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이지만, 인간과의 관련속에서 칸트의 핵심내용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책 내용을 요약해본다.

1.자연과 인간

 칸트는 지식이 어떻게 획득되는가를 꼼꼼히 탐구하는 것으로 출발하면서 자신의 비판기 철학으로 들어선다. 즉 칸트는 경험(대상)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적인 진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하게 된다.

 칸트는‘사고와 대상’간의 관계를 역전시켜 재정립한다. 이것은 주관(사고)의 능동적 작용으로서의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관점상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으로부터 인간에게는 선험적인 감성형식과 사고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한다. 주관의 외부로부터 대상이 공간형식 및 시간형식에 재료로 주어지면, 그 다음에 재료는 범주에 의해 사고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재료는 인식하는 주관에 대해 객관적인 대상이 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무엇을 인식한다고 할 때 반드시 공간형식, 시간형식, 그리고 사고형식인 범주가 작동한다. 이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 없이는 대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성(지성)없이는 대상이 사유되지 않는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대상은 주관의 형식에 의해 질서가 잡힌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지 대상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식하는‘자연’은 위에서 언급한‘형식’에 따르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지 형식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은 단지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인식할 수는 없다.

 대상은‘대상 그 자체’와‘형식에 의해 질서 잡힌 대상’으로 나뉘어 볼 수 있겠는데, 칸트에게서 인식된 대상이라는 것은‘형식에 질서 잡힌 대상’을 의미하며 이것을‘현상’이라 한다. 즉 인간에게 자연세계는 주관의 형식에 의해 질서 잡힌 세계뿐이다. 대상인식에 있어 주관형식은 모든 인간들의 근본조건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 근본조건은 선험적이고, 필연적이고(반드시), 객관적(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법칙의 적용)이다. 이로써 흄이 제기한 대상에 대한 인식의 보편성의 불가능성, 즉 회의주의적인 입장을 칸트는 인식에 대한 방법상의 전환으로서, 즉 선험적 현상존재론으로 해소한다.

2.도덕과 인간

  인간은 자신의 사유를 작동시키면서‘현상’의 넘어에 있는 절대적인 것, 무제한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감성형식에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인식될 수 없다. 그러나 결코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이러한 것들을 사유할 수는 있다. 그래서 칸트는 절대적 특성을 가진 세 가지를 가정한다. 그것을 칸트는‘이념’이라 이름 붙였는데, 1)영혼 불멸의 이념 2)자유의 이념 3) 필연적(절대적)존재자로서의 이념, 즉 신의 이념이다. 

 칸트는 보편적 원리의 도덕법칙을 수립하기 위해 현상세계 넘어에 있는‘이념’을 요청한다. 그러나‘이념’을 요청 한다고 해서 현상(자연)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둘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칸트가 이념을 가정한 이유는 현상 세계 넘어에서, 자연에서 나타나지 않는 그‘무엇’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행위는 자연(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필연성은 자연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유의 실재성을 증명할 수 없어도 사유하는 것은 가능하며‘자유’를 요청해도 이것이‘자연’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이제 인간을 두 가지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 이념’으로서의 인간이다.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의 특성을 갖는다. 칸트는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이러한 성질을‘경향성’이라고 하였다. 경향성은‘저절로 기울어’지는 마음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어 하고,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어 하는 성질들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자유의 이념’으로서의 인간은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명령하여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반성적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반성적 의식이란 자연의 경향성으로부터 방향을 되돌려서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게 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칸트는 모든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하라고 명령(명법)한다.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거나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절대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성에 의존하는 마음이 아닌, 반성적으로 자기 이성내부로 향할 때 드는 마음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자신 뿐 아니라 남들을 목적 자체로 대하는 데에는 일종의 긴장된 의식을 수반한다. 긴장된 의식은 순간의 인식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생활 속에서 자신이 처한 매 상황마다 ‘의식적’으로 살 때에만 가능하다. 칸트의 도덕법칙은 자연의 성향에 따라 저절로 수행되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매순간 스스로에게 명령해야 하는 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바가 언제나 보편적 행위 법칙에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동일한 행위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언제나 보편적 법칙에 어긋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3.아름다움과 인간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종,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언제나 새롭고 점점 커지는 경탄과 공경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별이 빛나는 하늘’은 자연(현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위에 언급한 현상적 존재론으로 설명되고,‘내 안의 도덕법칙’은‘자유의 이념’에 근거하여 보편적 도덕법칙을 수립하는 것으로서 설명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은 이원적 존재로, 즉 분열된 존재로 남겨져 있다. 이제 칸트는 이원적 존재의 인간을 통일시킨다. 이것은‘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으로 설명된다.

