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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눈물
죠르주 바따이유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과의식사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에로스의 눈물>과<에로티즘> 리뷰를 같이 올렸다가, 두권의 책이니 페이퍼로쓰는 것이 좋다는 조언으로 페이퍼로 바꾸려고 했는데, 삭제하고 복사해놓지 않아서, 그만.....없어져 버렸다. 이런...아쉬워서 다시쓴다. (이거 리뷰쓰거나 페이퍼 쓰는 것이 보통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네...쩝 ~~)
이책은 바타이유가 독자들을 염두해두고 쓴책이라고 한다. 1962년에 출판되었다. 벽화, 조각, 그림등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 바타이유는 그림의 배치까지도 꼼꼼히 신경썼다고 한다. 그러나 나 같이 감수성 부족하고 그림에 무지한 나로서는 그림을 보고 무엇을 느끼기에 부족했는데, 바타이유에 대한 책을 좀 읽고 나서 그림을 다시 보니 다소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책장을 넘기기에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의 풀이로부터 시작하여 주욱~에로티즘의 인식과 표현의 역사를,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형상들과 벽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디오니소스축제->중세의 섹스의 부정->르네상스의 변화->사드와 고야-현대회화(들라크루아, 마네, 모가, 드가), 그리고 부두교의 공희와 중국의 처형 으로 이 책은 결론을 대신하며 마무리한다. 다소 논리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지만, 아마도 바타이유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에로티즘의 내적 체험을 전달하기 보다 묘사하는 것, 그것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은 언어와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그 부분은 그림이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대부분이 흑백으로 인쇄되어서 <천년의 그림여행>같은 책을 참조해서 보면 재미있을 듯 싶다.
내용적으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을 참조해서 읽으면 될 듯하다. <에로티즘>은 동물성과 인간의 구별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에로티즘의 인식에 와서야 인간은 동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고 바타이유는 설명한다. <에로티즘>은 각 소절의 제목이 구체적이어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에로티즘의 인식, 그것은 폭력의 욕구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죽음의 공포와 죽음 저편에 대한 욕구로부터, 존재의 비연속성에 대한 연속성의 갈망으로부터, 그것을 넘어서는 합일지점의 오르가즘이 아닐까? 존재의 비연속이 연속을 느끼게 되는 순간. 그것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지점을 무너뜨리고 넘어선 지점. 비연속의 불완전성으로부터 연속을 느끼는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육체적 에로티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세가지로 설명한다. 육체적 에로티즘, 심정의 에로티즘, 신성의 에로티즘이다.
<에로스의 눈물>은 독자들을 배려한 설명과 그림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에로티즘>은 각 절별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각각 참조하여 보면은 좋을 듯하다. 물론 에로티즘 비생산적 소비의 대표적 사례이니 소비에 관한 바타이유의 저서 <저주의 몫>을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해설서로는 유기환 선생님이 쓴 <조르주 바타이유>가 좋은 듯 싶다. 바타이유의 생애와 일반경제학, 에로티즘을 중심주제로 하셔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해놓은 것 같다.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한 리뷰를 같이 덧붙인다.
이 책은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하여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의 테마를 중심으로 ,앞에서는 바타이유의 생애를 다루면서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 내용은 구체적이고도 쉽게 설명해놓은 듯 하다. 난 <에로스의 눈물>과 <에로티즘>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금새 읽을 수 있었고 핵심적인 논지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 의하면, 바타이유의 일반경제학은 우주적인 에너지의 체계로 접근한 관점을 말하는 것 같다. 지구적으로 보면, 태양에너지의 무한한 공급에 따라 에너지는 과잉의 상태, 즉 잉여상태에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경제에서 생산이나, 희소성의 원리같은 것이 중심 주제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라는 중심 테마가 부각된다. 즉 중요한 것은 과잉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이다.
이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하면 파멸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세계는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상실을 통해서 존재조건을 마련한다. 즉 무조건적인 소비와 대가없는 상실은 세계의 존재조건이다.
소비에는 생산적 소비와 비생산적 소비가 있는데, 생산적 소비는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비이다. 비생산적 소비는 소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섹스는 대표적인 비생산적 소비이고, 전쟁은 과잉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함데 따라 야기된 비극적 소비, 지극적 파괴이다. 20세기의 두번의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축적과 성장만을 추구함에 따라 야기된 비극적 파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타이유는 고대 소비사회를 연구하는데에 있어서 모스의 <증여론>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포틀래치 인데 포틀래치는 아메리카 북서부 인디언들에게 있었던 증여(교환)체계이다. 바타이유는 포틀래치를 과잉에너지의 소비의 방식으로 본다. 물론 이러한 증여방식에는 지위,권력, 명예등이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여는 완전히 소비된 것은 아니다.
어쨋든 책에서는 일반경제학의 내용들을 쉽게 풀어놓는 것 같다. 결국 과잉에너지, 잉여를 소비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 일반경제학의 핵심이지 않을까 한다. 이 장의 말미에서는 마셜플랜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크게 흥미거리로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다음장은 에로티즘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인간이 동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바로 에로티즘을 인식하면서이다. 바타이유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설명하는 데, 폭력을 매개로 죽음과 성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죽음에의 인식, 그 곳으로부터 죽음에의 공포, 죽음에의 전염의 두려움이 싹튼다. 이제 사람들은 매장을 하기 시작하고, 시체가 잘 건조되면 그 죽음에의 힘이 소멸한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폭력의 욕구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두려움, 이 이중성이 싹튼다. 폭력의 욕구와 두려움. 이 모순과 역설은 존재의 문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존재는 비연속적이지만 연속성에 대한 욕망이 피워나기 시작한다. 죽음에 도달하지 않고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연속성에 도달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에로티즘의 인식이다. 에로티즘은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연속성을 느끼는 황홀함. 무아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게 일반경제학과 에로티즘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였는데, 첨가된 내용으로는 기획사회와 소비사회, 희생제의와 전쟁, 에로티즘인식의 변화 역사등의 내용이 첨가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