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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
존 롤즈 지음, 황경식 옮김 / 이학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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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즈는『정의론』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 의 가장 핵심적인 관념(ideas) 및 목적은 입헌 민주주의를 위한 철학적 입장의 관념(ideas) 및 목적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16쪽) 롤즈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고전적 공리주의-에 대하여 합당하면서도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의관을 고안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공리주의는 앵글로 색슨의 정치사상 전통을 지배해 왔는데, 이것은 입헌민주주의의 제반제도의 기초로서 취약하기 때문이다. 롤즈에 의하면, 입헌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로서의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좋음’과 ‘좋음’의 문제가 상충할 때, 즉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무엇이 우선적인지에 대하여 답변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이고 평등한 자유와 권리의 우선성을 확보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직관주의(intuitionism)는 직관능력에만 우선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기본적 자유와 권리의 우선성의 문제를 해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리주의와 직관주의는 입헌 민주주의의 관념으로서 취약하다고 본 것이다.

 롤즈에 의하면, 어떤 유형의 공리주의는 현대의 도덕철학에서 가장 우세한 체계적 이론이다. 왜냐하면 공리주의는 흄, 아담스미스, 벤담, 밀등의 많은 석학들의 지지를 받아왔는데, 그들이 제시한 이론은 광범위한 관심사들을 다루면서도 이를 포괄적인 체계로 종합하기 위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비판은 공리의 원칙이 가진 애매성을 비판하면서, 공리주의가 함축하는 의미와 도덕감 사이의 불일치에만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비판자들은 공리주의를 대체할 만한 유력하고 체계적인 도덕관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롤즈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공리주의와 직관주의가 절충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렇다면 입헌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예상한다. 이로부터 롤즈의 목적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이에 대응할 만하거나 혹은 이 보다 더 나은 정의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롤즈는 이해관계가 상충 할 때, 인간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의 우선성 아래에서 이해관계를 합당하게 조정해줄 정의의 원칙을 마련하려고 한다.『정의론』에서는 입헌 민주주의의 초석인‘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로서의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의 우선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이해관계 상충의 합리적 조정의 원칙을 제시한다. 롤즈가『정의론』의 1부 「원리론」에서 제시하는 ‘정의의 두 원칙(two principles of justice)’은 다음과 같다.(105쪽)

첫째,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 시키도록, 즉

 (a)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되고,

 (b)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정의론』의 핵심은 이 지점부터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의 우선성이 당위적 차원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 문제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롤즈가 입헌민주주의를 위한 초석으로서 제시하는 정의의 두 원칙이 공리주의와 직관주의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어떻게 보여주는가이다. 즉 자신의 정의의 두 원칙에 어떻게 설득력을 부여하는가이다.

 롤즈는 어떤 하나의 상황을 가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조건을 상정하고 원초적 입장안에 있는 사람들인‘당사자들(parties)’들에게는 몇 가지 정의관의 목록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당사자들은 제시된 정의관의 목록 중에서 롤즈가 제시하는‘정의의 두 원칙’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롤즈는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된 상황은 사회계약론의‘자연 상태(state of nature)'와 유사하다. 그러나 롤즈는 자신의‘원초적 입장’은 전통적인 계약론적 설명방식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특정의 통치형태를 위한 것이 아니며‘어떤 도덕원칙을 받아들이는’가상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롤즈는 원초적 입장에서는 세밀하고도 상식적인 조건들을 제시하고 당사자들은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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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눈물
죠르주 바따이유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과의식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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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에로스의 눈물>과<에로티즘> 리뷰를 같이 올렸다가, 두권의 책이니 페이퍼로쓰는 것이 좋다는 조언으로 페이퍼로 바꾸려고 했는데, 삭제하고 복사해놓지 않아서, 그만.....없어져 버렸다. 이런...아쉬워서 다시쓴다. (이거 리뷰쓰거나 페이퍼 쓰는 것이 보통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네...쩝 ~~)

