설, 그리고 위생시설이다. 집집마다 목욕탕과 하수시설을 갖춘 것으로 보아 이들이 목욕과 청결을 중요시했으며, 모종의 종교적 의식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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