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에서 연대기와 테마가 충돌하는 그 밖의 많은 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항상 그렇듯이 연대기를 우선에 놓을까?나는 그만 포기하고 방향을 반대로 돌렸다. 특히 어느 일요일 아침, 미술관이 아직 ‘컴컴한‘ 시간에 호빙과 함께 그 어슴푸레한 공간들을 거닐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스물 몇 점의 초상화가 걸린 작은 전시실에 오래 머물렀다. 한 인물에 대한 한 편의 글은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테마적 성격을 띤 각기 다른 몇 점의 초상화처럼 제시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인생 연대기는 놔두면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 P69

구조를 세우는 일이 이렇게 간단한 경우는 드물다. 연대기와 테마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거의 항상 존재하며 전통적으로는 연대기가 승리를 거둔다. 이야기는 시간을 따라 한 시점에서 다음 시점으로 흘러가고 싶어하는 반면, 한 사람의 삶에서 이따금 불거지는 토픽들은 자기들을 한 군데로 모아달라고 아우성친다.(중략) <타임>과 <뉴요커>에서 10년을 보내고 나니 연대기의 압도적 승리에 매번 굴복하는 것이 답답하고 넌더리가 났다. 나는 테마가 지배하는 구조를 열망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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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습을 한 번 해보길 바란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충분히 알 것 같아서 대신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꾹 참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직접 마무리지으려 하지 않는다. 대화가 늘어질 것 같다고? 대화가 조금 지루해질 것 같다고? 처음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이 어떤 말을 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상대방이 말을 마무리하게 둔다면 생각지도 못한 배움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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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계속 진행 중인 사랑의 노동이었다. 자연의 지속가능성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고,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인간성(humanity) 또한 끌어내는 인간의 작업을 통해 끄집어내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소농님 풍경은 인간과 자연 간의 지속가능한 관계를 재형성하는 시험장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 P323

일본의 산림 경영인과 작업하면서 숲을 교란하는 것의 역할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숲을 회생하기 위해 실행되는, 고의로 행해지는 교란에 나는 놀랐다. 가토 씨가 숲을 정원 가꾸듯이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숲으로 만들고자 했다.(중략) 한 일본인 과학자는 송이버섯이 "의도치 않은 경작"의 결과라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기술만으로 송이버섯을 경작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인간의 교란이 있어야 송이버섯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나무, 송이버섯, 인간은 모두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서로를 경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271

근대 산림관리는 소나무를 잠재적으로 끊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자원으로서, 지속가능한 목재 수확량을 산출해내는 근원으로서 관리한다. 이것의 목표는 소나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불확정적인 마주침으로부터 차단해 역사를 만드는 소나무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 산림관리 때문에 나무가 역사의 행위자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 P295

가장 극단적인 일부 환경에서는 소나무가 아무 곰팡이가 아닌 송이버섯 곰팡이만을 파트너로 원한다. 송이버섯은 바위와 모래를 분해하는 강한 산을 분비하고 소나무와 곰팡이의 상호 성장을 돕는 영양분을 발산한다.(중략) 송이버섯과 소나무가 동맹을 맺으면서 함께 돌을 식량으로 바꾸는 까닭에, 그들은 유기질 토양이 희박한 장소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한다. - P301

12세기에는 전쟁으로 인해 귀족들의 통합에 균열이 생겼고, 이 덕택에 마을 숲에 대한 소농민의 권리 요청이 받아들여져 제도화될 수 있었다. 이리아이 권리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지에 대한 권리로서, 등록된 가구원들이 땔나무를 모으고, 숲을 만들고, 마을의 토지에서 생산된 모든 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허가되었다. 다른 많은 사회에서 실행된 공유림에 관한 권리와는 다르게, 일본의 아리아이 권리는 성문화되었고 법정에서 강제할 수 있었다.(중략)엘리트 계층이 이리아이 권리를 축소하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공동 경작지는 사유화되거나 국가에 의해 압류되었다. 놀랍게도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리아이 숲 권리의 일부는 현재까지, 즉 20세기 후반까지 농촌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마을 숲은 방치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상태로 지금까지 유지되어오고 있다. - P327

그들(연구자들)이 발견한 것들 중 가장 놀라운 것 하나는 많은 유기체가 다른 생물종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발달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생물인 하와이밥테일오징어는 그 과정을 생각하는 데 있어 모델이 되었다. ‘밥테일오징어‘는 빛이 나는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달빛과 비슷한 빛을 내어서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게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아직 어린 개체는 발광성 박테리아라는 특정 박테리아와 접촉하지 않고서는 그 기관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이 오징어는 해당 박테리아를 몸에 지니고 태어나지 않으며, 바닷물에서 박테리아와 만나야만 한다. - P259

