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머니 - 예술을 지배하고 종교를 흔들었던 15세기 피렌체의 금융 권력 흥망사 비즈니스맨이 꼭 읽어야 할 인사이트 시리즈 1
팀 팍스 지음, 황소연 옮김, 차현진 감수 / 청림출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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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성장하여 유럽의 금융권력으로서 경제 뿐만 아니라 예술과 종교를 모두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성장과 몰락과정을 소설처럼 흥미롭게 써내려간 경제역사서이다. 메디치 가문이 경영하였던 당대의 은행업의 성장과 발전과정은 현대의 은행을 중심으로한 금융산업의 생성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가능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제금융 중심지 또는 금융허브를 꿈꾸고 있는 우리나라의 일부 정책당국자들이 추진하는 원대한 비젼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은행경영 방식이나 역사가 필수적이다. 어제의 역사가 오늘 또는 내일의 새로운 길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비즈니스맨이 읽어야 할 경제교양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교양서이기도 하다. 메디치가문이 은행업과 상업을 연계한 국제금융 사업을 통해 얻은 막대한 수익을 다양한 예술, 문화 사업에 투자하였고 이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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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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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쯤 회사에서 특강연사로 초청되어 한비야의 강의를 들은 윗분이 꼭 한번 들어봐야할 강의로 극찬을 하는 바람에 그를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한씨인 그림에 관한 글을 쓰는 우아한 한젬마라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누군가의 일상이나 기행을 쓴 글을 별로 즐기지 않을 때였으니 내 관심영역을 벗어나 있기도 했다.

월드비전이라는 국제구호단체의 긴급구호팀장으로서 지난 5년간 아프가니스탄, 말라위.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네팔, 이스라엘, 남아시아에서 북한까지 구호현장을 누비며 활약하고 느낀 점들을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세계 수십개국을 홀로 돌아다닌 여정을 여러 권으로 책으로 낸 뒤라 필력과 재미를 보장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현재 모습은 중 3인 딸녀석에게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남을 보고 남을 위해 살아 감으로써 나의 삶이 더 보람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마음 한구석에 잘 보관하고 살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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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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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몇년전 우리 글을 너무나 잘 쓰는 외국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심어졌다. 그의 책들이 여러권 때를 이어 발간되었다. "우리들의 대한민국" 등 몇권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때 가졌던 몇가지 느낌은 첫째, 외국인이 어떻게 토종인 여느 평론가나 글쟁이보다 더 유려한 문장으로 글을 써 낼 수 있느냐는 경이로움이었고, 두번째는 어떻게 이런 만연체의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세번째로는 우리 역사에 대한 그의 해박함이었다. 도대체 실학파라고 하면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등 이름 정도를 ㅇ기억하고 있는 나에 비해 또는 대부분의 우리에 비해, 그는 아예 조선의 근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자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읽지 못하는 한문을 읽어내는 그의 능력에 경이를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의 최근 저작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통해 그의 또다른 면모를 보았다. 블로그에 올렸기 때문에 개인의 가장 사사로운 감정이야 분리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일기라는 형식은 그의 기존 글들과는 달리 보다 사적인 감정을 보다 많이 느끼게 해준다. 내가 둔감해 몰랐던 그의 새로운 면모는 그가 러시아를 벗어나 한국과 노르웨이 등 다른 나라에 정착해 살면서도 사회주의자라는 점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소련과 동구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그들의 신념과 사상적 기반을 너무나 쉽게 버린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절로 하게 하는 것 같다.  또다른 사실은 그가 한국보다 노르웨이가 더 좋아 거기에 정착한 게 아니고 한국보다 노르웨이에서 보다더 안정적인 일자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미 한국인인 그가 왜 또다시 새로운 나라를 찾아 살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약한자, 소외받은자, 그리고 어두운 곳에 사는 소수를 위해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부분은 때로 절대적인 공감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에는 내 삶이 너무 멀리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경우 그의 글에 공감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을 수도 있다는 또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만감일기가 예전의 그의 글이 주었던 강력한 충격을 훨씬 약화시킨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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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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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진짜로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든 자신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독서의 역사"라는 제목만으로도 책을 즐겨읽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광범위한 책에 관한 지식과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저자의 독서량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쓴 독서의 역사가 서양의 책 중심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또는 동양의 독서의 역사를 엮어 낸다면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마침 얼마전에 그런 책을 만났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가 그 책이다. 물론 이 책은 시기면에서는 조선이라는 짧은 기간만을 담아내고 있고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책과 책읽기에 관한 역사라는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서의 역사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이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책과 독서에 관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그 위대한 승리"를 다시 찾게 만들었다. 학교 다닐 때의 교과서나 교재 이외에는 반복해서 읽은 적이 거의 없는데 두번씩 책을 읽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 것 같다. 사실 제목박에 기억나지 않아 독서에 관한 기본 교양을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한몪 했다.

