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정문 '인화문' 찾았다.

덕수궁의 옛 정문 인화문. 현재 정동 도로변 옛 대법원청사 부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00년 구한말 정부의 양지아문(측량, 지도제작을 맡은 관청)에서 발행한 한성부 지도 가운데 덕수궁 부분.

덕수궁. 구한말 열강이 집어삼키려 각축했던 곳, 승자인 일제의 의한 을사보호조약 체결부터 병탄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몰락을 한 가운데서 경험한 비극의 궁전이다. 고종은 병탄후 그곳에 유폐됐다가 결국 거기서 숨졌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잊고 싶어서일까? 비극의 덕수궁은 지금도 사실상 버려져 있다. 정문이었던 인화문은 자취도 없고, 본전인 중화전은 변형된 형태로 서있다. <한겨레>는 원로 서지학자 이종학씨가 오랜 노력끝에 발굴해 공개한 구한말 덕수궁 희귀사진과 그림·문헌자료들을 세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덕수궁의 옛 정문 인화문과 임금이 집무하는 2층짜리 장대한 건물로 지어졌다가 1904년 큰 불로 타버린 궁궐정전 중화전의 옛 모습 정면을 담은 희귀사진자료가 90여 년만에 4일 다시 빛을 보게됐다. 이들 사진은 국망과 국권상실의 아픔을 증언하는 역사자료인 동시에 훼손·변형된 덕수궁의 옛 건물의 배치와 양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희귀사료들이어서 복원에 좋은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화문 옛 사진은 러·일전쟁 당시 발행된 <만한사진첩>에 실려있던 것으로 찍은 때는 1905년께로 추정된다. 사진에 보이는 인화문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위풍당당한 3문 형식과 단청을 갖췄다. 인화문은 덕수궁의 최초 정문으로 현재 정동쪽 옛 대법원 청사 앞길자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건립연대는 밝혀져 있지않다. 일제시대 오다 세요의 <덕수궁사> 등 기록에 따르면 인화문은 1906년에 정문의 자리를 동문인 대안문(현 대한문)에 넘겨주고 건극문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902년 덕수궁을 대표하는 장대한 2층지붕 건물로 지어졌다 불과 2년만에 불타버린 옛 중화전은 중충지붕에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에 손색없는 기품과 격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옛 중화전의 모습을 담은 자료는 건립 당시의 공사기록인 의궤와 먼거리에 찍은 흐릿한 전경사진 밖에 없다.

이종학씨는 인화문과 중화전의 옛 사진은 덕수궁 원궁 복원의 가장 유력한 근거자료인 만큼 건물들을 시급히 원상태로 복원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쪽은 정식복원에는 200백 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 섣불리 복원여부를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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