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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은 발굴 역사의 스타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 어린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으며 언젠가 트로이를 발굴하리라 결심한 그는 뛰어난 상술을 바탕으로 큰 돈을 모아 드디어 터키 히사를리크 땅에서 첫 삽을 들게 된다. 그 곳에서 찾아낸 '프리아모스 왕의 보물'은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가 발굴한 곳이 트로이보다 이전 시대였고, 아마추어적인 발굴로 오히려 유적을 망쳤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가 신화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이렇게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발굴의 현장 열 곳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장대한 무덤 건축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우솔레움과 아르테미스 신전은 지진으로 파괴되기 전까지 고대인들에게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히 파괴된 고대 유적들은 비록 지상에는 잡풀만이 무성하지만 지하에서 발굴된 유적만으로도 당시의 규모와 화려함을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이 유토피아로 언급한 아틀란티스는 지금까지도 고고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플라톤의 주장 외에는 알려진 역사가 없어 존재 여부 부터가 불투명하지만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해 멸망한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과 산토리니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니네베에서 발견된 아카드어로 쓰여진 점토판은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우르크의 왕이었던 길가메시의 서사시 속에서 우리는 성서의 원형인 대홍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이룩한 고대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호령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히타이트는 수도였던 보가즈쾨이에서의 발굴을 통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와탈리왕과 이집트의 람세스2세 사이에 벌어진 카데시 전투를 기록한 점토판이다. 사실 그대로를 적는 것을 신에 대한 의무라 여겼던 히타이트 인들의 종교관 덕분에 우리는 점토판을 통해 제국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모든 발굴이 흥미진진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이스라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이다. 에세네파가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로마의 탄압을 피해 두루마리로 기록한 그들의 역사는 항아리에 넣어진 채 수천년의 세월을 거쳐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 발견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문서에서 예수보다 백여년을 앞선 구세주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면서 유대인에게는 성물로, 기독교계에는 골치 아픈 문제로 남게 되었다. 이밖에도 세계사에 아직도 공포의 대상으로 남은 스키타이, 거대한 규모의 병마용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진시황릉, 아프리카 로디지아에서 발견되어 솔로몬 왕의 보물과 연관된 곳으로 오해를 받았던 대짐바브웨 유적 등의 발굴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런 발굴의 역사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유물들은 수천년의 세월을 건너 이제서야 우리에게 그들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유적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열정 하나로 열악한 발굴 현장을 돌아다니며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발굴자들 뿐 아니라 그들이 기적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같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스러지고 그리고 사라져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