망구엘은 아마도 자신의 엄청난 분량과 다양한 독서를 바탕으로 역사이기는 하지만 장별로 독특한 주제로 시대를 넘나들며 때로는 책에 관한 역사, 때로는 책읽기에 관한 역사를 현란하게 펼쳐나간다. 책의 재질과 모양, 크기에서부터 책읽는 사람들에 대한 시대적 인식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책에 얽힌 사연들을 포진함으로써 책자체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지식들이 가득하다.

거기에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밑줄을 그어가면서 기억해 두고 싶은 책에 관한 뛰어난 서술이다. 따라서 그의 책 속에 있는 주요 표현들을 인용해 두는 것이 책을 기억하는 더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책 한 권을 소유하는 행위에 잠재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앞서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독서의 역사이다. 말하자면 새롭게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보다 앞서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에게 그 책은 어떤 존재였었을까를 상상하는데, 바로 그런 상상에서도 독서가는 어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 한 권의 책은 그 자체의 역사를 독서가에게 안겨준다."(pp.29-30)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p.37) - 그러면 나도 지금 범죄행위를 저지런 셈이다.

"신하들이 이걸 배운다면 그들의 영혼에 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심는 결과가 되오. 그 사람들이 앞으로는 쓰여진 것에만 의존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더 이상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더듬어 내려 하지 않고 눈에 드러나는 기호에만 의존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기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거요. 당신이 발명한 것은 기억을 위한 비법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한 비결이오. 그리고 그대가 그대의 신봉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유사품에 지나지 않소."(p.90) - 책의 존재는 문자의 발명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자의 발명의 어느 시대에나 환영할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현재 영상물의 홍수로 문자(책)가 소외받는 시기에도 이런 비유가 적절할 것 같다.

"수세기 동안,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서 이뤄졌던 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중세말기와 르네상스 초기의 기독교 사회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 교회 밖에서 - 거의 귀족과 (13세기 후에는) 상류층 부르주아들의 특권이었다. - 이는 우리 조선의 상황도 마찬가지 또는 더 가혹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금속활자의 보급으로 책의 보편화가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18세기 하시디즘의 대가였던 베르디체프의 랍비 레비 이츠하크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를 보면 책의 첫 페이지가 모두 결락되어 꼭 두번째 페이지부터 읽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 랍비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는 사람일지라도 아직 그 책의 첫 페이지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오"라고 대답했다.(p.134) - 이건 책에 대한 예의가 너무 지나친 '과공비례'가 아닌가. 책을 즐겨찾는 사람치고 자기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까?

"그렇지만 한 독서가가 낙담하는 바로 그 책장에서 또 다른 독서가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독서 행위가 갖는 창조적인 본질이 담겨 있다."(p.140)

"15세기 말경에는, 비록 인쇄술이 확립된 터였지만 우아한 손재능에 대한 동경이 사그러들지 않았고, 서구 역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달필의 일부는 아직 미래의 일로 남아 있었다. 책을 대하기가 더 쉬워졌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배우는 한편으로 글자를 보다 우아하고 두드러지게 쓰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래서 16세기는 인쇄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육필 입문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기술상의 발전이 그 기술로 인해 뿌리째 뽑혀 버리리라고 예상되던 것들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발전시키는 예가 얼마나 많은지 주목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이 드물어진 지금에도 이런 반전이 가능할까?

