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이지만, 인간과의 관련속에서 칸트의 핵심내용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책 내용을 요약해본다.
1.자연과 인간
칸트는 지식이 어떻게 획득되는가를 꼼꼼히 탐구하는 것으로 출발하면서 자신의 비판기 철학으로 들어선다. 즉 칸트는 경험(대상)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적인 진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하게 된다.
칸트는‘사고와 대상’간의 관계를 역전시켜 재정립한다. 이것은 주관(사고)의 능동적 작용으로서의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관점상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으로부터 인간에게는 선험적인 감성형식과 사고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한다. 주관의 외부로부터 대상이 공간형식 및 시간형식에 재료로 주어지면, 그 다음에 재료는 범주에 의해 사고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재료는 인식하는 주관에 대해 객관적인 대상이 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무엇을 인식한다고 할 때 반드시 공간형식, 시간형식, 그리고 사고형식인 범주가 작동한다. 이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 없이는 대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성(지성)없이는 대상이 사유되지 않는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대상은 주관의 형식에 의해 질서가 잡힌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지 대상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식하는‘자연’은 위에서 언급한‘형식’에 따르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지 형식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은 단지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인식할 수는 없다.
대상은‘대상 그 자체’와‘형식에 의해 질서 잡힌 대상’으로 나뉘어 볼 수 있겠는데, 칸트에게서 인식된 대상이라는 것은‘형식에 질서 잡힌 대상’을 의미하며 이것을‘현상’이라 한다. 즉 인간에게 자연세계는 주관의 형식에 의해 질서 잡힌 세계뿐이다. 대상인식에 있어 주관형식은 모든 인간들의 근본조건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 근본조건은 선험적이고, 필연적이고(반드시), 객관적(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법칙의 적용)이다. 이로써 흄이 제기한 대상에 대한 인식의 보편성의 불가능성, 즉 회의주의적인 입장을 칸트는 인식에 대한 방법상의 전환으로서, 즉 선험적 현상존재론으로 해소한다.
2.도덕과 인간
인간은 자신의 사유를 작동시키면서‘현상’의 넘어에 있는 절대적인 것, 무제한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감성형식에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인식될 수 없다. 그러나 결코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이러한 것들을 사유할 수는 있다. 그래서 칸트는 절대적 특성을 가진 세 가지를 가정한다. 그것을 칸트는‘이념’이라 이름 붙였는데, 1)영혼 불멸의 이념 2)자유의 이념 3) 필연적(절대적)존재자로서의 이념, 즉 신의 이념이다.
칸트는 보편적 원리의 도덕법칙을 수립하기 위해 현상세계 넘어에 있는‘이념’을 요청한다. 그러나‘이념’을 요청 한다고 해서 현상(자연)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둘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칸트가 이념을 가정한 이유는 현상 세계 넘어에서, 자연에서 나타나지 않는 그‘무엇’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행위는 자연(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필연성은 자연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유의 실재성을 증명할 수 없어도 사유하는 것은 가능하며‘자유’를 요청해도 이것이‘자연’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이제 인간을 두 가지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 이념’으로서의 인간이다.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의 특성을 갖는다. 칸트는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이러한 성질을‘경향성’이라고 하였다. 경향성은‘저절로 기울어’지는 마음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어 하고,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어 하는 성질들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자유의 이념’으로서의 인간은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명령하여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반성적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반성적 의식이란 자연의 경향성으로부터 방향을 되돌려서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게 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칸트는 모든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하라고 명령(명법)한다.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거나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절대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성에 의존하는 마음이 아닌, 반성적으로 자기 이성내부로 향할 때 드는 마음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자신 뿐 아니라 남들을 목적 자체로 대하는 데에는 일종의 긴장된 의식을 수반한다. 긴장된 의식은 순간의 인식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생활 속에서 자신이 처한 매 상황마다 ‘의식적’으로 살 때에만 가능하다. 칸트의 도덕법칙은 자연의 성향에 따라 저절로 수행되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매순간 스스로에게 명령해야 하는 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바가 언제나 보편적 행위 법칙에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동일한 행위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언제나 보편적 법칙에 어긋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3.아름다움과 인간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종,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언제나 새롭고 점점 커지는 경탄과 공경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별이 빛나는 하늘’은 자연(현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위에 언급한 현상적 존재론으로 설명되고,‘내 안의 도덕법칙’은‘자유의 이념’에 근거하여 보편적 도덕법칙을 수립하는 것으로서 설명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은 이원적 존재로, 즉 분열된 존재로 남겨져 있다. 이제 칸트는 이원적 존재의 인간을 통일시킨다. 이것은‘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으로 설명된다.