 이책은 바타이유가 독자들을 염두해두고 쓴책이라고 한다. 1962년에 출판되었다. 벽화, 조각, 그림등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 바타이유는 그림의 배치까지도 꼼꼼히 신경썼다고 한다. 그러나 나 같이 감수성 부족하고 그림에 무지한 나로서는 그림을 보고 무엇을 느끼기에 부족했는데, 바타이유에 대한 책을 좀 읽고 나서 그림을 다시 보니 다소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책장을 넘기기에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의 풀이로부터 시작하여 주욱~에로티즘의 인식과 표현의 역사를,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형상들과 벽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디오니소스축제->중세의 섹스의 부정->르네상스의 변화->사드와 고야-현대회화(들라크루아, 마네, 모가, 드가), 그리고 부두교의 공희와 중국의 처형 으로 이 책은 결론을 대신하며 마무리한다. 다소 논리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지만, 아마도 바타이유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에로티즘의 내적 체험을 전달하기 보다 묘사하는 것, 그것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은 언어와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그 부분은 그림이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대부분이 흑백으로 인쇄되어서 <천년의 그림여행>같은 책을 참조해서 보면 재미있을 듯 싶다.

 내용적으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을 참조해서 읽으면 될 듯하다. <에로티즘>은 동물성과 인간의 구별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에로티즘의 인식에 와서야 인간은 동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고 바타이유는 설명한다. <에로티즘>은 각 소절의 제목이 구체적이어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에로티즘의 인식, 그것은 폭력의 욕구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죽음의 공포와 죽음 저편에 대한 욕구로부터, 존재의 비연속성에 대한 연속성의 갈망으로부터, 그것을 넘어서는 합일지점의 오르가즘이 아닐까? 존재의 비연속이 연속을 느끼게 되는 순간. 그것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지점을 무너뜨리고 넘어선 지점. 비연속의 불완전성으로부터 연속을 느끼는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육체적 에로티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세가지로 설명한다. 육체적 에로티즘, 심정의 에로티즘, 신성의 에로티즘이다.

<에로스의 눈물>은 독자들을 배려한 설명과 그림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에로티즘>은 각 절별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각각 참조하여 보면은 좋을 듯하다. 물론 에로티즘 비생산적 소비의 대표적 사례이니 소비에 관한 바타이유의 저서 <저주의 몫>을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해설서로는 유기환 선생님이 쓴 <조르주 바타이유>가 좋은 듯 싶다. 바타이유의 생애와 일반경제학, 에로티즘을 중심주제로 하셔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해놓은 것 같다.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한 리뷰를 같이 덧붙인다.

이 책은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하여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의 테마를 중심으로 ,앞에서는 바타이유의 생애를 다루면서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 내용은 구체적이고도 쉽게 설명해놓은 듯 하다. 난 <에로스의 눈물>과 <에로티즘>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금새 읽을 수 있었고 핵심적인 논지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 의하면, 바타이유의 일반경제학은 우주적인 에너지의 체계로 접근한 관점을 말하는 것 같다.  지구적으로 보면, 태양에너지의 무한한 공급에 따라 에너지는 과잉의 상태, 즉 잉여상태에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경제에서 생산이나, 희소성의 원리같은 것이 중심 주제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라는 중심 테마가 부각된다. 즉 중요한 것은 과잉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이다.

 이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하면 파멸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세계는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상실을 통해서 존재조건을 마련한다. 즉 무조건적인 소비와 대가없는 상실은 세계의 존재조건이다.

 소비에는 생산적 소비와 비생산적 소비가 있는데, 생산적 소비는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비이다. 비생산적 소비는 소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섹스는 대표적인 비생산적 소비이고, 전쟁은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함데 따라 야기된 비극적 소비, 지극적 파괴이다. 20세기의 두번의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축적과 성장만을 추구함에 따라 야기된 비극적 파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타이유는 고대 소비사회를 연구하는데에 있어서 모스의 <증여론>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포틀래치 인데 포틀래치는 아메리카 북서부 인디언들에게 있었던 증여(교환)체계이다.  바타이유는 포틀래치를 과잉에너지의 소비의 방식으로 본다. 물론 이러한 증여방식에는 지위,권력, 명예등이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여는 완전히 소비된 것은 아니다.

