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스탠드를 보고 있다. 큰 두깨에다 6권이나 하는 장대한 내용 때문에 일단 1권을 보고 전권 구매를 결정하려고 1권만 모셔두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상하권 중 하권이 없으면 (불안한 마음에?) 상권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 집 근처 아름다운가게에서 새것이나 다름 없는 전권을 발견하곤 냉큼 2~6권을 집어 들었다. 권당 3000원.

그리곤 든든한 기분으로 5권까지 완료. 

나는 그 원인이 좀비든, 핵전쟁이든 혹은 스탠드와 같이 원인 모를 질병에 의해서든 인류의 종말을 다루는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유는 가끔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남이 고생하는걸 보면 즐거운 심리…라면 약간 곤란하지만 그럴지도 모르고. '생존주의' 에 대한 약간의 환상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상이지 현실에선 자급자족과 관련된 운동 같은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DIY나 좀 더 넓게는 지역화폐 같은 운동에도 –  디테일한 것은 잘 모르지만 –  고개를 갸우뚱 하는 편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단 좋은 편이다)

스탠드식 포스트 어포칼립스의 한 가지 특징은 (적어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점에는) 식량이 남아 돈다는 점. 인류의 99%가 단기간에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물자가 남아 돈다. 그리고 좀비 같은건 있지도 않고 내성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 남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식량을 구하러 쉽게 나다닐 수 있다. 그래서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같은 잔혹한 카니발리즘이 없어서 조금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데, 실은 모를 일이다. 로드는 종말 이후에 아이가 태어난 설정이니 적어도 십 수년이 흘렀고 대부분의 저장식품들도 동이 나거나 유통기한이 지났을 시기이니 스탠드 이후에 로드의 세계가 펼쳐진다해도 완전 거짓은 아닐 수 있다.

(여기서부터, 스토리에 대한 특별한 스포일러는 없지만, 인물에 대한 설명 자체가 약간은 스포일러가 될 수는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종말이전의 문명화 된 세계에서의 루저(아주 뚱뚱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가족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늘 혼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초코바를 끊임 없이 먹지만 혼자 책을 많이 봐서 상당한 지식이 있는) 헤럴드 에머리 로더의 포스트 어포칼립스 삶에 대한 스티븐 킹의 전개인데, 상당수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반 양아치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휴머니즘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스탠드에선 래리 언더우드, 다크타워의 에디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잘 묘사하는데 비해 헤럴드에 대해선 그러한 반전을 보여주지 않고 더 어두운 길로 가게 만든다. 

갱생하는 양아치나, 냉혹한 세상에서도 사물을 직시하는 성격의 장애인(닉과 톰)과 달리 영민하지만 뚱뚱한 루저의 '컴플렉스' 에 대해서 스티븐 킹은 그것이 위급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반전을 가지고 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가 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티븐 킹은 어디까지나 스탠드를 SF소설로 쓸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포스트 어포칼립스에서의 사회 제도와 구조가 어떻게 될 것인가. 재문명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거나 실패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학자 교수인 글렌의 입을 빌어 전망을 하고 각종 위원회들의 활동을 그리지만 언제나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잊지 않는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마더 에비게일과 다크맨의 선악구도는 유치해보이는 위험성을 상당히 감내한, 상당히 신선하고 대담한 시도로 보이지만 다크맨의 존재를 완전히 제외한 '인류'에 대한 SF 소설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감출수는 없다.

이제 6권을 시작하는데, 과연 종교와 마법의 장이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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