 칸트에게서 판단은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이 있다. 규정적 판단은 사물 및 사태를 지각할 때, 개별적 경우를 확정된 보편개념에 귀속시키는 형태의 판단이다. 반성적 판단은 어떤 개별적 사태가 속한다고 생각되는 보편개념을 반성적으로 찾아가는 작용이다. 보편개념이 미리 확정되어 있는 규정적 판단과는 달리 반성적 판단은 미리 확정 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 반성적 판단은 그때그때 개별적 경우에 대해 가능한 보편개념을 비로소 찾아내야 하는 판단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판단이 반성적 판단이다. 개개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판단은 개개인의 판단들이지 동일한 내용의 판단이 아니다. 즉‘미’판단은 규정적 판단처럼 이미 알고 있는 보편개념과 판단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미’판단은 각자 마음의 주관적 움직이다. 물론 이것은 현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은 마음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칸트는 이러한 변화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판단을‘취미판단’이라고 한다. 취미판단은 미적 현상에 관한 판단 일반을 의미한다. 취미판단은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만족감 및 기분 좋음을 동반하지만, 이것은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느끼는 기분 좋음이나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도덕적 행위에는 미리 그 보편법칙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기분 좋음은 그 법칙에 부합했을 때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감각적 욕구에 따른 기분 좋음 또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부합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즉 이것은 어떤 기준과 관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어떠한 기준과 관심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것은‘무관심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연에서나 예술에서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관심 및 목적을 배제하고 오로지 그 대상 자체에만 몰입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상상력과 오성이 저절로 합치될 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자유로움을 본질로 한다. 오성은 개념 및 법칙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오성은 규제하지 않는데도 자유로운 상상력이 오성과 저절로 합치 될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란 어떠한 내용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과 오성이 저절로 일치 될 때 느낀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형식미’이다.

 이러한 형식미는‘인간의 이원적 존재의 분열’이 통일되는 것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숭고의 감정은 상상력과 이성이 저절로 합치 될 때 느끼는 것이다.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자유로서의 인간이 통일적인 목적에 부합할 때 숭고함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오성의 합치로서의 아름다움, 상상력과 이성의 합치로서의 숭고함은 결국 하나의 궁극적 이념, 목적에 부합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이 숭고의 감정을 느꼈을 때는 분열된 인간이 절대적 통일법칙에 부합했을 때이다.

 칸트는 자유와 자연을 합목적적인 것을 매개로 하여 통일시킨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름다움, 숭고, 합목적성을 통하여 하나의 체계적 통일로서 완성되게 된다. 그래서 칸트 철학에서 진(자연), 선(도덕), 미(아름다움)은 각각 독립된 요소가 아니다.‘미’는 진과 선을 매개하여 통일적인 것으로 성립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4.감정과 인간

