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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방법서설은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그 중에 문예출판사의 이현복 번역본과 훈복문화사(서광사)의 최명관 번역본을 많이 읽는 듯 싶다. 원래 최명관의 번역본은 서광사에서 나왔었는데, 훈복문화사로 바뀌었다. (최명관의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훈복문화사로 바뀌었다. 서광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때문에 바뀐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겠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방법서설과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이 함께 묶여져 있고, 훈복문화사 판본(난 서광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바뀐 것은 거의 없을 듯...)은 방법서설과 성찰이 묶여져 있다. 문예출판사나 훈복문화사 판본 모두 역자해제가 있어 참조하기 좋다. 문예출판사는 역자 주석까지 있어서 부분 부분 참조하기 좋을 듯하다. 훈복문화사판본또한 역자의 학위논문을 실은 것이라 참조하기 좋다.
만약 책을 알뜰하게 사고싶다면, 성찰과 함께 보려면 훈복문화사의 책을,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같이 보려면 문예출판사본을 사야 한다. 성찰은 문예출판사본이 따로 있다.(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도 같이 있는 것 같다.) 넉넉하다면, 모두 사도 되겠지만...
해설서로는 위 두개 번역본의 해제면 충분할 것 같지만,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는 다음의 책,
[*안쏘니 케니, 『데카르트의 철학』, 김성호 역 , 서광사]
[*E.M 커리, 『데카르트와 회의주의』, 문성학 역, 고려원]이 좋을 듯하다. (이것은 절판)
그리고 철학사책은 철학의 거장들, 스텀프의 서양 철학사, 휠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가 괜찮지 않을까 싶다. (스텀프의 서양철학사는 개정되어서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로 바뀌어서 나왔다.)
데카르트의 방법에 대하여 생각중인데, 이것은 좀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데카르트의 생애와 사상 요약과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1원리에 관하여 간단히 요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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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데카르트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는 1596년 뚜레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조아킴 데카르트는 브르타뉴 의회의 고문이었다. 1604년에서 1612년까지 데카르트는 라프레슈(La Fléche)의 예수회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철학을 배웠다. 이 시기 동안 그는 계속해서 의문과 논란을 야기 시키는 철학 이론들에 비해 확실성과 정확성을 지닌 수학에 깊이 감명 받았다. 한 동안 그는 바바리아의 맥시밀리안 군대에서 군인 생활을 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한 후 그는 1628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했으며 여기에서 그의 주저서인 <방법서설, 1637년>, <제1철학을 위한 성찰, 1641년>, <철학의 원리, 1644년>, <정념론, 1649년>을 저술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배우고자 했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그는 1649년에 스웨덴에 건너갔다. 여왕이 아침 5시 이외에는 그를 볼 시간이 없었으므로 그 시각의 혹독한 추위는 물론 익숙하지도 않은 생활로 인해 그는 쉽게 병에 걸렸다. 몇 달 안 되어 그는 심한 열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1650년 2월,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무엘.E.스텀프『서양철학사』, 이광래 역, (종로서적 1994), 308쪽 참조 )
데카르트가 산 시대는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종교 세력이 복잡한 갈등 속에서 30년 전쟁(1618-1648)을 벌이던 시대였고, 전란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사람들이 비참한 곤고를 겪던 시대요, 정신적으로는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미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처하여 데카르트도 청년시절에는 여러 차례 종교적 사상과 세력이 얽힌 전쟁 마당에 뛰어들었다. 세상의 물정을 알려고 오랜 세월을 방황하며 사방으로 여행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경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들이 하는 일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이윽고 그는 오로지 진리의 탐구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치게 되었다. (르네.데까르트,『방법서설ㆍ성찰ㆍ데까르트 연구』최명관 역ㆍ저, (서광사1998),299쪽 참조)
2.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1원리’(기초)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관습과 선례’였기 때문이다.(『방법서설』,19쪽 ) 관습과 선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참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관습과 선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참된 진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감각하지 못한 것이 꿈속에서 감각되고, 상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받아들였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혼자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혼자서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이유를 제작품과 건축물, 도시건설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사람의 제작품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된 것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고, 건축물과 도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이 무계획적으로 고치고 변화시켜서 사용하는 것보다 한사람이 구상하여 지은 것이 더 아름답고 더 정돈 되어 있다는 것이다.『방법서설』, 16쪽 참조)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계속적인 회의 과정에서 이렇게 ‘의심하는 나’가, ‘생각하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철학의 제1원리’로서 받아들이게 된다.(이 명제의 의미에 관한 풍부한 논의들은 안쏘니 케니의『데카르트의 철학』제 3장 참조) 이러한 철학의 제1원리를 바탕으로 정신의 사용을 통하여 ‘아주 명석하게 그리고 아주 판명하게 마음속에 품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참되다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방법서설』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