오픈티켓의 동남아시아 난민과 비교해보자. 우주론적 정치학과 연결시켜 생각해봤을 때, 그들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로 ‘개종‘되었다. 그들은 태국의 난민 캠프에서 개종 의례를 행했는데, 미국 입국 허가를 결정하는 인터뷰가 그 의례였다. 그들은 이 인터뷰에서 ‘자유‘를 지지하고 자신의 반공주의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국인으로 간주되어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었다. 미국에 들어오는 필수 조건은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난민들은 영어를 잘 모르더라도 자유라는 단어 하나는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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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보헤미아는 그리니치빌리지의 배로 스트리트에 있는 작은 바였다. 지미 가로팔로라는 이웃이 이곳을 소유하기 전까지 그곳은 스트립 바였다.(중략)모리스 레비와 마찬가지로 가로팔로 역시 이탈리아계 주먹이었다. 조직 두목이지만 동시에 후원자였다. 그는 수입이 적더라도 연주자에게는 꼭 출연료를 지불했으며 때때로 연주 중에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바를 넘기도 했다.
1955년 가을이 시작되었을 때 밍거스의 재즈 워크숍이 이곳 무대에 섰고 이후 두 달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산발적으로 멤버를 교체하며 출연했다. 칸디도가 참여했으며 랜디 웨스턴, 그 다음은 허비 니컬스가 인터미션에 피아노를 연주했다.맥스 로치, 마일스 데이비스, 텔로니어스 멍크, 아트 블레이키, 소니 롤린스,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가 연주를 듣기 위해 그곳에 왔다. 케루악과 화가 래리 리버스는 바에 앉아 있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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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학종파는 (중략) 다시 수능의 영향력과 변별력을 더 약화시키고, 나아가 내신성적의 변별력마저 약화해서 객관적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지렛대가 고교학점제를 구현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이 고교학점제를 중심으로 개정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라 2028학년도 대입 개정안이 새로 나와야 할 텐데, 학종파는 이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 P155

2022년 12월, 이주호 전 장관이 10년 만에 다시 교육부 수장으로 복귀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대입 정책이 ‘정시 확대‘가 아니라 정반대인 ‘학종 확대‘로 전면적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추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주도한 대입 관련 정책은 ‘영역별 만점자 1%를 통한 쉬운 수능‘, ‘입학사정관제 확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통한 고교 서열화‘, ‘내신 절대평가 추진‘, 그리고 ‘대입 대학 자율화‘로 요약된다. - P159

‘2028 수능 개편안‘을 통해 교육부 스스로 고교학점제를 크게 의미 없는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수능 국어 과목으로 제시된 ‘화법과 언어‘ ‘독서와 작문‘ ‘문학‘ 그리고 수학의 ‘대수‘ ‘미적분1‘ ‘확률과 통계‘는 모두 ‘일반 선택과목‘이다. (중략) 개편안은 이 과목들을 수능 응시과목에 포함시켜서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지난 수년간 교육부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강조하면서 추진해온 고교학점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P163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의해 수능은 사실상 ‘국어와 수학 수능시험 체제‘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영어는 이미 2018학년도에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에 수능성적의 변별 도구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고1 수준의 내용으로만 시험을 보기 때문에 역시 수능성적의 변별 도구로서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개편안에 따르면, 2028학년도 이후의 수능은 사실상 ‘구어와 수학 수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 P168

입학사정관 제도에서 시작된 학생부 종합전형은 교육부 내부의 오랜 신념이 반영된 제도여서 교육계 내부의 관심과 기대가 컸다. 입시에 미치는 교사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켰고, 학교교육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입학의 과정에 고려한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되어 학부모, 학생 및 일반 시민들의 지지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교사추천서 작성 등 학생부 기록의 내실화 등 관련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고등학교,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외부 자원 이용을 극대화하여 전형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져오게 한 학부모, 학생이 제출한 자료의 신뢰성을 적극적으로 검증할 자원과 의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대학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원래 목적과 취지를 실현할 역량과 환경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 P260

이 책은 공정성과 적합성이라는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대학입학제도의 어제와 오늘을 개관한다. 대학입학 문제와 대학입학 정책의 사회사를 살펴보고, 근래 논의의 핵심이 되고 있는 수능시험과 입학사정관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쟁점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P9

노무현 정부가 수능에 상대평가를 도입한 것은 특별한 정책적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변화로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사회 과학 탐구에서 선택하는 과목이 학생마다 달라졌다.(중략) 2005학년도에 상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수능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면서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의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 P110

수능 등급제로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며, 대입 전형의 중심을 학교 안으로 가져오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대입정책(*2008학년도)은 수능에 대한 부담도 줄이지 못하고, 내신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켰을 뿐 아니라 논술 사교육 시장까지 극대화한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역대 최악의 대입 개선안이라는 오명을 안게 된 노무현 정부의 수능 등급제는 시행 1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 P117

조o씨의 고려대 입학 부정 논란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불공정성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o씨가 합격한 전형은 입학사정관제를 바탕으로 하는 특기자 전형이었지만, ‘무시험 전형, 서류와 면접 중심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학생부 종합전형과 동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조o씨의 입시 비리 문제가 학생부 종합전형의 부정과 불공정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신에 불을 붙인 것이다. - P148

문재인 정부 5년의 대입정책은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여론에 대응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대응 방법은 수능 위주의 정시 선발 비율을 조금씩 더 늘리고, 학생부 종합전형의 주요 항목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도만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무시험 전형을 맹목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그것을 위해 수시모집의 비율을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이고, 정시 수능 선발의 비중을 대폭 축소해온 경향에 최초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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