 모든 인간이 의무와 당위로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칸트도 인간의 현실적 삶을 도외시 하지 않았다. 이것을 칸트는 자연에 기울어지는 마음,‘자연의 경향성’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향성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현실적인 삶속에서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칸트에게는 인간의 삶속에서‘자연의 경향성’,즉 인간의 감정을 중요시하면서도 도덕적 삶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인간의 감정을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의 통제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은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간접적인 사고 능력이 자신의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기도 전에 나타나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이 통제할 힘을 잃고 감정에 의해 막무가내로 된다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만 종속되는 존재로서 자신의 고유한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자연적 조건을 끊어 버리고 도덕법칙에 따라, 반성적 의식으로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즉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절대적 이성 법칙에 따라 인간을 다른 어떠한 고려 없이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할 때이다. 그래서 칸트에 의하면 감정이 삶에서 매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물질적, 자연적 조건에 삶에만 따르는 것은 인간을 동물적 삶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하며,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산다는 것은 스스로가 이성의 법칙에 따라 살 것을 의무로 부과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속에서 자신을 새로이 만들어가야 하는, 창조해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위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당위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만이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5.역사와 인간

 인간 개체의 존엄성, 나아가 인류의 존엄성은 사회, 국가 및 세계가 역사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인간사회의 역사는 이성의 방향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칸트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발전을 통해서 개인들의 정신이 한 단계 비약할 것을 믿었으며, 거꾸로 개인들의 알력과 경쟁, 통합의 과정을 통해서 사회가 또 한 단계 비약할 것을 믿었다.

 칸트는 결국에는 개인과 사회간의 이러한 긴장관계에 의해 인간의 잠재적 이성이 현실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즉 사회속에서 자신의 이성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을 이중적 존재로 파악했는데, 한 측면인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줄 사회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반사회성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반사회적 사회성이 개별국가를 성립시키는 데뿐만 아니라, 나아가 전 세계적인 국제 연맹을 성립시키는 데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칸트의 이상사회는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주권이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사회형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개인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를 선출해야 한다. 여기에서 칸트는 삼권분립의 시민정치체제가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삼권분립은 입법.행정.사법의 세 가지 권력형태로 이루어진 체제를 말하는데, 칸트는 이중에서도 입법권이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입법은 통일된 국민의 의지의 표출로서 그것은 국민의 보편적인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시민정치체제를 공화제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공화제의 국가 체제는 반드시 국민의 입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국가를 말하며, 이 체제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평화를 계약에 의해 법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국가의 유일한 공동 입법 형태여야 한다. 칸트가 공화제 국가를 시민사회의 이상적 형태로 보는 근거는 국가의 이성적 방향에 있다. 공화제야 말로 모든 국민의 절대적 자유와 평등을 사회정신의 근본으로 한다. 절대적 인격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며, 그러한 자유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공화정부체제는 이성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번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경과를 거쳐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하며, 법의 적용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한 국가 내의 이상적 시민사회화를 종착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칸트는 개별 국가의 시민사회는 나아가 세계시민사회로 연결되어야만 참된 이상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사회성이 한 국가를 사회발전으로 만들듯이 국가간의 관계도 반사회적 사회성이 국제적 유대관계의 발전으로 만든다. 국가도 한 인간처럼 자연과 자유의 측면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끼리도 이해관계에 얽매여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심화되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반사회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들끼리의 전쟁, 즉 반사회성을 겪게 되면 국가끼리도 법적제도에 의한 국가간의 유대관계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고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체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국제법에 토대를 둔 국제연맹이 되어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칸트는 바람직한 국제법에 따라 유지되는 세계시민사회에 의해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칸트는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과 세계인으로서의 실현과정은 시민사회, 나아가 세계시민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본질인 이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필요로 하고, 사회의 역사과정을 필요로 하며, 더욱이 세계시민 사회가 이루어지는 날까지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6.교육과 인간