어쨋든 책에서는 일반경제학의 내용들을 쉽게 풀어놓는 것 같다. 결국 과잉에너지, 잉여를 소비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 일반경제학의 핵심이지 않을까 한다. 이 장의 말미에서는 마셜플랜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크게 흥미거리로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다음장은 에로티즘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인간이 동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바로 에로티즘을 인식하면서이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설명하는 데, 폭력을 매개로 죽음과 성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죽음에의 인식, 그 곳으로부터 죽음에의 공포, 죽음에의 전염의 두려움이 싹튼다. 이제 사람들은 매장을 하기 시작하고, 시체가 잘 건조되면 그 죽음에의 힘이 소멸한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폭력의 욕구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두려움, 이 이중성이 싹튼다. 폭력의 욕구와 두려움. 이 모순과 역설은 존재의 문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존재는 비연속적이지만 연속성에 대한 욕망이 피워나기 시작한다. 죽음에 도달하지 않고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연속성에 도달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에로티즘의 인식이다. 에로티즘은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연속성을 느끼는 황홀함. 무아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게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였는데, 첨가된 내용으로는 기획사회와 소비사회, 희생제의와 전쟁, 에로티즘인식의 변화 역사등의 내용이 첨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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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을 읽으면서 바타이유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의 번역은 정말 꽝이다. 각 장에서 똑같은 용어가 다르게 번역되지를 않나, 어쩔때는 인용문 큰 따옴표가 빠져있고, 어쩔때는 번호도 잘못매겨져 있고, 역자 주석하나 없는 것은 정말 해메게 만든다. 수업시간 선생님과 수업의 학생들이 없었더라면, 책을 놓았을 것이 뻔했을 것이다. 나같이 영어도 못하고, 독일어도 못하고, 불어도 못하는 사람에게 원본을 일일이 대조해볼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시간도 부족한데, 정말 나같은 사람에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차이와 반복을 번역한 김상환 선생님의 번역태도를 정말 존경할 만하다.  번역의 올바름의 판단은 나의 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세심한 역주와 해제, 그리고 자신에게 있었던 오류가 독자에게 없었으면 하는 그 태도말이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의 하버마스의 비판은 일관적이다. 하나는 이성비판자들이나 계몽의 변증법을 수행하려는 자들이 주체철학적 이성(의식)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했거나(헤겔과 맑스, 그리고 서구 맑스주의자들) 이성 비판을 총체화한 나머지 자신들의 비판을 정당화할 규범적 척도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수행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니체는 적극적 힘과 반응적 힘(번역은 능동적 힘과 반동적 힘이라 되어 있음) 을 구분할 개념적 수단이나 기준척도를 상실하였고,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자신들의 계몽비판을 정당화해줄 척도 자체를 갖다 버렸고, 하이데거는 전도된 토대주의에 묵여있으며, 데리다 역시 근원주의이며, 바타이유 역시 총체화된 이성비판의 자기관계의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직 푸코를 읽지 않았지만, 아마 푸코의 비판에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아마도 푸코가 행하고 있는 작업도 역시 이성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관계의 모순에 빠진다고 하지 않을까? 광기와 만나려는, 이성으로 배제된 광기를 복원하려는, 혹은 배제된 광기의 역사를 추적하려는 푸코의 작업도 역시 이성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광기와 만날 수 없고, 광기를 말할 수 없다고 하지 않을까?

 하버마스가 각각의 다른 맥락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재단하여 비판한다는 느낌도 들어서  좀 치사하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론적 논쟁에서는 첨예해야 하며, 그 근원까지도 따져물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정안할 수는 없다.  바타이유는 여덜번째 강의에 배치되어 있는데, 하이데거, 데리다 다음이고 푸코 이전이다.

 하버마스는 각각의 강의 배치를 자신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배치되었다는 느낌도 든다. 가령 하이데거와 파시즘의 논의를 연결시켜서(물론 책에서는 바타이유의 파시즘에 대한 내용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지 않다. 바타이유가 파시즘을 이질적인 것과 동질적인 것으로 융합하여 봤다는 점, 그러나 자연의 착취에 자기동일성으로 흡수하였다는 것이 논지인 것 같은데...) 은근히 비판의 규범적 척도가 없으면 야만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다음 장에서 이루어질 푸코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기 위하여 바타이유를 검토하는 것이 푸코비판을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푸코가 바타이유를 하나의 스승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사실로부터 푸코가 왜 그러했는지를 은근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쨋든 바타이유의 에로티즘과 일반경제학은 하버마스에게 소박한 형이상학으로 간주되고, 총체화된 이성비판의 아포리아에 빠지는 것으로 비판된다. 철학은 언어의 우주안에 있고, 에로티즘은 언어의 저편에 있는데, 그렇다면 바타이유가 쓴 글 또한 언어의 우주에 갇힌다는 비판인데, 어떻게 에로티즘을 설명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는지를 공격하는 것이다.

