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저작의 배후에는-하이데거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치명적인 공리가 숨어 있다. 고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거거는 거대 진리들의 사체가 묻힌 광대한 묘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6

푸코는 이 묘지의 문제를 공격하고 나섰고, 이를 예기치 못한 개인적인 각도에서 연구했다. 그것은 바로 ‘담론‘에 대한 심층적인 발굴이었고, 역사적 구성물들 간의 궁극적 차이에 대한 규명이었으며, 이를 통한 최신 일반론들의 종식이었다. - P26

지나기는 참에 말해 두자면 각 역사적 구성물, 각 학문 분야, 각 실천의 궁극적 차이인 이러한 담론들은 한 시대 전체에 공통된 사유 스타일이나 시대정신(Zeitgeist)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총체화하는 역사"와 "한 세기의 정신"을 조롱했던 푸코는 슈펭글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 P33

이는 이해관계가 "어떻나 보편적 형식도 결여"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까 계급 이해관계라는 개념은 가능하지만, "이 보편적 형식의 작동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바로 거기에 특이성의 원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는 역사를 단절들의 연속으로 만든다. - P34

철학자 푸코는 역사학자들의 방법을 실천하도록 인도할 뿐이다. 이는 각각의 역사적 질문을 그 자체로 논의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문제나 철학적 질문의 한 가지 사례로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푸코의 저작은 역사학자들의 방법보다는 철학 그 자체를 겨냥한 비판이 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질문 속에는 철학의 중대한 문제가 용해되어 있는데, "모든 개념은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 P35

사실 푸코는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주변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역사 쓰기 방식은 심성사(histoire des mentalites)라는 분야를 표방하던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는 아날 학파보다는 필리프 아리에스 쪽에 더 가까웠다. 미셸 페로, 아를레트 파르주, 조르주 뒤비는 푸코의 책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럼에도 역사학자들의 동업 조합에 대한 푸코의 원한은 온전히 남아있을 것이었다. - P40

푸코식 역사의 그림 안에는 무언의 형이상학적 감수성이 있다. 아무 때 아무것이나 생각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어떤 시기의 담론의 경계 안에서만 생각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제한된다. 우리는 그 한계를 보지 않으며,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 P44

이 어항 또는 담론을 한마디로 "우리가 역사적 아프리오리(a priori historique)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 아프리오리는 인간 사유를 압도하며 지배하는 부동의 층위가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우리가 결국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적이다. 동시대인은 언제나 자기들의 고유한 한계가 어디인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한계를 파악할 수 없다.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