 칸트는 인간의 본성도 사회속에서 계발되는 것임을 논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구조의 법제화만으로는 이러한 계발의 충분한 수준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의 고양을 위한 교육이다. 즉 각자 자신의 인격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절대적 자유의지의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데에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교육의 의미는 도덕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 및 사태에 대하여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확한 인식이 강조되는 것이다. 칸트는 여러 가지 학문중에서도 철학을 특히 중요한 위치에 둔다. 철학은 각자 이성의 자율에 따라 자유로운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이 절대적 자유의 존재로서 사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할 줄 알고, 또한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삶을 살 것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철학은 사회의 어떠한 인위적 제도 와도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사고 능력을 키우는 학문이다. 철학은 국민들의 계몽을 통해서 국민들 일반의 의식을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나 국가의 임의적 제재에 의해 국민들의 삶이 왜곡되지 않도록, 철학은 국민들이 각자 공적이며 자유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계몽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살아야 하며 계몽이란 개개인이 정신의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이성적 인간으로 살도록 돕는 것임을 강조한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발현이 도덕성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자연성은 인간성으로, 즉 도덕성으로 교화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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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12장까지 내용을 분류해서 요약해본다.

<1-3장>:문제제기 및 모방의 수단ㆍ대상ㆍ방법

 처음에‘시창작 기술, 시의 여러종류, 그들 각각의 본질적 기능들을 논의하고, 시 창작에 성공하기 위한 플롯 구성의 방법을 설명하고, 시를 이루는 부분들의 수와 성질을 가려내고, 기타 여러 문제들을 취급’하고,‘기본원칙들로부터 시작하여’논의를 펴나갈 것을 밝히고 있다. 처음 문제로 삼는 것은 모방의 여러 형태들에 관한 문제이다. 서사시, 비극, 희극, 디튀람보스, 피리나 현금을 위한 음악은 모두 모방의 여러 형태들이다. <3장>까지는 모방의 수단ㆍ대상ㆍ방식의 세부분을 기준으로 여러 가지의 사례를 들면서 시의 여러 가지 구분에 대하여 설명한다.

수단은 색채와 형상, 목소리, 리듬, 말과 선율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수단은 각각 독자적으로 또는 결합하여 사용할 수 있다.

②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방하느냐에 따라 구분이 되는데, 보통사람보다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모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대상에 따른 구분이다.

방식에 따른 모방의 구분은 세 가지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야기와 극적 제시를 번갈아 하는 것, 둘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목소리로 하기, 셋째는 행위자들을 전부 극적으로 제시하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5장>:시의 기원과 발전, 희극과 서사시

 시는 사람의 본성에 뿌리박은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 첫째, 사람은 모방적 행동성향을 타고나며 모방을 통하여 지식의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점, 둘째, 모방적 사물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방의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초창기에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거듭 즉흥적으로 창작하는 사이에 시가 생겨난 것이다.
 시인의 성격에 따라서 시는 두 가지로 갈라지는데 엄숙한 성격의 시인은 고상한 인물과 행위를 모방하고 반면에 경박한 성격의 시인은 못난 사람들의 행위를 다루어 풍자적 욕설의 시를 지어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일부는 욕설의 시 대신 희극의 시인이 되었고 다른 일부는 서사시를 버리고 비극을 뜻했으니 이는 비극의 형식이 서사시의 형식보다 위대했던 까닭이다.
 희극은 보통사람보다 못난 사람들의 모방인데, 이것이 악에 관련되어 있거나 고통이나 파괴의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비극은 발전의 단계와 인물을 추적할 수 있지만 희극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희극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사시는 모방이라는 점과 일상 언어의 운율과 도덕적으로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극과 일치하나 일상 언어의 운율과 이야기라는 방식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극과 다르다.   