바타이유의 에로티즘과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유사한 점이 있다. (난 푸코의 광기의 역사밖에 읽지 않았으므로) 모두 이성으로부터 배제된 어떤 것을 끄집어내려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이성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된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푸코는 광기를 끄집어 낸다. 언어의 한계속에서도 각각 에로티즘과 광기를 만나려는 시도, 그것을 끄집어 내려는 시도. 과연 성공했는지는 미지수이고, 어쩌면 중요한 문제이지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논리와 언어는 이미 이성의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의 잣대를 가지고 광기와 만날 수 있는가? 에로티즘을 말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저자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유사하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가지고 죽음과 성이 폭력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조각과 형상들, 그리고 그림들, 그리고 사등의 글을 활용한다. 푸코 또한 고문서를 뒤져서 나온 자료들, 시와 소설, 희곡, 그림을 가지고 광기를 추적해나간다. 아마도 언어는 이성의 편이기 때문에 공식적이고 논증적인 자료보다는 더욱더 많은 자료들과 활용이 가능한 자료들이 필요했으리라. 그러나 푸코와 바타이유가 다른 점은 푸코는 철저히 실증적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자료와 근거들로 풍부한데 반하여 바타이유는 사례와 자료들, 그리고 자신의 논지에 관하여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리라. 바타이유에게 에로티즘은 주체를 해방시키고 삶과 죽음의 연속을, 존재의 연속을 느끼게 하는 저편의 황홀감과 오르가즘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이렇게 보면, 푸코가 왜 바타이유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했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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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3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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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바타이유 - 저주의 몫. 에로티즘 e시대의 절대사상 20
유기환 지음 / 살림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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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하여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의 테마를 중심으로 ,앞에서는 바타이유의 생애를 다루면서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 내용은 구체적이고도 쉽게 설명해놓은 듯 하다. 난 <에로스의 눈물>과 <에로티즘>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금새 읽을 수 있었고 핵심적인 논지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 의하면, 바타이유의 일반경제학은 우주적인 에너지의 체계로 접근한 관점을 말하는 것 같다.  지구적으로 보면, 태양에너지의 무한한 공급에 따라 에너지는 과잉의 상태, 즉 잉여상태에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경제에서 생산이나, 희소성의 원리같은 것이 중심 주제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라는 중심 테마가 부각된다. 즉 중요한 것은 과잉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이다.

 이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하면 파멸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세계는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상실을 통해서 존재조건을 마련한다. 즉 무조건적인 소비와 대가없는 상실은 세계의 존재조건이다.

 소비에는 생산적 소비와 비생산적 소비가 있는데, 생산적 소비는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비이다. 비생산적 소비는 소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섹스는 대표적인 비생산적 소비이고, 전쟁은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함데 따라 야기된 비극적 소비, 지극적 파괴이다. 20세기의 두번의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축적과 성장만을 추구함에 따라 야기된 비극적 파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타이유는 고대 소비사회를 연구하는데에 있어서 모스의 <증여론>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포틀래치 인데 포틀래치는 아메리카 북서부 인디언들에게 있었던 증여(교환)체계이다.  바타이유는 포틀래치를 과잉에너지의 소비의 방식으로 본다. 물론 이러한 증여방식에는 지위,권력, 명예등이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여는 완전히 소비된 것은 아니다.

어쨋든 책에서는 일반경제학의 내용들을 쉽게 풀어놓는 것 같다. 결국 과잉에너지, 잉여를 소비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 일반경제학의 핵심이지 않을까 한다. 이 장의 말미에서는 마셜플랜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크게 흥미거리로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다음장은 에로티즘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인간이 동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바로 에로티즘을 인식하면서이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설명하는 데, 폭력을 매개로 죽음과 성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죽음에의 인식, 그 곳으로부터 죽음에의 공포, 죽음에의 전염의 두려움이 싹튼다. 이제 사람들은 매장을 하기 시작하고, 시체가 잘 건조되면 그 죽음에의 힘이 소멸한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폭력의 욕구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두려움, 이 이중성이 싹튼다. 폭력의 욕구와 두려움. 이 모순과 역설은 존재의 문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존재는 비연속적이지만 연속성에 대한 욕망이 피워나기 시작한다. 죽음에 도달하지 않고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연속성에 도달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에로티즘의 인식이다. 에로티즘은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연속성을 느끼는 황홀함. 무아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게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였는데, 첨가된 내용으로는 기획사회와 소비사회, 희생제의와 전쟁, 에로티즘인식의 변화 역사등의 내용이 첨가되어있다.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이나 <에로스의 눈물>을 직접 읽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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