"'월드 클래식스' 같이 거창하지 않아야 하며 '에브리맨스' 처럼 선심쓰는 체하는 이름이어서도 곤란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동물이름들이었다. 돌핀, 이어서 포퍼스(참돌고래), 그리고 마침내 펭귄이 떠올랐다. 맞아, 바로 그이름이었다." - 영국의 유명한 출판사인 펭귄이라는 이름의 탄생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책읽기의 은유) "휘트먼이 볼 때 텍스트와 작가, 독자, 그리고 이 세상은 독서행위에서 서로를 비추는 존재였다. .... 이런 연계선상에서 보면 독자는 작가를 반영하고(그와 나는 하나다), 세상은 한 권의 책(신의 책, 대자연의 책)을 반영하고, 책은 곧 피와 살이며(작가 자신의 살과 피이지만 문학적 변형을 통해 나의 것이 된다). 이 세계는 판독해 내야할 책이 된다(작가의 시는 나의 세상읽기가 된다). 휘트먼은 한평생 책읽는 행위에 대한 정의와 이해에 천착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독서행위는 행위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그 행위에 참여하는 요소들의 은유이기도 하다."(p.248) "휘트먼이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임무는 이 세상을 읽는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는 세상이라는 방대한 책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p.249)

"공부하는 기술에 관한 에세이에서 16세기 영국 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어떤 책은 음미해야 하고 또 어떤 책은 삼켜야 하고 극히 일부는 씹어 소화시켜야 한다"고 공부방법을 분류했다."  (p.251)- 시와 소설과 사회과학이 그러할까?

"한권의 책이랄 수 있는 이 세상은 이 세상이라는 텍스트에서 글자 한 자에 해당하는 독서가에 의해 게걸스레 먹힌다. 이리하여 독서의 끝없음을 위해서 순환적인 은유가 끊임없이 창조된다.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한다. 그 순환이 완성되는 과정은 단순히 지적인 과정만은 아니라고 휘트먼은 주장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는 지적으로 읽어 어떤 의미를 파악하고 어던 사실들을 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텍스트와 독서가는 서로 한데 얽히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를 섭취하여 텍스트가 가두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휘트먼이 자신의 시를 거듭 손질하고 다시 펴내면서 믿었던 것처럼, 어떠한 책읽기도 결코 완성이 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p.254)

"도서관은 ....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을 모았던 곳"(p.273)

"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느느 전혀 관계없는 의문을 풀어주는 메시지로 바꿔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변질은 텍스트 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말해 그것을 재창조해 내는 것이다."(p.306)

"한권 한권 쌓아올리면서 나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이 뻔한데도 그렇게 많은 책을 간직하려는 이유는 대체 뭘까 궁금해한다. ... 나는 철저함과 희귀함, 그리고 얄팍한 학식을 구실로 내세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계속 늘어만 가는 이 책 무리들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종의 관능적인 탐욕이라는 것을"(p.342)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책에 대한 욕심이 과한가 보다라고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탐욕적인 독서가"에서 느끼는 것처럼 탐욕이 이렇게 긍정적인 뜻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번역은 불가능한 작업이고, 배반이고, 기만이고, 날조이고, 희망있는 거짓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번역은 독자들을 더 현명하고 훌륭한 청취자로 바꿔 놓는다. 고집은 조금 누그러지고 감수성은 훨씬 더 민감해지는 "seliglicher'의 존재로 발전한다는 말이다. (p.400)

"노예에게 있어 글 읽기를 배우는 것은 자유를 얻는 패스포트가 아니라 압제자들이 그들을 짓누르는 막강한 도구인 책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 더욱 중요한 점은 독서가는 그 문장을 반추하고 그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p.404)

"볼테르는 '가공할 만한 독서의 위험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풍자적인 소책자에서 "책은 무지와 잘 정비된 경찰국가의 감시인과 호위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검열은 모든 권력의 필연적인 귀결이고, 독서의 역사는 초기의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부터 우리 당대의 책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검열관의 불길로 점철되어 왔다."(p.406) - 권력을 펜에서 나온다.