<6-12장>:비극의 정의 및 여섯 요소와 플롯에 대한 설명

 <5장>에서 희극과 서사시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고 <6장>에서는 비극의 본질적 성격과 비극의 여섯 요소를 희극과 서사시의 간략한 언급에 비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비극의 본질은‘심각하고 완전하며 일정한 크기가 있는 행동의 모방으로서 그 여러 부분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아름답게 꾸민 언어로 되어 있고 이야기가 아닌 극적 연기의 방식을 취하며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서 그런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행하는 것이다.’비극은 한 행동의 모방으로서 그 행동을 행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연출하는 것인데, 장르로서의 비극이 성립되려면 전체적으로 여섯 가지의 구성요소가 필요하다. 그 여섯가지는 플롯ㆍ성격ㆍ언어표현ㆍ사고력ㆍ시각적 장치ㆍ노래이다. 언어표현ㆍ노래는 모방수단이고, 플롯ㆍ성격ㆍ사고력은 모방대상이며, 시각적 장치는 모방의 방식에 속한다. 이들이 비극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중 제일 중요한 것은 사건들의 조직, 즉 플롯이다. 그러므로 플롯이 제일의 원칙이며 비극의 영혼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성격,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사고력, 네 번째 요소는 문체이며 즉 언어적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서 중요한 요소는 노래이며 시각적 장치는 시인의 기술에서 가장 비본질적인 요소이다.

 이어서 <7-11장>까지는 비극의 요소중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 플롯에 대한 설명이다. 플롯은 처음, 중간 끝이 있는 전체로서 질서를 유지해야 하며 적당한 크기를 갖추어야 한다. 플롯은 하나의 행동에 대한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단일한 행동을 모방한 것이어야 한다. 이 구성에서 강조하는 것이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연결의 요소로서 개연성과 필연성이다. 비극적 모방은 하나의 완전한 행동뿐 아니라 두려움과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보여주므로 사실들이 기대를 벗어나면서도 서로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일어날 때 가장 효과가 크다. ‘뒤바뀜’, ‘깨달음’,‘고통’은 플롯구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뒤바뀜은 행동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무지에서 지식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고통이란 관객이 볼 수 있는 죽음, 괴로운 장면등의 파괴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12장>에서는 비극의 양적 성질로서의 구분을 말한다. 도입(프롤로그),장면(에피소드), 퇴장(엑소도스), 합창(코로스), 합창부분은 합창입장(파로도스), 합창노래(스타시몬), 배우들의 노래와 응답(콤모스)

 ->『시학』에서는 단순한 행동의 모방과 통일성이 강조되면서 플롯, 즉 사건들의 구조가 강조되는데, 단순한 인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이것은 전체 극의 탄탄하고 잘 짜여진 전체 극을 구상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모방을 통하여 지식을 전달하고 이 지식(모방 한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의 모방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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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방법서설은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그 중에 문예출판사의 이현복 번역본과 훈복문화사(서광사)의 최명관 번역본을 많이 읽는 듯 싶다. 원래 최명관의 번역본은 서광사에서 나왔었는데, 훈복문화사로 바뀌었다. (최명관의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훈복문화사로 바뀌었다. 서광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때문에 바뀐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겠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방법서설과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이 함께 묶여져 있고, 훈복문화사 판본(난 서광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바뀐 것은 거의 없을 듯...)은 방법서설과 성찰이 묶여져 있다. 문예출판사나 훈복문화사 판본 모두 역자해제가 있어 참조하기 좋다. 문예출판사는 역자 주석까지 있어서 부분 부분 참조하기 좋을 듯하다. 훈복문화사판본또한 역자의 학위논문을 실은 것이라 참조하기 좋다.

 만약 책을 알뜰하게 사고싶다면,  성찰과 함께 보려면 훈복문화사의 책을,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같이 보려면 문예출판사본을 사야 한다. 성찰은 문예출판사본이 따로 있다.(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도 같이 있는 것 같다.) 넉넉하다면, 모두 사도 되겠지만...

해설서로는 위 두개 번역본의 해제면 충분할 것 같지만,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는 다음의 책,

[*안쏘니 케니, 『데카르트의 철학』, 김성호 역 , 서광사]

[*E.M 커리, 『데카르트와 회의주의』, 문성학 역, 고려원]이 좋을 듯하다. (이것은 절판)

 그리고 철학사책은 철학의 거장들, 스텀프의 서양 철학사, 휠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가 괜찮지 않을까 싶다. (스텀프의 서양철학사는 개정되어서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로 바뀌어서 나왔다.)   