칸트에게서 판단은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이 있다. 규정적 판단은 사물 및 사태를 지각할 때, 개별적 경우를 확정된 보편개념에 귀속시키는 형태의 판단이다. 반성적 판단은 어떤 개별적 사태가 속한다고 생각되는 보편개념을 반성적으로 찾아가는 작용이다. 보편개념이 미리 확정되어 있는 규정적 판단과는 달리 반성적 판단은 미리 확정 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 반성적 판단은 그때그때 개별적 경우에 대해 가능한 보편개념을 비로소 찾아내야 하는 판단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판단이 반성적 판단이다. 개개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판단은 개개인의 판단들이지 동일한 내용의 판단이 아니다. 즉‘미’판단은 규정적 판단처럼 이미 알고 있는 보편개념과 판단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미’판단은 각자 마음의 주관적 움직이다. 물론 이것은 현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은 마음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칸트는 이러한 변화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판단을‘취미판단’이라고 한다. 취미판단은 미적 현상에 관한 판단 일반을 의미한다. 취미판단은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만족감 및 기분 좋음을 동반하지만, 이것은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느끼는 기분 좋음이나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도덕적 행위에는 미리 그 보편법칙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기분 좋음은 그 법칙에 부합했을 때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감각적 욕구에 따른 기분 좋음 또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부합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즉 이것은 어떤 기준과 관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어떠한 기준과 관심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것은‘무관심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연에서나 예술에서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관심 및 목적을 배제하고 오로지 그 대상 자체에만 몰입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상상력과 오성이 저절로 합치될 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자유로움을 본질로 한다. 오성은 개념 및 법칙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오성은 규제하지 않는데도 자유로운 상상력이 오성과 저절로 합치 될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란 어떠한 내용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과 오성이 저절로 일치 될 때 느낀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형식미’이다.
이러한 형식미는‘인간의 이원적 존재의 분열’이 통일되는 것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숭고의 감정은 상상력과 이성이 저절로 합치 될 때 느끼는 것이다.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자유로서의 인간이 통일적인 목적에 부합할 때 숭고함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오성의 합치로서의 아름다움, 상상력과 이성의 합치로서의 숭고함은 결국 하나의 궁극적 이념, 목적에 부합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이 숭고의 감정을 느꼈을 때는 분열된 인간이 절대적 통일법칙에 부합했을 때이다.
칸트는 자유와 자연을 합목적적인 것을 매개로 하여 통일시킨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름다움, 숭고, 합목적성을 통하여 하나의 체계적 통일로서 완성되게 된다. 그래서 칸트 철학에서 진(자연), 선(도덕), 미(아름다움)은 각각 독립된 요소가 아니다.‘미’는 진과 선을 매개하여 통일적인 것으로 성립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4.감정과 인간
모든 인간이 의무와 당위로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칸트도 인간의 현실적 삶을 도외시 하지 않았다. 이것을 칸트는 자연에 기울어지는 마음,‘자연의 경향성’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향성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현실적인 삶속에서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칸트에게는 인간의 삶속에서‘자연의 경향성’,즉 인간의 감정을 중요시하면서도 도덕적 삶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인간의 감정을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의 통제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은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간접적인 사고 능력이 자신의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기도 전에 나타나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이 통제할 힘을 잃고 감정에 의해 막무가내로 된다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만 종속되는 존재로서 자신의 고유한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자연적 조건을 끊어 버리고 도덕법칙에 따라, 반성적 의식으로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즉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절대적 이성 법칙에 따라 인간을 다른 어떠한 고려 없이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할 때이다. 그래서 칸트에 의하면 감정이 삶에서 매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물질적, 자연적 조건에 삶에만 따르는 것은 인간을 동물적 삶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하며,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산다는 것은 스스로가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살 것을 의무로 부과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속에서 자신을 새로이 만들어가야 하는, 창조해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위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당위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만이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5.역사와 인간
인간 개체의 존엄성, 나아가 인류의 존엄성은 사회, 국가 및 세계가 역사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인간사회의 역사는 이성의 방향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칸트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발전을 통해서 개인들의 정신이 한 단계 비약할 것을 믿었으며, 거꾸로 개인들의 알력과 경쟁, 통합의 과정을 통해서 사회가 또 한 단계 비약할 것을 믿었다.