"이런 것들은 독서가들 모두에게 매우 평범한 몸짓들이다. 안경을 케이스에서 꺼내 종이조각이나 윗옷 가장자리나 넥타이 끝부분으로 닦은 뒤 그것을 코 위에 걸친다. 그제서야 훤하게 보이는 책장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나서도 글자의 초점을 맞추려고 안경을 위로 올리거나 아니면 반들거리는 콧등 아래로 약간 내린다. 또 조금 있다가는 빨려들 듯했던 텍스트를 보지 않으려고 안경을 들어올리고 양 눈썹 사이의 미간을 문지르며 눈을 감고 눈꺼풀을 찡그려 본다. 이제 마지막 행동이 따른다. 안경을 벗어 곱게 접어 밤을 위해 이제 막 끝낸 책장 사이에 꽂아 둔다." (p.420) - 마치 나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현실감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안경쓴 모든 독서가들이 공감할.

"나태한, 연약한, 젠체한, 현학적인, 엘리티스트, 이런 것들은 골똘한 학자, 시력이 나쁜 독서가, 책벌레, 얼간이들 하면 연상되는 형용사들이다. 책속에 파묻혀,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너덜너덜한 책 표지 안에 담긴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자신들이 더 낫다는 우월감에 빠져, 하느님의 가르침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척했던 안경 낀 독서가는 얼간이로 비쳤고, 안경은 지적 오만의 상징이 되었다."(p.426) - 안경이 때로는 지적인 이미지의 상징이 되고 때로는 현실에 부적응하는 얼간이를 상징하기도 한 것은 역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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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양장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신동욱 옮김 / 창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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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xus and the Olive Tree"(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이미 책이 나온지 수년이 되었고 발간당시 DJ정부때 수인이 된 사람이 옥중에서 감명깊게 읽었다고 매스컴을 타면서 더 유명해진 책. 그때는 한낱 저널리스트가 쓴 에세이 정도로 생각한데다 언론에서 부추기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혐오감으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큰 녀석이 참가하고 있는 토론회 모임에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도 원서로, 이 참에 큰 녀석과 눈높이도 맞추고 저널리스틱한 글을 통해 풍부한 교양을 쌓을 겸 도서관에서 번역서를 빌렸다. 그런데 그 두께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사전같은 두께에 800페이지에 한장이 모자라는 799페이지짜리 책이라니. 원서로는 500페이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데 국어의 표현이 많이 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떠한 내용인지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서문부터 읽고 들어가니 바로 20세기말부터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란다. 불과 얼마전에 읽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는 정반대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미래의 희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장하준 교수가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기본사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큰 녀석이 토론할 때 렉서스 이후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교재로 사용하면 아주 유용한 주장과 비판에 관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발간된 지 7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진행상황과 이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이나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이 너무 익숙해져 새로운 맛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이에 따른 전세계 국가간의 연계성 증대에 따른 미래의 전망 등은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한 듯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서평대로 세계화된 경제질서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창의적인 설명을 저널리스트의 술술 읽히는 문장과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책의 두께에도 질리지 않고 집중시켜 준다.

아둔함 때문에 책의 중간부분에 다다라서야 제목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끝부분에서 저자는 이 의미를 보다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래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p.785. 세계화시대의 올리브 나무

그(배달업체의 흑인 남성)는 책을 상자 안에 되돌려넣으며 내게 이렇게 말을 붙였다. "흠, 그러니까 렉서스는 기술이며 컴퓨터 따위를 상징하는 말이군요?"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그리고 올리브타무는 공동체며 가정 등을 상징하는 거구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바로 이해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물어왔다. "그렇다면 말씀 좀 해보세요. 여기에서 하나님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 말입니다. 여기서 그는 어떤 존재인가요?"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따를 경우에만 모든 국가가 보다 부유해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전히 세계의 경찰이자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의 입장에서 본 세계화라는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래를 보는 눈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깊이 자극해주는 책이다. 더불어 대입 논술에서 모범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인용해야 할 부분들이 수두룩할 수도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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