데카르트의 방법에 대하여 생각중인데, 이것은 좀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데카르트의 생애와 사상 요약과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1원리에 관하여 간단히 요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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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데카르트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는 1596년 뚜레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조아킴 데카르트는 브르타뉴 의회의 고문이었다. 1604년에서 1612년까지 데카르트는 라프레슈(La Fléche)의 예수회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철학을 배웠다. 이 시기 동안 그는 계속해서 의문과 논란을 야기 시키는 철학 이론들에 비해 확실성과 정확성을 지닌 수학에 깊이 감명 받았다. 한 동안 그는 바바리아의 맥시밀리안 군대에서 군인 생활을 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한 후 그는 1628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했으며 여기에서 그의 주저서인 <방법서설, 1637년>, <제1철학을 위한 성찰, 1641년>, <철학의 원리, 1644년>, <정념론, 1649년>을 저술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배우고자 했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그는 1649년에 스웨덴에 건너갔다. 여왕이 아침 5시 이외에는 그를 볼 시간이 없었으므로 그 시각의 혹독한 추위는 물론 익숙하지도 않은 생활로 인해 그는 쉽게 병에 걸렸다. 몇 달 안 되어 그는 심한 열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1650년 2월,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무엘.E.스텀프『서양철학사』, 이광래 역, (종로서적 1994), 308쪽 참조 )

 데카르트가 산 시대는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종교 세력이 복잡한 갈등 속에서 30년 전쟁(1618-1648)을 벌이던 시대였고, 전란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사람들이 비참한 곤고를 겪던 시대요, 정신적으로는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미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처하여 데카르트도 청년시절에는 여러 차례 종교적 사상과 세력이 얽힌 전쟁 마당에 뛰어들었다. 세상의 물정을 알려고 오랜 세월을 방황하며 사방으로 여행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경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들이 하는 일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이윽고 그는 오로지 진리의 탐구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치게 되었다.   (르네.데까르트,『방법서설ㆍ성찰ㆍ데까르트 연구』최명관 역ㆍ저, (서광사1998),299쪽 참조) 

2.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1원리’(기초)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관습과 선례’였기 때문이다.(『방법서설』,19쪽 ) 관습과 선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참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관습과 선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참된 진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감각하지 못한 것이 꿈속에서 감각되고, 상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받아들였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혼자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혼자서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이유를 제작품과 건축물, 도시건설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사람의 제작품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된 것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고, 건축물과 도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이 무계획적으로 고치고 변화시켜서 사용하는 것보다 한사람이 구상하여 지은 것이 더 아름답고 더 정돈 되어 있다는 것이다.『방법서설』, 16쪽 참조)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계속적인 회의 과정에서 이렇게 ‘의심하는 나’가, ‘생각하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철학의 제1원리’로서 받아들이게 된다.(이 명제의 의미에 관한 풍부한 논의들은 안쏘니 케니의『데카르트의 철학』제 3장 참조) 이러한 철학의 제1원리를 바탕으로 정신의 사용을 통하여 ‘아주 명석하게 그리고 아주 판명하게 마음속에 품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참되다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방법서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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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살림지식총서 158
최인숙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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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칸트의 철학을 인간의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각각 관계를 맺는 것에 관한 설명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도덕과 인간>,<아름다움과 인간>, <감정과 인간>, <문화와 인간>으로 설명되는데, <문화와 인간>에서는 '종교와 인간', '역사와 인간', '교육과 인간','사회와 인간'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인간이 관계맺는 것에 대한, 즉 인간이 살아가며서 마주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칸트의 철학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칸트의 인식론이 소개되고 있고, 그 주된 내용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한 '현상 존재론'의 고찰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칸트 이전까지는 인간의 인식을 주관이 대상을 따르는 것으로 가정되었으나, 칸트는 이것을 역전시켜서 대상이 주관을 따르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것인 선험적인식에 잘 부합한다고 칸트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인식의 조건은 대상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관의 선험적 인식능력에 대한 탐구로 방법상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대상 그 자체는 알 수 없어도, 직관형식, 즉 공간과 시간으로 현상한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현상 존재론'이다.