칸트는 결국에는 개인과 사회간의 이러한 긴장관계에 의해 인간의 잠재적 이성이 현실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즉 사회속에서 자신의 이성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을 이중적 존재로 파악했는데, 한 측면인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줄 사회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반사회성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반사회적 사회성이 개별국가를 성립시키는 데뿐만 아니라, 나아가 전 세계적인 국제 연맹을 성립시키는 데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칸트의 이상사회는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주권이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사회형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개인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를 선출해야 한다. 여기에서 칸트는 삼권분립의 시민정치체제가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삼권분립은 입법.행정.사법의 세 가지 권력형태로 이루어진 체제를 말하는데, 칸트는 이중에서도 입법권이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입법은 통일된 국민의 의지의 표출로서 그것은 국민의 보편적인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시민정치체제를 공화제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공화제의 국가 체제는 반드시 국민의 입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국가를 말하며, 이 체제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평화를 계약에 의해 법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국가의 유일한 공동 입법 형태여야 한다. 칸트가 공화제 국가를 시민사회의 이상적 형태로 보는 근거는 국가의 이성적 방향에 있다. 공화제야 말로 모든 국민의 절대적 자유와 평등을 사회정신의 근본으로 한다. 절대적 인격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며, 그러한 자유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공화정부체제는 이성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번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경과를 거쳐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하며, 법의 적용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한 국가 내의 이상적 시민사회화를 종착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칸트는 개별 국가의 시민사회는 나아가 세계시민사회로 연결되어야만 참된 이상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사회성이 한 국가를 사회발전으로 만들듯이 국가간의 관계도 반사회적 사회성이 국제적 유대관계의 발전으로 만든다. 국가도 한 인간처럼 자연과 자유의 측면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끼리도 이해관계에 얽매여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심화되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반사회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들끼리의 전쟁, 즉 반사회성을 겪게 되면 국가끼리도 법적제도에 의한 국가간의 유대관계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고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체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국제법에 토대를 둔 국제연맹이 되어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칸트는 바람직한 국제법에 따라 유지되는 세계시민사회에 의해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칸트는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과 세계인으로서의 실현과정은 시민사회, 나아가 세계시민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본질인 이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필요로 하고, 사회의 역사과정을 필요로 하며, 더욱이 세계시민 사회가 이루어지는 날까지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6.교육과 인간
칸트는 인간의 본성도 사회속에서 계발되는 것임을 논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구조의 법제화만으로는 이러한 계발의 충분한 수준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의 고양을 위한 교육이다. 즉 각자 자신의 인격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절대적 자유의지의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데에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교육의 의미는 도덕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 및 사태에 대하여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확한 인식이 강조되는 것이다. 칸트는 여러 가지 학문중에서도 철학을 특히 중요한 위치에 둔다. 철학은 각자 이성의 자율에 따라 자유로운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이 절대적 자유의 존재로서 사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할 줄 알고, 또한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삶을 살 것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철학은 사회의 어떠한 인위적 제도 와도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사고 능력을 키우는 학문이다. 철학은 국민들의 계몽을 통해서 국민들 일반의 의식을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나 국가의 임의적 제재에 의해 국민들의 삶이 왜곡되지 않도록, 철학은 국민들이 각자 공적이며 자유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계몽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살아야 하며 계몽이란 개개인이 정신의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이성적 인간으로 살도록 돕는 것임을 강조한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발현이 도덕성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자연성은 인간성으로, 즉 도덕성으로 교화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