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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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진정한 주역은 누구인가? 중국의 장구한 역사는 그 답을 말해주는 듯 하다. 과연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의 지도자들이 구상했던 대로 중국사회가 주조돼 왔을까? 이 시대 최고의 중국역사학자인 '조너선 스펜스'는 이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듯 하다. 그는 "현대중국을 찾아서"라는 드라마틱하고 감미로운 여정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이끌어온 진정한 주역들의 자취를 파헤친다.

근대 이전 황제제도 하의 중국은 대륙 전역에 걸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와 조공제도에 기초한 대외관계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민초들의 반란과 변경국가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고 곧 왕조교체로 이어졌다. 장제스의 국민당세력도 민의를 무시한 철권통치 탓에 대중의 신임을 잃고 만다. 그렇다고 마오쩌둥으로 대표되는 공산당 지도자들의 통치방식이 대중들의 항구적 지지를 얻었던 것도 아니다.

2만 5천리 대장정의 주역인 공산당 지도자들은 항일을 위해 일치단결하고 빈농들에게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한시적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국민당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 농민의 국가를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노동자 농민들을 "노동자 농민의 국가"라는 말뿐인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고자 하였다. 가령 문예인들이 순수예술을 추구한다는 것은 혁명성이 결여된 행위로서 비판받아 마땅한 거역이었다. 그들의 예술은 노동자 농민의 건설과 투쟁을 묘사해야만 혁명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제약은 노동자 농민에게도 뒤따랐다. 그들은 새로운 국가의 주인으로서 인정되었지만, 국가의 공식이데올로기에 어긋나는 언사와 행위에 대해 철저히 응징되었다. 대중들의 사상이 탄압된다면, 공산당이 국민당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공산당의 모순적 통치방식도 대중의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해방직후 마오쩌둥이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부르짖자, 공산당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혁명과 같은 급진적 정책으로의 선회에 의해 다시 한번 지식인들은 탄압받았고, "제5의 현대화" 즉 민주화를 열망하는 천안문시위가 촉발될 때까지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다. 대중의 저항은 국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으며, 결국 공산당도 다른 목소리에 대해 관대한 태도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개방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도 결국 수용되었다.

이러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의 권력과 통치체제가 얼마나 견고했는가에 관계없이, 진정으로 역사를 이끌어가고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 준 이들은 단연 인민대중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린뱌오처럼 중국정치의 주도세력도 아니었고 극적인 행위로서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묵묵히 참고 견디며 때론 목숨을 바쳐 집권세력에 저항한 이들이었다.

스펜스는 그들의 숭고한 삶을 재현하기 위해, 당대에 대중들의 정서가 녹아있는 문학작품 속에서 리얼리즘적 요소를 추출해 낸다. 그러한 요소는 역사적 사실들의 적시적소에 끼어들어가, 아니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리얼리즘이 얼버무려져 생동감 있게 과거를 재현해 낸다. 대부분의 통사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방식과 달리, 이 책 "현대중국을 찾아서"는 한 편의 짜임새있는 이야기처럼 생동감있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그것이야말로 스펜스만이 가진 역사학의 진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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