<도덕과 인간>에서는 칸트의 형식주의 윤리학이 설명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도 속하지만, 자유의 법칙에도 속한다. 여기에서 법칙을 단순히 물리학이나 수학에서 말하는 법칙으로 환원하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의 법칙'이라고 했을때, 자유와 법칙이 같이 쓰여서 마치 모순처럼 느껴질 수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쨋든 자연의 경향성이라 함은 동물적이고 생리학적인 욕구를 말한다. 자고 싶고, 먹고 싶고, 싸고 싶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칸트는 '자연의 경향성으로부터 방향을 틀어서 이성의 자유의지 쪽으로 향하도록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명령함으로써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미'인 것으로 보았다.(31쪽) 이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는 의미에서 "정언명법"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움과 인간> 칸트의 판단력의 문제와 미학의 문제가 소개되고 있다. 먼저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을 구분하는데, 규정적 판단은 "어떤 개별적 사태를 이미 확정되어 있는 보편개념에 귀속시키는 것", 반성적 판단은 "어떤 개별적 사태가 속한다고 생각되는 보편개념을 반성적으로 찾아가는 작용"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의 판단을 반성적 판단의 예로보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반성적 판단으로서 미판단의 특징은 무엇인지, ,칸트철학에서 미 판단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더 나아가 미 판단과 인간존재와의 근본적 관계는 무엇인지를 물음으로 던지면서 설명하고 있다. 미판단은 논리적판단과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취미판단, 무관심적 만족감으로 설명을 통하여 아름다움의 형식미를 설명한다.  그리고 숭고와 합목적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감정과 인간>에서는 감성(Sinnlichkeit, sense)과 감정(Gefu(e)hl, feeling)을 구분해야 하는데, 감성은 인상(감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고(이로부터 시간형식/공간형식이 작동한다), 감정은 그야말로 타인이나 자신에 대하여 느끼는 마음이다.

<문화와 인간>에서는 종교와 인간, 교육과 인간, 사회와 인간, 역사와 인간등이 설명되는데,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칸트의 '계몽', '반사회적 사회성', '시민사회', '영구평화론'등이다.

저자는 짧은 책에서 거의 칸트의 핵심개념들을 빼놓치 않으면서도, 쉽게 풀어쓰려고 했던 것 같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칸트의 주요한 핵심 개념어들이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은 지면인 만큼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부담없이 읽어나간다면, 다소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이 있어도, 칸트가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래서 의도했던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좀 더 심도 깊은 설명은 역시, 또 다른 입문서, 쉽게 읽는 칸트 시리즈를 함께 보면 재밌을 것이다. 쉽게 읽는 칸트 시리즈는 칸트의 원전 내용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친절한 길잡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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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 세계의 고전 사상 7-004 (구) 문지 스펙트럼 4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상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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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학』은 읽고 이해하기에 만만한 상대는 아닌 듯하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4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는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바탕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집필 의도는 ‘앎’ 혹은 ‘지식’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바탕을 안다면, 그 의도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고, 전체적인 내용구조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어서 전체적인 내용을 따라가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시학』은 플라톤 철학의 내용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플라톤의 예술가에 대한 위치 및 의미, 곧 시인에 대한 위치 및 의미와 대립적으로 비교되어서 설명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세계관에서의 차이, 즉 철학에서의 차이로부터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플라톤과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좀 더 확연하게 내용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당시 문학적 내용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시학』에서는 당시의 작품을 사례로 제시하기도 하고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데, 생소한 작품의 제목과 그리고 이와 연결된 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시학』은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시학』이 2부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다소 확실한 추정속에서의 나머지 내용의 유실과 후세의 편집자들의 편집문제, 판본에 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 세 가지가 나에게는 없고 텍스트 자체도 불완전하다보니, 나에게는 어려울 수 밖에.....

(『시학』의 문헌상 문제,  즉 A원고, B원고, 라틴어 원고, 아랍어 원고와 관련된 내용은 [이상섭 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연구』, 문학과지성사,pp147-149참조] 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를 조금이라도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타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BC384년에 태어났다. 17세 되던해에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학원에 등록했으며 이곳에서 20년간을 보냈는데, 아카데미아에서 뛰어난 평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플라톤의 방식을 따른 대화편을 많이 저술했으며 플라톤의 형상론을 긍정했지만, 이후에 형상론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수학에는 더 적은 열성을 보였고 경험적인 자료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생동하는 자연속에 뿌리박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반면에 플라톤은 사유의 세계를 변화하는 사물들의 세계와 분리시키면서 이데아와 형상들에게 참된 실재를 부과했다.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며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아카데미아에 있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영향은  플라톤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C348-47년경에 아카데미아를 떠나 헤르메이아의 왕의 초청으로 아소스에서 3년간 저술하고 탐구하였으며 이후 레스보스 섬으로 건너가 생물학의 탐구 특히 해양생물의 다양한 생태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 후 BC343-42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립대왕의 초청으로 13세의 알렉산더를 가르치게 되는데, 이때 미래의 통치자의 스승으로서 정치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필립대왕이 죽은 후 BC335-34년에 아테네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때부터 가장 생산적인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 때 리케이온의 숲속에 있는 자신의 학원을 세웠는데, 거닐면서 토론했다고 하여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도 한다. (사무엘 스텀프, 서양철학사, 이광래역, 종로서적, 참조)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의 문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간은 본래적으로 앎을 갈망한다. 그리고 감관기관을 통하여 지식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지혜란 그것이 왜 일어나는 가에 대한 원인, 이유, 원리들에 대한 탐구이다. 그래서 물리학은 무엇이 물체를 움직이는가를 탐구하는 것이고, 윤리학은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고, 정치학은 무엇이 좋은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시학은 무엇이 좋은시를 가능하게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의 창작원리에 대한 해명, 시의 본질, 시의 성격을 추적하고 비극의 우수성을 말하고자 한다.

시학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1-5장>:도입부 및 서론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글의 [집필 이유와 전개방식], [모방의 세부분으로서 수단ㆍ대상ㆍ방식],[시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하는 가운데 희극과 서사시, 비극의 관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6-12장>:비극의 본질적 정의와 비극의(공연 할때의) 양적 구분을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비극의 본질을 말하고 비극의 여섯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12장>에서는 비극의 양적 구분을 설명한다. <7-11장>까지는 플롯의 구성에 관한 측면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플롯구성의 원칙적, 이론적 차원의 논의라 할 수 있겠다.

<13-19장>:플롯을 구성할 때 목표로 삼을 것과 피해야할 것을 다루면서 비극적 근원인 성격과 깨달음, 사고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20-22장>:언어 표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23-26장>:서사시의 내용을 다루면서 비극과의 차이를 보여주고 <26장>에서 비극의 우수성을 강조하면 끝맺어진다.

 시학을 읽으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 개념어들은 생각해보면,

  기술(techne), 모방(mimesis), 연민과 두려움, 카타르시스, 비극 및 비극의 여섯가지 요소, 플롯(플롯의 의미뿐만 아니라 플롯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시학의 핵심골자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참고자료는 위의 세가지 판본의 역자주석과 해제등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고, 또한

<이경식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신고전주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연구, 문학과지성사>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절판되었음, 도서관에서 빌려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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